여행이란 일상의 구속, 매일의 시간과 공간을 벗어나는 기쁨


여행(旅行)이란 떠났다가 되돌아오는 일이다. 어디를 가고 어떻게 가며 또한 무엇을 하고 돌아와야 하는지 생각만으로도 즐겁다. 여행 계획을 짜는 시간이 가장 흥겹고 돌아와서 사진 보며 추억 바라는 때 역시 우쭐하다. 여행이란 그런 것인가 보다.

 

가끔 중국사람은 왜 여유(旅游)’라고 할까 궁금하다. 여행을 주관하는 기관은 여유국이다. ‘자에 어떤 묘미가 있어 보인다. 문득 소요유(逍遙遊)’가 떠오른다. 절대 자유를 추구한 『장자(庄子)』의 곤붕(鲲鹏)’처럼 물고기와 새가 되어 유유히 헤엄치고 훨훨 날아오르는 일, 그런 생각만으로도 행복하다면 여행을 떠나야 한다. 여행에도 철학이 있다면 소요야 말로 제 격이다. 그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아야 바로 소요다. 일상의 구속, 매일의 시간과 공간을 벗어나는 기쁨이다.

 

머리 복잡하게 고전을 들먹였으니 돈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여행에는 비용이 드는데 사람들은 늘 따지고 또 따진다. 싸고 좋은 여행? 사실 그런 여행이란 꿈에서나 가능할 것이다. 그래도 금액을 따져 보고 저렴해야 좋은 여행이라고 빈번하게 주장한다. 그렇다면 가격 대비 성능이 좋은 여행? 나는 무조건 중국여행을 첫 손가락에 꼽는다. 별다른 경쟁자도 없다.


공묘 대성전 앞


가깝지 않은가? 너무도 간명해서 더 이상 이야기할 필요조차 없다. 베이징이나 상하이, 칭다오는 2시간도 걸리지 않는다. 우루무치나 쿤밍도 직항으로 4시간이면 충분하다. 중국 방방곡곡, 직항이 없더라도 한번 경유하면 한나절이면 가지 못하는 곳이 없다. 나는 13년째 배낭을 메고 중국을 다니고 있다. 얼마 전 헤아려 보니 350여 도시나 되더라. 그 흔적을 참 많이도 취재했더라. 시간이 갈수록 대중교통은 날로 편해지고 빠르다. 고속열차가 조금 비싸지만 대부분은 저렴하다. 거리마다 만두, , 꼬치도 서민적이라 적성에도 맞다.

 

싸다고 나쁜 여행이거나 불편한 여행이 아니다. 오랜 역사를 품고 있고 가볼 만한 도시가 너무도 많은 중국은 평생 다녀도 다 가기 힘든 문화여행의 보물이다. 특별시의 구()를 빼더라도 2천 곳이 넘는 현()이 있다. 우리나라의 군 단위와 비슷한 곳이 무수히 많은 셈이다. 내가 태어난 고향 태백만 하더라도 인터넷 검색하면 가볼 만한 곳이 10군데가 넘는다. 하물며 135천만 명이 거의 천만㎢에 육박하는 나라니 명소의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고차방정식으로도 그 숫자를 풀기 힘들 것이다. 중국여행을 함께 다닌 지인들도 가성비 최고의 나라로 손꼽는데 주저하지 않는 이유다.

 

공자님 말씀 같다고 지적하지 말자. 가까운 산동으로 떠나보자. 나는 13년 전부터 이상하리만큼 산동 지역과 연분이 많다. 2007 180일 동안 중국여행의 출발지가 인천과 직선거리가 서울에서 부산까지 경부고속도로와 엇비슷한 룽청(荣成)이었다. 2014년 여름에는 졸저 『13억 인과의 대화』 출간 기념으로 지인들과 56일 산동여행을 하기도 했다.


룽청 장보고기념관


전복국수


인천에서 밤새 배를 타고 도착한 아침. 장보고 유적지가 있는 적산(赤山), 중국에서 해가 가장 먼저 뜨는 성산두(城山)와 육해공이 다 있는 신조산(神雕山) 야생동물원을 보고 360도 펼쳐지는 실경 테마 무대 <신유화하(神游华夏)> 공연을 즐겼다. 웨이하이(威海)에서는 모래사장에서 해수욕으로 몸매를 뽐냈고 원덩(文登) 천목온천(天沐温泉) 리조트에서는 4대미인 이름이 붙은 온천을 만끽했다. 스다오()의 해산물 뷔페에서는 마음껏 배 터지게 먹었다. 특히 전복국수는 환상적인 맛이어서 음식칼럼의 소재로 소개하기도 했다. 이렇게 지인들 6명이랑 행복한 여행의 추억을 쌓는데 1인 비용이 69만원 소요됐다.

 

2014년 겨울 칭다오(青岛)에 온 예술고등학교 사진과 학생 4명을 데리고 출사여행을 다닌 적이 있다. 학생들 어머니로부터 약 30만원씩 받고 인솔을 했다. 웨이팡(潍坊), 칭저우(青州), 취푸(曲阜)를 거쳐 칭다오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비용도 안성맞춤이었지만 흥미롭던 이유는 여행의 맛이 그렇지만 뜻밖에 마음에 꼭 드는 곳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고대의 구주(九州) 중 하나와 이름도 같은 칭저우에서 만난 자오더구제(昭德古街) 거리였다. 중국정부는 전통문화 보호를 위해 역사문화거리를 선정해 발표하는데 2009년 첫해에 뽑힌 거리 10곳 중 하나다. 알만한 사람이라면 대부분 아는 베이징 국자감 거리, 라싸 조캉사원 바코르광장 거리 등과 함께 선정된 것이다. 회족이 많이 사는 거리인데다가 재래시장과 서민적인 골목과 가옥이 이국적이어서 사진 출사로 아주 좋았다. 이렇듯 산동 땅만 해도 풍부한 역사문화가 가득하다. 공자 고향이라는 것만으로도 당장 배낭을 꾸려 떠나고 싶지 않은가?


칭저우 자오더구제

 

2012년에 베이징에 거주할 때 버스 두 대로 70여 명이 국경절 산동문화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가는 곳마다 역사 이야기가 넘쳐나서 정말 기뻤다. 사람들에게 전해줄 이야기가 많다는 것은 인솔하는 사람으로서 신바람 나는 일이다. 34일 동안 잠시도 쉬지 않고 강의를 했다. 일행들도 약 30만원 비용만으로 베이징을 출발해 지난(济南), 취푸, 텅저우(滕州), 짜오좡(枣庄)을 두루 유람했으니 대만족이었다.

 

배우고 싶었던 역사 인물을 만났고 풍성한 경치도 마음에 담았다. 지난에서 찾아간 바오투촨(趵突泉)의 샘물은 정말 깨끗했으며 천고의 재녀라 불리는 이청조(清照)와도 만났다. 취푸의 공묘, 공부, 공림은 그야말로 공자의 향내로 그윽했다. 텅저우에서는 건축과 목공의 비조인 노반(鲁班)과 사상가 묵자(墨子)을 배우기도 했다. 중일전쟁 당시 전장이던 짜오좡 타이얼좡(儿庄)은 풍물이 넘쳐나는 화려한 고성으로 변해 있었다.


타이얼고성 입구


타이얼고성 붓글씨


최근에 사드의 영향인지 모르겠으나 중국문화를 강의해 달라는 요청이 많다. 수교 24년이 지났고 서로 성숙한 청년의 나이가 됐으니 제대로 서로의 문화를 배울 때도 되긴 했다. 중국문화 강의 시간에 빠지지 않고 꼭 이야기하는 주제가 있다. 바로 월마트 창업에 동기부여를 한 동양의 한 작은 가게이야기다. 창업자 샘 월튼이 자서전에서 밝힌 가게는 비단가게 루이푸샹(瑞蚨祥)이다.

 

베이징 다스뢀(栅栏, 현지인들은 다자란이라고 하지 않음) 거리에 자주 다녔다. 그때마다 1876년에 개업한 루이푸샹에 감탄했다. 맹자 후손 맹락천(孟洛川)의 상인 정신을 존경했고 1949 10 1일 천안문광장에서 열린 개국 행사에서 나부낀 오성홍기가 루이푸샹 비단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에도 놀랐다. 고대 신화에 등장하는 파랑강충이라는 곤충을 가게 이름으로 쓴 것도 독특했는데 고사인 청부환전(青蚨还钱)도 깊은 뜻도 배울 수 있었다. 돈에 곤충의 피를 묻히면 돈이 다시 되돌아온다는 발상이 바로 샘 월튼이 감명을 받은 핵심이다. 장사를 하려면 꼭 이렇게 하라는 동기 부여를 핏빛보다 진하게 풍기고 있는 것이다.


한마터우로 불리는 저우춘상성


저우춘의 비단가게 루이푸샹


루이푸샹에 대해 알면 알수록 중국문화, 특히 상인문화에서 배울 점이 많다. 그래서 무조건 달려간 곳이 산동 땅 저우춘(周村)이다. 기원전 주()나라 건국의 일등공신 강자야(姜子牙)의 분봉 영토인 제()나라의 고도 쯔보(淄博) 시에 위치한다. 쯔보는 아름다운 요정이 등장하는 <요재재이(斋志异)를 집필한 청나라 문학가 포송령(蒲松)의 고향이기도 하다.

 

쯔보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1시간 정도 가면 저우춘 고상성(古商城)이다. 실제로 하천이나 바다도 없지만 육상()의 마터우(码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유통의 중심이던 곳이다. 이곳에서부터 비단가게 루이푸샹이 성장했다. 중국문화를 알고자 하면 상인정신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공자의 후손 공상희(孔祥熙)나 맹락천은 모두 유교적 규범으로 무장한 유상(儒商)이다. 장사를 하는데도 ()’가 있다면 공맹지도(孔孟之道)야말로 배우고 익힐 일이 아니겠는가?

 

산동만으로도 책 몇 권은 쓰고도 남는다. 아무리 여행을 자주 다녀도 장님 코끼리 만지듯머리 속에 남지 않는 기억이란 쓸모가 없다. 중국여행을 통해 역사와 문화를 배우고 13억 중국인의 생활을 이해하는 것이 바로 진정한 의미의 여유가 아닐까?

 

최종명, 작가 및 중국문화여행 동행 / 「꿈꾸는 여행, 차이나」 「13억 인과의 대화」 , 「민,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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曲阜孔庙 2014.01


세계문화유산의 도시 취푸의 삼공(공묘/공부/공림) 중 공묘의 분위기입니다. 언제 가도 늘 아늑하고 따뜻한 문화의 향기가 샘 솟는 도시입니다. 공묘 안을 들어서면 각종 다양한 문화적 스토리가 풍부합니다. 하나씩 다 둘러보고 설명을 들으려면 거의 2시간은 걸립니다. 2014년 1월에 다시 찾은 공묘, 완벽해부했습니다. 정말 재미난 이야기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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青州昭德古街 2014.01


중국정부가 2009년에 역사문화거리를 처음으로 선정할 때 포함된 거리입니다. 중국의 수많은 역사와 문화가 있는 거리 중에서 가장 먼저 선정될 정도로 유서 깊은 곳입니다. 회족들이 사는 거리로 전교사라는 무슬림사원도 자리잡고 있습니다. 칭저우는 중국 최초의 지리서 <우공>의 구주의 한 곳으로 역사가 오랜 지방입니다. 춘추전국시대 제나라 영토로 역사문화여행 코스로 손색이 없는 도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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潍坊杨家埠民间艺术大观园 2014.01



웨이팡은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연(풍쟁)의 도시입니다.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양가부촌에는 멋진 민간예술대관원이 있으며 연과 연화(판화)를 직접 제작하는 공예방이 있기도 합니다. 4A급 관광지로 각종 박물관이 함께 있으며 혼례청, 농기구전시실, 서화원 등 서민문화를 함께 볼 수 있습니다. 명청시대 촌락을 그대로 재현해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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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muykr.tistory.com BlogIcon muy.kr 2014.04.09 15: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진 잘 보고 갑니다..^^




<최종명의 차이나리포트> 2회 산둥 2 공자 향기 가득하고 태산 일출 붉디붉다

 

 

5) 지난() 싱그러운 샘 맑은 호수에 마음을 담그고

 

산둥 성 수도(省會) 지난에는 몇 년 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때 온 도시가 공사 중이었는데 지금도 도시개발로 꽤 복잡하다. 하지만 샘이 많아 샘의 도시라는 뜻으로 취엔청(泉城)이라 하니 바오투취엔(突泉)으로 서둘러 가지 않을 수 없다.

 

바오투취엔은 시내 중심에 있는 공원이자 수많은 샘들 중 하나이다. ‘뛰어올라 솟아나는 샘이라는 뜻이니 이름도 역동적이면서도 기품이 있다.

 

공원 안에 들어서면 먼저 이청조()기념당과 만나게 된다. 남송 시대 유명한 여류시인이자 문학가이다. 사대부 집안에서 태어난 그녀는 안빈낙도 같은 느낌의 이안거사(易安居士)라 불리며 <여몽령()>과 같은 소설을 통해 규방생활의 절제된 모습과 마음 속 그리움의 정서를 잘 드러냈다고 평가된다.

 

샘이 많은데 단청 색감이 도는 둥근 문, 바위와 나무들이 서로 어울려 아기자기한 공원이다. 많은 샘이 서로 이어져 있는 곳이지만 그래도 역시 최고는 바오투취엔이다.

 

바오투취엔(왼쪽), 이청조기념관(오른쪽위), 다밍후(오른쪽아래)

 

기록에 따르면 이미 2,700년 전부터 사람들과 친근했던 샘으로 일년 내내 평균 온도가 18도를 유지한다. 부글부글 솟아나는 물결을 따라 떠오르기도 하고 가라앉기도 하는 물고기들의 모습이 꽤나 평화로워 보인다. 무성하게 자란 나무와 정자, 사당이 거울처럼 투명하게 비치는 샘을 보고 있으니 그 어떤 시름조차 다 사라질 듯하다.

 

샘 안에는 두 개의 비석이 박혀있는데 첫손에 꼽는 샘이라는 뜻의 '디이취엔(第一泉)'은 청나라 함풍제 시대 서예가인 왕종림(王鐘霖)이 썼으며 '바오투취엔(突泉)'은 명나라 시대 이 지방 고급관원인 후찬종()의 글씨라고 한다. 회색 빛 바위에 하늘색으로 새긴 돌의 느낌이 투명한 샘물과도 잘 어울린다.

 

공원을 나와 광장에서 뛰어 노는 아이들을 보며 시 중심을 따라 황청루(城路)라는 골동품거리를 지났다. 다시 다밍후(大明湖) 호수로 발길을 옮겼다. 호수면적만 거의 100만평에 이른다는 어마어마한 호수이다. 놀이시설도 있긴 하지만 호반 주위에 자리잡고 있는 사당이나 정원이 참 멋지다.

 

산들바람도 불어오고 어둠이 차츰 짙어가는 호반 길을 따라 톄궁츠(公祠)에 이르렀다. 명나라 초기 베이징에 거주하던 연왕(燕王) 주체(朱棣)가 황제의 지위를 찬탈하는 정난지변(靖難之)을 일으키자 병부상서 철현()이 고군분투해 싸우다 전사했다. 이곳은 바로 그를 기리기 위한 사당이다. 패장의 모습이 호반 위에 쓸쓸하게 남아있을 것 같아서 잠시 숙연해진다.

 

저녁이 되자 호수의 윤곽이 점점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다. 빨리 걸어도 2시간은 걸려야 제대로 볼 수 있는 공원인데 어둠 때문에 서둘렀더니 다리도 지쳤다. 호수 속 섬 안에는 고풍스러울 듯한 식당이 하나 있는 지 불빛이 아른거리며 사람들 자취가 오락가락 한다.

 

6) 타이안(泰安) 황제도 오른 산에서 본 붉디붉은 일출

 

타이안 역에서 버스를 타고 20분이면 타이산 입구 톈와이춘(天外村)에 도착한다. 태산은 톈와이춘에서 중톈먼(中天)사이, 그리고 중톈먼과 난톈먼(南天)사이를 나누면 오르는 시간이 각각 2~3시간으로 엇비슷하다. 물론 버스나 케이블카를 타면 힘들게 등반을 하지 않아도 된다.

 

이톈먼(一天)은 등정의 출발지점이다. 디이산(第一山)을 지나고 톈제() 문도 지난 후 작은 태산이라 이름 붙은 샤오타이산(小泰山) 사원에서 잠시 쉬기도 했다. 완셴러우(仙樓) 앞에서 입장권을 사고 서서히 태산의 악명 높은 계단들과 만났다. 고생해 쌓은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계단을 따라 등산을 하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맨땅을 밟고 오르는 것만 못한 것이다.

 

산을 내려오는 사람도 많고 올라가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짐을 실어 나르는 짐꾼들이 계단을 오르면 모두 자리를 비켜주기도 한다. 어깨와 허리 힘만으로 정상까지 짐을 가져간다고 생각하니 대단한 체력이 아닐 수 없다. 그들에게는 생계이겠지만 여행자들에게는 또 하나의 구경거리이다 보니 미안한 마음도 든다.

 

중간지점인 중톈먼에 도착했다. 정말 더 이상은 이 돌계단 못 오르겠다고 나자빠질 즈음이었다. 온몸이 땀에 젖었지만 좀 쉬면서 기분과 체력을 충전했다. 재물 신을 모시는 사당(財神廟) 앞에는 소원을 비는 열쇠가 주룩주룩 달려 있다.

 

정상으로 가는 케이블카를 탔다. 10분만에 난톈먼에 도착했다. 젊은 학생들이 산 아래에서부터 줄곧 걸어서 올라오는 것에 비하면 훨씬 편안한 정상으로의 비상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땀 한 톨 흐르지 않는 모습을 좀 숨겨야 하지 않을까 괜한 걱정도 했다.

 

암석 벽이 온통 서예 전시장인 다관펑(大觀峰)을 지나는 계단을 따라 조금 더 가면 최정상이다. 그 표지판은 바로 위황딩(玉皇)이라는 사원 마당에 있다. 보통의 정상과 달리 많은 사람들이 향을 피우고 열쇠를 달고 예를 갖춘다. 산 정상을 마당으로 해서 사원을 세웠기 때문이니 이런 정상이 세상에 또 어디에 있을까 싶다.

 

다시 난톈먼까지 내려와 숙박을 정하고 다음날 새벽 4시에 기상하라고 방문을 두드릴 때까지 푹 잤다. 재빨리 이빨 닦고 짐을 챙겨 나오는데 모두들 중국 군용 윗도리 잠바를 입고 있어서 물어보니 정상에 가면 아주 추울 것이라 한다. 6.25 전쟁 당시 중공군 같지만 춥다고 하니 하나 빌려 입고 행렬을 따라 올라갔다.

 

해가 잘 보일만한 곳에 자리를 잡고 기다리니 해가 서서히 솟아오르기 시작한다. 떠오르는 붉은 해는 장엄하고도 신선했다. 중국 땅에 와서 이렇게 일출이란 것을 보니 감회가 또 새롭다.

 

일출을 보러 온 사람들이 줄잡아 만 명은 넘어 보인다. 서로 말을 나누지는 않았지만, 서로의 기원이 다 다르겠지만 일출 앞에서 무언가 같은 대상을 향해 나란히 있다는 것만으로도 서로 마음이 통하는 듯싶다. 서로에 대한 눈인사가 평소와 달리 따스하다.

 

위황딩(왼쪽), 일출 모습(가운데), 하산 길 계단(오른쪽)

 

일출을 본 기분이 컨디션을 끌어올렸는지 난톈먼에서 중텐먼까지 계단을 따라 과감하게 내려갔다. 어제 이 가파른 계단을 걸어올라 왔다면 탈진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드는 길이다.

 

태산 계단은 정말 많은데 도대체 몇 개인지 찾아봤다. 한 여행책자에는 6,660개가 있다고 하고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다 제 각각이다. 6,290개가 신빙성이 좀 있어 보인다. 그렇지만 계단 숫자야 숫자일 뿐이고 오히려 고행의 계단이라는 의미를 지닌 십팔반(十八)이란 말이 재미있다.

 

룽먼()에서 조금 더 내려오면 '난톈문 쪽으로 뒤돌아 십팔반 전체 경관을 보라'는 문구와 함께 십팔반이 시작되는 곳이라는 팻말이 있다. 십팔반이라 부르는 약 1,600개의 이 가파른 계단이야말로 등산로 중에서 가장 숨찬 곳이니 인생에 비유할 만 하다.

 

태산을 오르고 평생에 한번 보기 힘들다는 일출까지 무사히 봤으니 소원 풀었다. 다시 타이안 역으로 돌아와 버스를 타고 공자의 숨결을 느끼러 출발한다.

 

7) 취푸(曲阜) 공자 조각상 호나우딩뇨와 닮았네

 

취푸의 쿵먀오(孔廟), 쿵푸(孔府) 그리고 쿵린(孔林)을 합쳐 싼쿵이라 하는데 이 셋을 묶어 세계문화유산이다. 위대한 사상가이며 교육자, 정치가인 공자(孔子)가 그 중심인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취에리()라고 쓰여있는 패방을 지나니 공예품 가게들이 늘어서 있다. 벌써부터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는데 취에()라는 말이 곧 대궐 문이란 뜻이니 공자를 황제의 반열로 대우한 역사가 서서히 느껴진다. 북방민족이거나 중원의 한족정권이거나 황제는 통치의 안정화를 위해 공자를 성현으로 끌어올린 역사가 바로 중국 역사이기도 하다.

 

쿵먀오는 중국의 3대 궁전 건축물 중 하나로 평가되는데 남북으로 1킬로미터가 넘고 행랑채가 400칸이 넘는다니 그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쿵먀오의 본 건물인 다청뎬(大成殿)은 폭이 45.78미터이고 깊이가 24.89미터, 높이가 24.8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건축물이다. 베이징 고궁()에서 가장 큰 건물인 타이허뎬(太和殿)에 견줄 만하다.

 

다청뎬 앞에 있는 열 개의 돌기둥에는 두 마리 용이 구름 속을 날아오르는 모습으로 구슬을 머금고 있는 모습이 있다. 이를 '두 마리 용이 구슬을 가지고 논다'는 얼룽시주(二龍)이라 부른다. 이 하늘을 찌를 만한 기세는 황제를 상징하는 것이자 현재 중국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자주 부각되고 있다.

 

안에는 높이가 3.3미터에 이르는 공자 조각상이 자리를 잡고 있다. 공자의 얼굴을 자세히 보면 브라질 축구선수인 호나우딩요처럼 앞 이빨 두 개가 돌출돼 있다. 호나우딩요와 닮은 공자, 생각만 해도 적절하면서도 웃긴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국 방방곡곡에 공자조각상을 많이 봤지만 이렇듯 강렬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조각상은 본 적이 없다.

 

크고 둥근 눈, 넓은 코에 튀어나온 이빨, 미남형은 아니지만 양손을 모으고 예를 갖춘 모습이 유교스럽다고 한다면 표현이 이상할 지 모르겠다. 양 옆으로 안회(顔回), 증삼(), 공급(孔及), 맹가()의 동상이 보좌하고 있다.

 

이에 비해 쿵푸는 쿵먀오의 서쪽에 있는데 공자의 후손들이 살던 터전으로 행정기관과 주거공간이 복합된 곳이다. 공자의 후대 사람들을 옌성궁()이라 부른다고 하는데 공자의 사상을 널리 퍼뜨리는 사람인 옌성궁들의 생활과 가족문화가 잘 보존돼 있다. 다양한 기능과 위상을 가진 건축물들이 463칸이나 되는 거대한 집이다.

 

쿵먀오 공자 상(왼쪽), 쿵푸(오른쪽위), 쿵린 공예품 거리(오른쪽아래)

 

가운데 본채를 중심으로 동쪽으로는 가묘가 있고 서쪽으로는 공부방인 학원으로 구성돼 있다. 본채는 앞쪽으로 업무를 보던 관아가 있고 뒤쪽으로 주택이자 정원이 있다.

 

쿵린은 공자의 무덤이 있는 곳이다. 안으로 들어서니 양쪽으로 공예품 거리가 형성돼 있다. 공자의 얼굴을 상품화한 것도 흥미롭고 '친구가 멀리서 오면 그 아니 기쁘지 아니한가'(有朋自不亦)라는 논어의 명 대사가 가방에 적혀 있는 것은 처음 보는 것이라 신기하기도 했다.

 

쿵린은 중국에서도 가장 규모가 크고 잘 정비된 묘원이라 할 만하다. 공자 묘뿐 아니라 공씨 집안의 가족 묘도 있으며 유명 서예가들의 비석들도 곳곳에 많이 놓여 있다. 공자보다 먼저 죽은 아들 백우(), 공리()와 공리의 아들 자사(子思), 공급(孔及)의 묘가 있고 그 뒤에 바로 공자 묘가 있다.

 

공자 묘 앞에 서니 2,500여 년 전 한 뛰어난 사상가의 힘이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생각하니 감회가 새롭다. 진시황의 분서갱유, 현대의 문화혁명에도 아랑곳 없이 굳건하게 오늘에 이른 것은 당시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진리와 진실을 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옳고 그름을 떠나 '인간'을 생각하는 지혜와 학문이야 변할 리가 있겠는가. 종교지도자가 아니면서 그 어떤 종교 창시자보다 더 존경 받고 추앙 받는 이가 어디 또 있을까. 아마 그런 면에서 공자가 돋보이는 지도 모르겠다.

 

8) 취푸(曲阜) 공자의 일생과 사상을 다룬 무대공연 행단성몽

 

저녁에는 넓은 야외 공연장에서 막이 오른 행단성몽(杏壇聖夢)을 보러 갔다. 취푸 시가 의욕적으로 기획 제작한 이 공연은 정말 볼 만하다. 차분하게 현장에 있다고 생각하고 감상해 보기 바란다.

 

공자는 66세의 아버지와 20세가 채 안 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기원전 551년에 태어나 479년까지 살며 장수했다. 공자의 일생과 사상을 주제로 50여 명의 배우들이 출연하고 마차를 비롯한 각종 소품들이 다채롭기도 하거니와 음악과 무용, 무술과 연기가 마치 살아있는 종합예술을 본 느낌이다.

 

사대부의 문방사우도 등장하고 전쟁 속 군무도 표현하는 등 다양한 유교문화적 아이템을 창조적으로 구현한 작품으로 보는 내내 감동적이었다. 중간에 한국 무용이 잠깐 등장하는 것에 좀 놀랐지만 깊이 고민하지 않고 그저 편안한 마음으로 감상했다. 상업적으로 봐도 한국에서 공연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연을 보고 근처 야시장에 들러 양고기 구이에 맥주를 마시는데 앞자리에 있는 여자아이가 귀엽게 웃으며 친한 척을 한다. 귀엽다고 했더니 자기 아빠한테 가서 귓속말을 속삭이더니 담배를 가져와 건네줘서 깜짝 놀랐다.

 

마침 지갑을 뒤져보니 한국 돈 천원 지폐가 있어서 기념으로 가지라 했더니 좋아한다. 그 옆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자기네 자리로 오라고 해서 자리를 옮겨 생맥주를 함께 마셨다.

 

취푸에는 격의 없이 대해주는 인심 좋은 사람들이 많은 듯 보여 더욱 정이 가는 도시였다. 공자와 대화했고 공자의 공연을 봤으며 야시장의 느긋하고 이국적인 분위기로 인해 취푸의 밤은 더욱 깊어가는데 하늘에 뜬 달은 점점 더 밝아지고 있었다.

 

행단성몽 공연 모습


최종명(중국문화전문가)

pine@youyu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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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명의 차이나리포트> 1회 산둥 1 역사의 해신으로 우뚝 선 장보고 



중국 중원의 동쪽 산둥 성 끝자락은 우리나라 서해와 닿아있는 아주 가까운 곳. <서경>에는 우공구주도(禹貢九州圖)라는 춘추전국 시대 이전의 중국 지도가 있다. 태산을 기준으로 서남부를 연주(兖州)라 하고 동부를 청주(青州)라고 기록돼 있는데 이 두 곳을 합치면 지금의 산둥 땅이다.


주(周)나라 시대 강태공(姜子牙)의 봉읍을 제(齊)라 했고 무왕의 동생 주공(周公)의 봉토를 노(鲁)라 했는데 이 두 제후국의 영향을 받아 ‘제노문화’의 성지라 일컫는다. 공자와 맹자의 고향이며 북송 시대에는 <수호지> 양산박의 거점이었으며 명나라 때에는 항저우와 베이징을 잇는 운하의 조운지로서 번창했다. 청나라 말기에는 맹자의 68대 후손인 맹낙천(孟洛川)이 베이징에 비단가게인 루이푸샹(瑞蚨祥)을 세워 산둥 상인들이 유명해지는 계기가 됐다. 서구 열강의 개항지이던 칭다오를 중심으로 중국 경제성장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1) 룽청(成) 신화가 아닌 역사의 해신으로 우뚝 선 장보고


룽청시 스다오(石島) 진에 장보고의 흔적이 있다. 드라마 <해신>의 장보고는 당나라 무녕군에 참전해 공을 세우고 청해진을 설립했으며 해적을 소탕하고 해상무역을 발전시킨 역사적 인물인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츠산(赤山)에 불교사원인 법화원을 세워 일본 승려를 배려하는 등 불교에 관심이 많았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장보고기념관은 바로 장보고가 세운 법화원 산자락에 조성돼 있다. 아침부터 아주머니들과 학생들이 동원된 가운데 요란하게 개관식이 열렸다. 이미 일반인에게 공개되긴 했지만 외국인 이름의 기념관이라 중앙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했기에 뒤늦게 공식행사가 열린 것이다. 행사가 끝나자 축포소리 때문에 귀가 따갑다. 전쟁영화 속의 음향효과처럼 시끄럽기도 하거니와 종이꽃가루가 폭설처럼 내린다. 하늘을 다 가릴 듯 휘날리는 꽃들이 수북하게 다 떨어지고 나서야 겨우 기념관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기념관 마당에 전통공연과 서커스가 벌어지고 있다. 사자 가면 춤을 추는 사람들 옆에 가오챠오(高蹺)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긴 막대 중간에 다리를 걸치고 말처럼 움직이는 가오챠오는 사람을 목마 태우기도 하고 북을 치며 걷거나 뛰어다니는 민속놀이이다. 중국에서 이런 장면을 보게 되면 높을 고 자에 발돋움할 교 자, 중국어로 가오챠오라고 기억하시면 된다.


아담한 마당 안에는 8미터 높이의 장보고 동상이 우뚝 서 있다. 과일과 생선을 차렸으며 사람 키만큼이나 큰 향을 태워 연기를 피우며 예를 올리고 있다. 동상 위로 노랗고 붉고 파란 깃발들이 만국기마냥 휘날리고 있다. 바람 부는 대로 깃발은 이리저리 흔들리건만 장보고 동상의 시선만큼은 늠름하게 바다 너머를 향하고 있다. 그런데, 장보고 시선이 머무는 산 정상에 엄청나게 큰 동상 하나가 역시 바다를 향해 있다. 높이만도 33미터가 넘는 이 청동 주조 동상을 밝을 명자를 써서 명신(明神)이라 부른다.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가는 이 지방사람들 전설 속에 등장하는 바다의 신이다. 산꼭대기에까지 이 거대한 동상을 세우기 위해 꽤나 공을 들인 듯하다.


가파른 계단을 따라 신화 속 해신인 명신의 얼굴을 보고 있으니 역사의 한가운데에서 걸출하게 살았던 해신 장보고의 우렁찬 기상이 새삼 떠오른다. 신화보다는 역사의 얼굴을 더 마음에 담는 것이 진정한 칭송이 아닐까 싶다. 산둥 동쪽 끝자락 룽청에 있는 장보고야말로 신라인으로서, 중국에서 성공한 역사적 인물이다.


2) 웨이하이(威海) 청일전쟁의 상처가 남아있는 한나라 황족의 피난처


깔끔한 해안도시 웨이하이 시 앞바다에 류궁다오(劉公島) 섬이 있다. 배를 타고 약 20분을 가야 한다. 바다 바람에 휘날리는 깃발이 시원해 보인다. 섬 북쪽은 절벽이어서 가파르고 남쪽은 완만하고 동서 4.8킬로미터, 남북 1.5킬로미터에 이르는 그다지 크지 않은 작은 섬이다.


이 섬을 류궁다오라고 부르는 이유는 유방이 세운 한(漢)나라와 관련이 있다. 초패왕 항우와의 전쟁에서 승리해 나라를 통일하지만 신(新)나라를 세운 왕망에 의해 패망하게 되는데 이때까지를 서한 또는 전한이라 한다. 다시 황족인 광무제 유수에 의해 나라를 복원하니 이를 동한 또는 후한이라 한다. 동한 말기 황건적의 난이 발생하게 돼 역사는 삼국시대로 접어들게 된다. 동한이 망하자 황족이던 유공 일가가 도피해 온 곳이 바로 이 섬이다. 황족이었지만 지역민들과 조화를 이루고 살았고 존경 받았던 인물이었다고 전한다.


바다의 성인이란 뜻의 하이성뎬(海聖殿)은 유씨 일가의 조상을 모시는 사당이다. 2천 년이나 지난 인물들의 조각상과 벽화이어서인지 신비롭고 신화적으로 구성돼 있다. 섬 곳곳은 전통가옥으로 잘 꾸며져 있으며 문과 창살마다 중국 문양과 현판글씨가 우아하고 세련된 모습으로 남아있다. 작은 정원 한가운데 커다란 용머리가 있다. 줄줄 떨어지는 물을 튕기면 피아노 음계 소리가 나는데, 몇 년 전 왔을 때에는 물에서 노래 소리가 나서 깜짝 놀랐었는데 이날은 물이 나오지 않아 아쉽게도 듣지 못했다.


이 섬은 청나라 말기 북양군벌의 해군기지가 있던 곳이기도 하다. 북양군은 안후이 출신의 이홍장이 만든 군사조직으로 갑오년 청일전쟁 당시 가장 강력한 군대였다. 북양군은 이곳은 근거지로 동해와 만주에서 일본군과 싸웠지만 전쟁에 패한다. 그래서 청일전쟁에 대한 기억과 자취를 전시한 갑오전쟁기념관이 있다. 북양함대 표시가 있는 큰 닻도 있고 전쟁 당시 상황과 역사를 전시하며 영화도 상영한다.


갑갑한 실내 분위기가 싫어 밖으로 나왔더니 잔디 위에서 뒹굴며 노는 꼬마 아이가 아는 체를 한다. 여행 중에 개구쟁이 아이들과 함께 놀면 동심으로 돌아간 듯 마음이 편안해진다. 중국 아이들의 맑고 투명한 발음을 들으면 저절로 귀속에 쏙쏙 들어와 중국어 공부에도 도움이 된다. 배를 타고 다시 돌아가야 하지만 중국에도 이런 유서 깊은 섬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좋은 기회였다.


3) 칭다오() 청아한 해변을 걸었더니 토끼를 오려 주네


칭다오에 도착해 택시를 타고 숙소를 찾아갔다. 해변이 너무 아름다워 서둘러 해변으로 나섰다. 시원한 해변을 끼고 발달한 도시 칭다오는 해안도로에 자전거 통행이 금지돼 있어서인지 다른 도시처럼 번잡스러운 느낌이 없어서 참 좋다. 한적하기도 하고 바다 바람도 상쾌하니 산보하기에는 제격이다. 해수욕장 도로를 따라 걸으니 주변 풍광이 정말 마음에 든다. 해수욕장 하나를 지나 또 다른 해수욕장으로 가는 모퉁이를 돌아설 때마다 새로운 풍경이다. 아담하고 조경이 예쁜 집들이 모여있기도 하고 자그마한 카페가 있어 하루 종일 차를 마셔도 좋겠다 싶다.


해변을 걸어가다 보면 바다관(八大關)이라는 팻말이 보인다. 지금은 부유층 별장 마을이자 고급호텔이 자리잡고 있지만, 원래 이곳은 20세기 초에 한 독일 건축가가 설계해 러시아, 영국, 프랑스, 미국, 스페인 등 서구열강의 사옥이 자리 잡았던 곳이다. 바다관은 만리장성의 관문 8곳의 이름을 따온 것이다. 한 블록마다 만리장성의 관문을 넘는 느낌이다. 샤오관(韶關), 자위관(嘉峪關), 한구관(涵谷關), 정양관(正陽關), 린화이관(臨淮關), 닝우관(寧武關), 쯔징관(紫荆關), 쥐융관(居庸關)을 넘듯이 걸어본다. 거리 이름을 왜 관문을 따서 지었을까? 아마도 만리장성을 넘듯 중국 본토로 들어온 서구열강의 흑심이 담겨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봤다.


다시 바다로 나오니 신랑 신부들이 예복을 곱게 차려 입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비가 살짝 내리는데도 분위기를 살려보려고 화사하고 행복한 표정을 짓는 모습이 볼수록 부럽다. 결혼사진 찍는 곳으로 해변도 참 색다른 멋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낚시도 하고 조개도 줍고 물장난도 친다. 심지어 아직 4월인데 수영까지 한다. 모래사장에서는 배구도 하고 연인들은 데이트도 즐긴다. 한여름 해수욕장에서는 느낄 수 없는 느긋함과 여유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은 이 도시에게는 행운이 아닐 수 없다.



해변 끝자락에 있는 루쉰공원에 이르렀다. 정문의 글자체는 문학가이자 민족주의자 루쉰이 쓴 글에서 채집한 것이라고 한다. 루쉰 조각상도 멋지지만 저서 <눌함(呐喊)>을 책 모양으로 만든 것도 인상적이다. 1912년 신해혁명과 1919년 5.4운동 시기의 사회상을 담은 소설집인데 ‘광인일기’와 ‘아Q정전’이 담긴 책이니 루쉰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해변을 다 벗어난 곳, 조그만 사당 옆에 공예품 상가가 있다. 민속박물관이라 써 있지만 상품 파는 곳이겠지 하며 들어섰다가 아주 마음씨 넉넉한 아주머니 한 분을 만났다. 종이를 오려서 여러 형태의 모양을 만들어내는 중국 민간예술 중 하나인 젠즈(剪纸) 공예가이다. 중국 공예품 가게 어느 곳에서나 늘 보이는 이 종이공예는 공장에서 대량생산한 것이 대부분이다. 뜻밖에도 민간예술인 호칭을 받는 리원링(李文玲)여사의 시연을 볼 수 있었다.


나이와 띠를 물어보더니 5분도 되지 않아 가볍게 삭삭 가위로 오리더니 귀여운 토끼 한 마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선물로 준다. 졘즈를 본 것만으로 고마운데 여행 중에 고이 간직하라는 덕담까지 들으니 정말 너무나도 기분 좋은 일이었다. 해변 끝까지 걸었던 덕에 친근하고 달콤한 민간공예와의 만날 수 있었나 보다.


4) 칭다오() 이름난 산에는 도교도 불교도 있다


칭다오에서 해안도로를 달려 동쪽으로 1시간 가량 떨어진 곳에 라오산(嶗山)이 있다. 케이블카를 타고 산의 절경을 이리저리 바라보는 사이, 10 분도 안돼 산 정상 부근에 도착했다. 옛말에 ‘태산 구름이 비록 높다 하나 동해 라오산만 못하다(泰山雖雲高, 不如東海嶗)’고 했다. 도교를 숭상한 인물들이 왜 이곳에서 수도를 했는지 짐작이 가는 신비한 산세다. 진시황과 한무제도 순행 중에 이곳의 모습을 경탄했다고 한다. 해발 1133m로 그다지 높지 않지만 도교의 흔적이 많다. 가장 번성했을 때는 암자가 일흔두 개나 있었다고 한다.


동굴 암자인 밍샤둥(明霞洞)에는 목련과 백일홍 고목이 둘러싸고 있다. 커다란 암석 사이로 동굴 입구가 있다. 안으로 들어가니 도 닦기 참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늑하고 조용했다. 마당에는 먼산을 바라보며 향을 피울 수 있다. 하나에 10위엔이니 커다란 향 하나 다 탈 동안 연기를 따라 먼 산을 바라보며 고뇌를 다스려 본다 해도 좋을 듯하다.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산을 내려오니 점심 시간이다. 혼자 여행을 다니면 점심 먹는 일이 난감한데 마침 젊은 연인 한 쌍이 보인다. ‘같이 앉아서 밥 먹어도 돼?’ 했더니 흔쾌히 좋다고 한다. 고향이 산시(陕西) 성 시안이며 둘이 여행을 다니는데 아주 다정해 보였다. 여자친구는 성격이 발랄하고 귀여운데다가 한국드라마를 아주 좋아한다고 해서 금방 화제가 생겼다. 인터뷰 좀 하자고 했더니 ‘안녕하세요’라고 말하는 여자친구가 정말 귀엽다. 남자친구는 다소 수줍어하는데 한국 배우 중에 권상우와 장나라를 좋아한다. 이 남자친구와는 몇 달 후 시안에서 다시 만나 함께 저녁을 먹었는데 한국드라마를 좋아하는 친구들을 데리고 나오기도 했다.



점심을 먹고 버스로 다시 해안을 따라 20분 더 동쪽에 있는 화옌쓰(華嚴寺)에 도착했다. 명나라 때에 세워진 불교사원인데 자료에 의하면 산둥반도의 재력가들의 헌납으로 세워졌다고 한다. 화옌쓰는 라오산 고대건축의 최고봉이라 일컬어도 되는 화려한 사원건축의 백미이다. 사원 오르는 길은 평탄하고 바위마다 멋진 필체의 서예가 조각돼 있다. 단청처럼 맑고도 아름다운 색채를 담고 있다.


도교와 불교가 한군데 어우러진 명산을 볼 수 있는 즐거운 하루였다. 길거리에서 만났지만 전생에 인연이 있었지 싶은 친구들도 사귀게 됐다. 해안도로를 따라 돌아오는 길이 내내 좋을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최종명(중국문화전문가, 기자)
pine@youyu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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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사람들과 만찬을 하면 참 다양한 에피소드가 생긴다. 물론, 만찬내용에 따라 그 규모와 수준이 달라지긴 한다. 역시 만찬에서의 최고의 기준은 술이라 할 것이다. 어떤 술을 떡하니 내놓느냐에 따라 비즈니스에 임하는 자세와 기대치가 반영되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 사람들은 식사에 곁들이는 술의 종류에 따라 요리의 질도 함께 좌우되니 늘 어떤 술과 요리가 나오는 지가 관심일 수 밖에 없다.
 
지난 11월 중순, 중국 다거(大哥, 형)의 소개로 무송이 태어난 고향, 칭허(清河)에 갔다. 한 회사의 총경리(사장)와 동사장(회장)과 연이틀에 걸친 만찬을 겼어야 했다. 첫째 날 저녁과 둘째 날 점심은 회장의 아들인 사장과의 만찬이었고 둘째 날 저녁은 회장과의 만찬이었다. 회장과의 만찬이야말로 정말 기억에 남을 좋은 시간이었다.

우선, 술이 예술이었다. 한때는 중국의 8대 명주에 속할 정도로 고급 바이쥬(白酒)인 양허란써징뎬(洋河蓝色经典)이라는 술을 4병 마셨다. 굉장히 비싼 술이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소비자가격이 600위엔(약 12만원)이 넘는다. 회장 자가용에서 가져왔으니 망정이지(그 동네 식당에서는 팔기 힘든 술) 식당에서라면 아마도 우리나라 돈으로도 한 병에 20만원이 넘었을 것이다. 이술은 난징의 명주로 유명하다.

명주들인 우량예(五粮液)나 마오타이(茅台)에도 버금가고 술의 목넘김이 아주 자연스럽고 부드러워 48도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많이 마셨다. 칠순을 코앞에 둔 노인네 회장이 함께 건배를 하는 통에 어쩔 수 없이, 즐거운 음주를 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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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의 바이쥬 마시는 주량은 가히 공포였다. 회사의 사훈이 '좋은 인물을 만들어야 좋은 상품을 만든다(好做人品,好做产品)'로 인상도 좋고 철학도 짜릿하지만 사람 사귀는 능력도 탁월하다. 통쾌하게 술을 주고 받는 성격이 호탕한 것이 참 마음에 든다. 와인 잔에 바이쥬를 가득 담아 건배를 준비 중이다. 이날 저 와인 잔으로 10잔 정도 마신 듯하다. 아래 사진은 마지막 잔을 마시기 위해 준비 중이 모습인데, 술이 모자라서 반에 반도 채우지 않은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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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이면서 만찬을 했던 칭허빈관이다. 촌스럽게 보이지만 식당요리만큼은 베이징 등 대도시에 버금가는 맛갈 있는 요리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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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날, 사장과 만찬 도중에 '한글넥타이'를 선물했다. 한글넥타이를 맨 중국 사장이 매우 기분이 좋다. 선하게 생긴 인상인데 위의 회장 친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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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와인잔에 바이쥬를 따르고 마시기도 하지만 조그만 잔에 한잔씩 부운 채 건배를 하기도 한다. 물론 동네마다 틀리다. 이 정도 와인잔을 그냥 한번에 건배하는 동네를 꼽으라면 산둥이나 하얼빈 지방이니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이 와인잔도 중베이(中杯)이고 이보다 더 큰 다베이(大杯)로 건배를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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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민물고기는 우창위(武昌鱼)인데 중국에서 가장 맛 있다고 소문난 것이다. 후베이 우창 지방 장강에서 잡히는 고기인데 꽤 유명하고도 비싸다. 주로 중국사람들은 찐 상태로 소스를 부어 상에 올린다. 단백한 생선살을 발려내 소스에 찍어서 안주로 삼고, 가끔은 밥에 부어 먹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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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허는 그렇게 큰 도시는 아니지만 활발해보인다. 양모 생산유통 단지로 유명하기도 하다. 무송의 고향이어서 거리 이름도 무송의 이름을 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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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을 둘러보고 점심을 먹으러 들렀다. 예상했던 대로 맥주를 마셔야 했다. 1인당 5병은 기본이다. 세팅된 식당 룸이 깔끔하다. 앞접시와 수저, 물잔과 술잔, 물수건 받침대, 재떨이가 잘 구성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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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에 약간의 파를 썰고 참기름을 두룬 요리를 앞접시 위에 앞접시 위 공기에 넣어서 살짝 먹었다. 안주가 오기도 전에 이미 맥주를 따른 상태라 빨리 속을 채울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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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동네에서 나는 산채라는데 아주 쓴 맛이 난다. 그런데 뒤끝은 서서히 달콤하니 참으로 야릇한 맛이다. 소스로 접시에 뭔가 글씨를 써서 멋을 부렸는데 아무 밋밋하고 평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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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가지 요리가 출동한다. 육해공군 다 등장이다. 고기와 야채의 조합, 볶는 요리가 참 많다. 요리 방법과 재료 등에 따라 그 이름도 워낙 많아서 일일이 기억하긴 힘들다. 요리에 관심이 많다면 반드시 주문표를 보고 사진을 찍어둬야 하는데, 만찬자리에서 그렇게 궁상까지 떨기는 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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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와 야채, 고추로 만든 국이다. 속 푸는데 참 걸작이다. 향도 강하지 않고 부드러워 시원하게 먹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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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들이 오면 꼭 접대하는 물고기 우창위이다. 이 물고기가 빠지면 접대했다고 하기 어렵다고 할 정도로 유명하다. 동네나 식당마다 요리의 코디네이션이 다 다른 것도 가끔 재밌는 구경거리이기도 하다. 앵두 하나가 놓여있는데 뜬금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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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매미가 등장이다. 중국에서 탈바꿈한 매미는 약용으로 쓰인다. 지난번 베이징올림픽아웃사이드 특집에서 매미로 만든 공예품을 소개한 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그 매미를 신나게 먹었다. 맛 있어서가 아니다. 옆에 앉은 중국 아저씨가 '고단백(高蛋白)'이라면서 계속 먹으라고 접시에 올려줬기 때문이다. '고단백'이라는 말을 거의 열번 가까이 들었으니 아마도 열 개 이상 먹었으리라. 맛은 텁텁하다. 약간 고소한 듯 하기도 한데, 그 고소한 맛을 즐기기에는 이 매미가 생각보다 크다. 씹는 맛이 야릇해서 고소함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아주 좋고 비싼 것이라고 자주 말하는 것을 보아 드문 요리인 듯하다. 덕분에 맥주를 계속 들이켜야 했다.

2008/08/18 - 매미로 만든 원숭이? 뽀뽀하는 조롱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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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으로 밥이나 면도 먹지만 만두나 빵도 즐긴다. 만두 속에 따라 다양한 종류, 이름이 있다. 대체로 만두는 지역 특색이 많이 반영되는데 산둥 지방 부근이라 우리 입맛에도 잘 맞는다. 아래 검붉은 듯한 빵은 밀로 만든 것이라고 하는데, 안에 아무 것도 들어 있지 않다. 이런 종류를 별로 즐기지 않는데, 생김새와 색감이 전에 보지 못한 것이라 하나 입에 넣었는데, 맛은 그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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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사람들과 일 때문에 가끔 만찬을 할 때면, 우선 술에 대한 걱정이 가장 앞선다. 일 이야기를 해야 하거나 서로 알아가는 과정이므로 좀 신경 써야 하는 자리인데 입에 맛지 않고 부담스러우니 말이다. 원정경기라면 술에 대한 선택권도 많지 않으니 시작부터 기운 빠지는 일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너무 싸구려 술을 내오거나 하면 처음부터 영 기분이 나지 않는데, 그때는 가능한 마시는 양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거나 맥주로 바꾸기를 애타게 연기해도 된다.

이번처럼 미리 좋은 술을 준비해서 온다거나 요리에도 신경을 쓴다면 그 사람들은 나름대로 사람에 대한 배려가 풍부하다고 말할 수 있다. 매미 요리, 지금와서 생각하니 그 맛이 입안에 돌고 있는 것이 아마도 다른 곳 어디에서도 자주 보기 힘든 요리이기도 할 뿐더러 고단백이라며 애써 나눠 먹으려고 접시에 담아주던 그 마음 씀씀이가 녹아있기 때문이 아닐까. 또한, 마시기 힘들고 역사와 전통이 있는 난징 바이쥬도 그 향과 함께 인상적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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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음... 2008.12.01 04: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 울나라에 중국매미 들어와서 난리도 아닌데 몸에 좋다고 소문내면 씨가 마를까요?

    근데 저거 굼벵이죠? 변태직전인 것 같네요.

  2. Favicon of http://gaegurakji.tistory.com/ BlogIcon 개구락지 2008.12.16 13: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전에 불량 백주 먹고 큰일날뻔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게 다 추억이네요..
    ㅎㅎㅎ




새해 1월3일 산동성으로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웨이하이(威海)와 룽청(荣成)은 산동반도 제일 오른쪽 끝자락에 있으며 우리나라와 제일 근거리에 있는 도시들입니다. 최근에는 웨이하이에 인천공항에서 뜨는 직항로가 생겨 편하기도 합니다. 비행시간만 45분이니 정말 가깝지요.

지난 6일 엄청난 폭설이 왔습니다. 룽청의 한 호텔에서 아침에 일어나보니 세상이 온통 새하얀 눈으로 덮혔습니다. 눈이 잘 오지 않는 도시에 폭설이 오니 사람들이 정신이 없습니다.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정말 난감한 일이었지요.

한국에서 이륙하는 비행기가 웨이하이 공항에 도착한 후 그 비행기로 다시 한국으로 들어가야 하니 우리 판단으로는 빨리 한국에 전화를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웨이하이 공항이 오전 10시까지 폐쇄라 비행기가 인천에서 출발하지 못했다는 소식을 듣고 느긋하게 움직였습니다. 그게 바로 크나큰 실수였습니다.

룽청에서 공항까지 평소 40분이면 도착하는데 눈이 내렸으니 시간 감당이 잘 안됐지요. 또한, 우리 일행을 도와주며 직접 자기 차로 같이 움직였던 룽청방송국 아나운서도 초보라 차량을 한대 불렀더니 80위엔을 달라고 하더군요. 어느새 눈은 그쳤으나 웨이하이공항도 온통 하얗습니다.

9시40분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러 공항에 도착한 시간이 11시경. 한국에서 이륙한 비행기가 도착한 후 다시 1시간 후에 이륙하니 충분한 시간이라 생각했지요. 앗~ 공항에 아시아나 직원이 '지금 오시면 비행기 못탑니다'고 하더군요. 이유는 중국 공항 직원들이 다 퇴근했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뭔소리래?

웨이하이 국제선 비행편수는 하루 4편. 모두 인천으로 가는 듯. 따라서, 중국 직원들이 근무하는 시간이 오전과 오후 두차례이고 오전근무자들이 막 퇴근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발권도 안되고 검역도 안되는 상황인 것이지요.

비행기가 이륙이 예상되는 시간은 아직도 거의 2시간이 남았는데도 말입니다. 눈이 이렇게 많이 왔고 한국에서 비행기가 이제 겨우 이륙했는데 그럼 도대체 아시아나 항공사는 웨이하이 공항 당국에 말도 못하냐 했더니 자기들은 아무런 힘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사정해도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몇팀이 안타깝게 발을 구르고 있었지요.

메이여우빵파(没有方法)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아시아나 직원 왈, '옌타이(烟台) 공항으로 가면 오후 3시 비행기를 탈 수 있을 것'이라 하더군요. 아시아나 티켓은 옌타이와 웨이하이에서 어디서라도 좌석만 있으면 태워준다고 하니 빨리 가보라는 것이지요. 기사에게 물으니 눈 길을 헤치고 가려면 3시간 걸리고 400위엔을 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단 출발했는데, 다시 엄청나게 폭설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눈 길에 3시간을 간다는 것은 죽음을 각오해야 할 듯. 체인도 없는 데다가 비행기 시간을 맞추려면 아무래도 좀 과속을 할 것이고 불안이 엄습해오더군요. 그래서, 하루 더 묵고 다음날 가자고 합의하고 '차를 돌려주세요' 했더니만 기사 '메이원티(没问题)' 충분히 비행기 탈 수 있다는 것이겠지요. 시간문제가 아니니 차 돌려서 웨이하이로 가자고 했지요.

웨이하이 시내도 여전히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기온은 영하 5도 정도인데 바람이 꽤 불어 체감온도는 훨씬 더 낮았습니다.

폭설은 아니지만 하루종일 눈발이 내리는 해변도시 웨이하이에서 하루 더 묵는 것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웨이하이 진룽(金融) 호텔에서 내려다 본 모습입니다. 오른쪽으로 바다를 끼고 엄청 높은 건물이 앞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도시 전체는 내린 눈으로 하얗게 덮힌 상태. 해 저무는 저녁 야경이 이뻤습니다.

조명이 하나둘 켜지니 도시가 점점 색깔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날씨가 좀 덜 추웠더라면 해변가를 좀 걸어봤겠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지요. 건물 옥상에 분홍빛이 감도는 조명이 잠 인상적입니다.

웨이하이에는 아주 좋은 해수욕장이 있습니다. 몇년 전 여름에 가족들과 왔었는데 정말 물도 깨끗하고 모래는 금빛 찬란합니다. 여름에 웨이하이 해수욕장에서 피서를 하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직항로가 생겼고 20만 미만으로 왕복항공료에다가 호텔숙박료도 싸니 고려할만 합니다. 게다가 CCTV 어린이 프로그램 세트장에다가 1시간 거리에 정말 훌륭한 동물원도 있고 장보고 기념관까지 있으니 나름대로 좋은 코스입니다.

자료를 좀 더 수집해서 다음번에는 장보고 기념관에 대한 글을 쓸 생각입니다.

웨이하이 한 식당에서 주전자 묘기로 차를 따르는 장면입니다. 베이징을 비롯 곳곳에 이런 모습을 자주 보는데, 한적하고 깨끗한 도시 웨이하이에도 있더군요.

찻물이 빙빙 도는 모습을 보니 눈이 같이 마구 돌더군요. 후후

하오당지아(好当家) 그룹 계열사 중 하나인 식품회사 건물입니다. 하오당지아는 장보고기념관이 있는 룽청지역이 배출한 상장기업입니다.

하오당지아가 운영하는 골프장입니다. 36홀 규모의 골프장으로 최근에 개장했습니다.  

넓은 평원에 만들어진 골프장이니 건설비가 상대적으로 많이 안들었을 듯합니다. 코스들도 대체로 무난해보였습니다. 시간을 내서 골프를 칠지 말지 몇번 고민했습니다.

저멀리 바다가 보입니다. 룽청에는 한국기업이 약100여개 들어와 있으니 주재원들이나 그 가족들이 자주 이곳에서 골프를 친다고 합니다. 또한, 한국과 가까워서 올해 3월부터는 골프투어도 본격적으로 가동할 계획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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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종명작가 중국문화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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