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티베트에 있는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최종명의 차이나는 발품 기행] <16> 동티베트 ② 중로장채, 갑거장채, 야라설산


쓰구냥산과 가까운 샤오진에서 점심을 먹는데 멀리 설산이 보인다. 시야에 나타난 하얀 눈은 보드라운 솜털처럼 느껴진다. 이런 풍광을 보려고 동티베트에 오는가 보다. 다시 단바를 향해 열심히 달린다. 1시간 반 거리다. 30km 남은 거리부터 표지판이 환영 인사를 한다. 단바의 티베트 마을에는 라싸 등 다른 티베트 지역과 구분되는 건축양식이 있다. 왼쪽으로 끊임없이 따르는 하천, 303번 성도(省道)를 따라가면 단바의 티베트 마을, 중로장채(中路藏寨)로 가는 다리가 나타난다. 다리를 건너 꼬불꼬불한 산길을 5km 정도 오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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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초 사천(四川)에 있는 티베트 문화를 답사했다. 티베트 중심지인 라싸(拉萨)와 달리 동티베트라고 부른다. 티베트의 영토가 굉장히 넓었기에 지금의 티베트(西藏)자치구를 벗어나도 티베트 역사의 흔적은 꽤 많다. 한때 당나라 수도 장안(长安)을 점령하기도 한 민족이다. 그만큼 문화적 영토는 산재한다. 간쯔주(甘孜州) 단바(丹巴)로 들어서면 해발 2천미터 산 능선에 하얀색이 유난히 선연한 집을 짓고 사는 중로장채(中路藏寨)와 만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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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7번 국도는 정말 파란만장하고 스펙타클하다. 치렌산을 넘어가는 길은 정말 환상이다. 유채와 설산, 양떼의 천국이다. 이번에는 쾌청한 날씨와 함께 비도 내리고 안개도 자욱한 구간이 있다. 정말 최고다. 또또또 와보고 싶은 곳이다.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국도로 손꼽히는 도로로 청해성 수도 시닝과 감숙성 허시저우랑의 역사문화도시 장예를 잇는 약 350킬로미터의 비교적 짧은 도로이지만 유채꽃이 아름답고 해발 4~5천 미터에 달하는 치롄산맥을 통과하면서 만년설과 한가로이 풀 뜯는 양떼들을 무수히 보면서 갈 수 있다. 


실크로드 치롄산맥 남로에는 해발4~5천 미터에서 녹지 않는 만년설이 산맥 봉우리를 하얗게 덮고 있다. 고원 초원만 빼고는 파란 하늘에 현란하게 수놓은 하얀 구름과 더불어 양떼들의 여유와 잘 어울린다. 해발 3767m의 징양링景阳岭 고개를 넘어 감숙성 장예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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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중에서 출발해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국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회족 식당에서 든든하게 점심 먹고 협곡과 가파른 산을 넘어간다. 해발 3800m의 다반산大板山를 넘어가는 국도는 환상적이다. 구비구비 고개를 돌고돌아 오고가는 차량을 따라 넘어가면 톨게이트와 터널을 지나면 드디어 멋진 유채의 향연이 시작된다. 멀리 설산과 함께 화려한 전경이 펼쳐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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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명의 중국대장정(03) – 천년 염전을 터전으로 살아온 민족과 천주교 성당

 

티베트에 들어서면 마을에서 가장 좋은 호텔을 찾으면 마음이 놓인다. 최고의 호텔에서 묵는다는데 불만을 가질 사람은 없다. 간밤에 꼬불꼬불 산길을 20분이나 내려와 야외 온천으로 유명한 취쯔카(曲孜卡) ()에서 하루를 묵었다. 란창강(澜沧) 줄기에 섭씨 80도까지 오르는 온천이 있다는 건 고마운 일이다. 설산 아래 살아가는 사람에게 몸을 녹일 수 있는 온천이 곁에 있다는 것은 엄청난 행운이다.

 

천 년 역사를 품은 소금밭 옌징(盐井)의 아침이 밝았다. 간밤에 내려갈 때는 어두워 볼 수 없던 길을 가파르게 오른다. 지난밤에 이곳을 내려왔다고 생각하니 아찔하다. 염전으로 들어가는 길 입구는 차마고도 문화전시관이다. 차를 싣고 가는 말과 일심동체인 사람을 조각해놓았다. 한눈에 봐도 차마고도를 실감 나게 만들었다. 조각상만 봐도 험난한 여정이자 혈투였을 것이라는 생각에 경외심이 일어난다. 끌고 밀고 가야만 하는 길, 영양분인 차의 공급을 위한 절체절명의 길이었다. 차마고도의 생명이라 일컫는 소금이 바로 이곳에서 생산된다.

 

Mp-03-01 염전 입구 차마고도 조각상


Mp-03-02 공사중인 염전 가는 길

 

염전으로 가는 길이 도로 공사 중이다. 우리나라 방송국의 다큐멘터리로 이미 잘 알려진 염전을 향해 가는 길이야말로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대가 컸다. 자연스레 차마고도를 걷게 됐다. 느긋하게 주변 풍광도 구경하고 염전과 오랫동안 호흡할 수 있다니 금상첨화다. 초록으로 무성한 능선에 옹기종기 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길을 따라가면 연붉은 흙으로 덮인 험준한 산이 병풍처럼 나타난다. 더 멀리에 보이는 산에는 황토가 선명하다. 수억 년 전 시차를 두고 차례로 융기를 연출한 흔적이다. 소금밭을 가기도 전에 벌써부터 신비로운 절경에 가슴이 설레게 된다.

 

공사 현장을 돌아 나가니 멀리 염전이 보이기 시작한다. 에스(S) 자로 흐르는 강물은 마치 홍색과 황색을 섞고 다시 물을 많이 탄 듯한 빛깔로 유유히 흐른다. 강 너머로 건너가는 다리가 두 개 놓여 있고 염전도 또렷하게 보인다. 건너편 마을에는 초록이 무성하면서도 아담한 나무가 자라고 있다. 여러 가지 은은한 색감이 잘 어울린 한 폭의 이국적 산수화처럼 보인다.

 

Mp-03-03 염전을 배경으로 한 컷!

 

지금도 재래식으로 소금을 만든 흔적이 여전하다. 며칠 동안 많이 내린 비로 염전에는 일하는 사람이 전혀 없다. 소금이 맺힌 채 남아있기도 하고 물을 고인 우물도 몇 군데 보인다. 해발 약 2,300m에 위치하는 고원이면서도 온대성 기후와 연평균 강수량이 겨우 450mm 정도, 일조량이 풍부한 자연조건이 차마고도 최고이자 유일한 소금 생산지가 된 것이다.

 

신기한 점은 토양과 산세에 따라 홍염과 백염 두 종류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염분을 머금고 융기한 땅에 설산이 만나 이뤄진 천연의 조화가 아닐 수 없다. 매년 3월부터 소금 생산이 가능해지는 까닭은 점차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설산이 녹은 물이 풍부한 수량을 공급하기 때문이다. 강 서쪽은 지세가 완만해 염전이 넓게 형성되고 손쉽게 많은 양을 거두게 되는데 주로 홍염을 생산한다. 동쪽은 가파른 형세라 염전이 협소해 결정이 잘 맺어지지 않고 주로 백염이 생산된다. 그래서 생산량이 많은 홍염이 백염보다 가격이 더 싸다.

 

Mp-03-04 염전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마을


Mp-03-05 천년 염전 (사진 제공, 진현)

 

강물이 세차게 흘러간다는 것은 그만큼 협곡이 깊다는 뜻이다. 나무로 기둥받침을 쌓고 그 위에 층층 만들어진 염전까지 지하수를 끌어올려야 한다. 가장 힘겨운 노동이 바로 물통에 이고 소금밭으로 이동하는 일이다. 그러면 햇빛의 도움으로 천일염을 만드는 일은 그야말로 원시적이다. 지금도 예전과 똑같은 방법으로 변함없이 이뤄지는 일. 자연환경이 만든 이런 제조방식은 유일무이하기도 하지만 1,300여 년이나 줄기차게 유지됐다. 자연과 역사가 어우러진 보물이 2008년 중국 국가급무형문화재로 보존되는 것은 당연하다.

 

옌징이 티베트 땅이어서 티베트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오히려 주민들은 나시족(纳西族)이 훨씬 많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11세기경 티베트 왕 게사르(萨尔)와 나시족 왕 창바(羌巴)가 염전 쟁탈전을 벌인다. 게사르는 전쟁에서 승리하고 창바의 아들 유라(友拉)를 생포한다. 이후 유라는 게사르 왕의 충직한 신하가 됐고 염전을 하사 받는다. 두 민족 사이의 조화를 상징하는 미담인지 모르나 티베트 땅의 나시족 염전을 이해하는데 그다지 충분한 설명은 아닌 듯하다.

 

Mp-03-06 염전 자다촌 가정집


Mp-03-07 나시족 아버지

 

다리를 건너 자다촌(达村)으로 들어선다. 8월의 여름 마을은 한산하다. 아버지와 아들만이 집 안에 있다. 차를 내주는 아버지는 앞니가 빠진 잇몸을 드러내고 환하게 웃는다. 천연의 소금처럼 방부제 하나 없는 해맑은 미소다. 수줍음이 많은 아들 녀석은 말도 없이 시무룩하더니 사탕 하나 받아 들고서야 겨우 눈을 마주친다. 개구쟁이처럼 눈빛이 예사롭지 않은데도 이방인 앞이라 그런지 낯을 가린다. 친해지기까지 이 세상 아이들은 모두 비슷한 시간이 필요한 것인가 보다.

 

1시간 반이나 걸어 들어온 마을이다. 더운 날씨에 다시 나갈 생각을 하니 걱정이었는데 마침 마을의 청년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다닌다. 오토바이를 타고 나갈 생각을 할 때 어디선지 꼬마 녀석이 뛰어온다. 한 손에 소금을 한 봉지 들고 사라고 한다. 1kg이나 되는 양을 10위안 주고 샀다. 외지인이 왔다는 소식에 집에서 한 움큼 집어 왔던 게 아닐까 싶다. 그냥 먹어도 되냐고 했더니 채소나 고기 요리할 때 넣어 먹으라고 한다. 정제가 안 된 자연 그 상태이니 그럴 듯싶다.

 

마을을 벗어나 공사 중인 도로까지 오토바이를 타고 빠른 속도로 돌아온다. 뒷자리에 앉아 흐르는 강물과 다양한 색깔을 지닌 산을 파노라마처럼 바라본다. 정말 신비한 느낌이 드는 지방이다. 천일염을 만든 지혜가 숨은 이 산하는 정말 하늘이 내려준 선물이 아닐까 싶다. 강 너머 푸른 나무가 자라는 마을에서 한 달 정도 머물며 세상사 다 잊고 라도 쌓고 싶어지는 풍광이다. 게다가 쑤여우차(酥油茶)에 짭짤한 맛을 선사한 고마운 자연이 아니던가?

 

Mp-03-08 공사장에서 만난 꼬마 아가씨

 

공사장에 아빠를 따라 나온 꼬마 아가씨가 너무 귀엽다. 동그란 얼굴에 순진한 미소를 띠고 앉았는데 우리 시골의 순박한 아이와도 닮았다. 마침 방학이어서 놀러 나온 것이다. 산도 들도 아름다운데 꽃도 따고 나비도 쫓고 뛰어다니며 놀면 좋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언뜻 든다. 여행 온 이방인의 가벼운 오만이라고 금세 자수한다. 마냥 미소만 짓고 있길래 중국어로 말을 건네본다. 다행히 표준어로 말이 통해 이런저런 대화가 가능하다. 한국사람이라고 했더니 환하게 웃는다. 한국드라마를 봤다고 자랑도 한다. 마음씨 좋아 보이는 아빠도 마냥 웃는다.

 

점심은 지방 특산인 국수를 먹었다. 큰 들통에 국수를 끓인 후 작은 그릇에 담아 준다. 그런데 조약돌을 한 움큼 담아서 함께 가져온다. 돌을 반찬으로 먹으라는 것인가? 국수의 이름을 몰랐다면 더 놀랐을 것이다. 국수 이름이 자자멘(加加面)이다. ‘더하다는 가()를 중복으로 붙이다니 의아하다.

 

Mp-03-09 옌징 국수 자자멘


Mp-03-10 국수와 함께 나온 조약돌

 

그릇에 담긴 국수를 후루룩 한 입에 먹고 나면 다시 국수를 더 담아준다. 먹고 또 먹고 하다 보면 몇 그릇 먹었는지 서로 모르게 된다. 한 입 먹고 돌 하나를 끄집어 내놓는다. 그렇게 매번 돌로 표시를 한다.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른다는 맛이라면 그럴 수도 있으리라. 함께 내온 돌 개수만큼 국수를 먹으면 자기 딸을 내준다는 이야기도 있다고 한다. 딸 이야기가 전설이라면 상금은 현실이다. 어느 가게는 지금껏 최고기록이 147그릇이고 기록을 깨면 500위안( 85천 원)을 준다고 자랑하기도 한다. 돌을 씹어먹을 정도의 식성이라면 딸을 주고 싶지 않을까? 그만큼 일도 잘할 터이니 말이다.

 

나시족이 사는 마을이라는 것 외에 티베트답지 않은 것이 옌징에는 또 있다. 바로 천주교당(天主教堂)이다. 지금도 상당수 주민이 천주교를 믿고 있다니 그저 유적지로만 남은 성당이 아니다. 티베트에 남은 유일한 성당이기도 하다. 1865년 프랑스 신부 삐에뜨(Biet)가 세웠다. 정교합일의 땅 티베트 중심에서 도망쳐 변경인 옌징으로 후퇴한 삐에뜨는 마을 주민을 병을 치료해주며 차츰 신임을 얻어 성당을 세웠다. 포도가 많이 생산되는 것을 보고 프랑스 와인 제조법도 알려주는 등으로 포교에 성공한 것이다.

 

Mp-03-11 옌징 천주교당 십자가 창문


Mp-03-12 현지화된 성당 건축문양

 

그렇지만 티베트 불교와의 갈등과 정부 관원으로부터 박해를 많이 받았다. 1949년까지 17명이나 되는 외국인 신부가 머물렀다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포교를 이어왔다는 이야기다. 신중국 개국 후에 잠시 종교의 자유가 오나 싶었는데 문화대혁명 시기에는 성당이 완전히 훼손됐다. 개혁개방 이후 종교활동을 보장받고 성당을 재건한 이후 지금에 이르렀다. 1997년에는 티베트 청년이 첫 신부가 되기도 하는 등 나시족과 티베트 민족이 어울려 사는 마을에 주민의 80%가 신자이니 우여곡절 깊었는데도 꾸준히 맥을 이어온 역사적인성당이다.

 

현지 민속과 서양식이 혼합된 문양과 구조여서 그런지 건축물이 독특하다. 백색 담벼락에는 십자가 모양으로 창문을 만들었다. 성당 안은 몇 군데 한자가 써 있긴 하지만 대체로 우리네 성당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성당 입구에 서서 뒤돌아서면 고원의 산과 하늘에는 영락없이 티베트의 바람이 분다. 오성홍기 나부끼지만 그래도 티베트의 영혼이 숨쉬고 있다.

 

차마고도를 달리는 마방이 소금을 얻는 땅 옌징, 자연의 신비와 인간의 노력이 지혜롭게 힘을 합친 땅이다. 죽음의 공포를 무릅쓰고 협곡과 설산을 넘어야 하는 마방, 말의 생명까지 책임지는 그들에게는 티베트 불교나 천주교 모두, 소중하고 사랑이 넘치는 ()’이었을지도 모른다.

 

Mp-03-13 티베트에 자리잡은 천주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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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고도 티베트 1번지 샹그릴라 최종명의 중국대장정(01)

 

샹그릴라(香格里拉)는 티베트 말로 마음에 담은 해와 달이란 뜻이다. 중국어권 특급 가수로 손색없는 왕리훙(王力宏) 2004 <신중더르위에(心中的日月)>를 발표했다. 티베트 일대를 여행하며 수많은 민가를 채취해 영감을 얻어 만든 노래다. 달콤한 음색은 이상향샹그릴라로 가는 길을 소풍 떠나는 아이처럼 설레게 하는 읊조림 같다. 여름에 가면 푸르고 겨울에 가면 하얗다. 물론 하늘은 늘 파란데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마다 색감이 다른 오묘한 곳이다.

 

리장고성(丽江古城)에서 샹그릴라까지는 180km, 3시간 30분 걸린다. 강줄기를 따라 달리다가 산 하나를 넘어야 한다. 지그재그로 산을 오르는 오르막이다. 고개를 넘자 숨 가쁘게 달려온 차를 쉼터가 반갑게 맞아준다. 넓게 펼쳐진 시야를 따라 맞은 편을 바라보면 해발 5,396m의 하바설산(哈巴雪山)이다. 겨울이면 설산의 위용을 곧잘 드러낸다. 시선을 아래로 내리면 연두색과 초록색이 엇갈리는 바둑판 밭이다. 누가 더 싱그러운지 다투는 듯한 모습이다. 잠시 쉬어가지만, 가슴이 시원하게 뚫린다.

 

Mp-01-01 샹그릴라 가는 길 (여름)


Mp-01-02 샹그릴라 가는 길 (겨울)

 

점점 티베트 분위기가 풍긴다. 시내로 들어서면 마을 어귀마다 하얀 불탑인 초르텐(mchod-rten)이 자리를 잡고 있다. 성스러운 물품을 보관하는 성지로 여겨졌다. 지금은 사원 앞이나 광장 등에 만들어 두는데 예불의 의식이 벌어지는 장소이다. 티베트는 양, 돼지와 야크의 세상이다. 당당하게 거리를 활보하고 다닌다. 임신한 돼지는 제 몸 가누기도 힘든데 왜 어슬렁거리는지 모르겠다.

 

Mp-01-03 거리를 활보하는 임신한 돼지

 

차를 세우고 식당을 찾았는데 시끌시끌하다. 운이 좋으면 진풍경을 자주 만난다. 마침 결혼식 피로연이 벌어지고 있다. 수백 병이나 되는 맥주를 상 위에 올려놓고 연거푸 축하주를 건넨다. 말끔한 양복과 붉은 치파오(旗袍)를 입은 신랑 신부는 얼굴 가득 미소가 넘친다. 샹그릴라는 디칭짱족자치주(庆藏族自治州)에 속한 현이다. 짱족은 티베트 민족을 중국인이 부르는 호칭이다. 티베트 자치의 땅이지만 여느 소수민족 자치가 그렇듯 실질적인지는 다른 문제다. 이미 한족이 자리를 잡고 희로애락을 즐기는 세상으로 변한 지 오래다.

 

마오뉴(牦牛)라 불리는 야크는 신성한 동물로 여겨 잘 먹지 않는 편인데 동행한 일행도 있어서 주문했다. 부드럽지만 한우보다는 다소 텁텁하다. 쫄깃한 맛의 조림과 담백한 국물이 먹음직스런 탕, 싱싱한 채소를 반찬으로 점심을 해결한다. 후식으로 나온 노란 메밀 빵도 색깔만큼이나 구수하다. 우리가 먹는 메밀과는 조금 다르고 쿠챠오()라고 부른다. 보통 타타르 메밀이라고 부르는데 예부터 타타르 민족이 지나는 초원에 쿠챠오가 자란 것인지도 모른다.

 

Mp-01-04 결혼식 피로연


Mp-01-05 야크 고기


Mp-01-06 메밀 빵

 

베이징과 가까운 위현()에서 쿠챠오허러(荞饸饹)라는 메밀틀국수를 먹은 적이 있다. 메밀 반죽을 틀에 넣고 누르면 면발이 주르륵 흘러내려 통 속에서 익는다. 곧바로 그릇에 담아주는 생생한 맛이었다. 지금은 잊힌 우리의 시골과도 같은 감동이었던 것이다. 지금 타타르 민족은 볼가강 부근에 있는 러시아 연방 타타르스탄 자치공화국을 이루고 있다.

 

샹그릴라는 원래 중덴(中甸)이란 지명이다. 2001년 중국 정부는 샹그릴라로 이름을 바꾼다. 영국 소설가 제임스 힐턴이 1933년 발표한 <잃어버린 지평선>에 등장하는 가상의 마을이 현실로 등장한 것이다. 이름을 바꾼 후 관광 수입으로 지역이 크게 발전했다. 드넓은 중국에서 왜 꼭 이곳이어야 했을까? 그럴만한 명분이 있긴 했다. 이곳에는 고성이 하나 있는데 두커쭝(独克宗)이라 부른다. ‘바위에 세운 성이자 월광성(月光城)이다. 푸얼차(洱茶)를 차마고도(马古道) 따라 운반하는 마방에게는 티베트로 진입하는 첫 마을이다. 당나라 이후 차와 말이 교환되었으니 천 년 전에는 티베트의 영향 아래 있었다. 지금은 행정 지역으로 윈난에 속한다.

 

명나라 시대에 이르러 리장의 나시족(纳西族) 토사(土司)가 힘을 길렀다. 샹그릴라에 진출해 또 다른 요새를 지었는데 니왕쭝(尼旺宗)이라 부른다. 일광성(日光城)이란 뜻이다. 두 성곽이 짝을 이루게 된다. 바로 해와 달이 모두한자리에 모인 셈이다. 아쉽게도 지금은 월광성만 남았지만 마음속의 해와 달이라는 샹그릴라 위치를 특정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역사 속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었다.

 

Mp-01-07 티베트 사원 송찬림 전경

 

샹그릴라에는 윈난 최대의 티베트 사원 송찬림(赞林)이 있다. 보통 송찬림사라고 알려지는데 송찬은 천상에 있는 신이 거처하는 지방이고 은 사원을 뜻한다. ‘를 굳이 쓰는 이유가 있겠지만 역전 앞과 비슷하다. ‘작은 포탈라 궁이라는 호사를 누리는 사원이다. 고개를 끄덕일 만큼 독특하고 웅장한 자태를 품고 있다. 산 중턱에 자리를 잡고 있어 정문에서 바라보면 하늘색과 어울려 화사하기조차 하다. 구름이 두둥실 스치면 풍성하기까지 하다.

 

송찬림에는 계율을 받은 승려가 거주하는 캉찬()이라는 건물이 8채 있다. 연꽃의 여덟 잎을 상징한다. 승려 20여 명씩 공동생활을 하는 미찬()도 많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고 광장으로 들어서면 본전인 자창() 앞에 이른다. 자창대전은 승려의 학원으로 1,600명을 수용할 만큼 큰 공간이다. 왼쪽 오른쪽에는 각각 티베트 불교의 종교개혁가이자 최대 교파인 겔룩파의 창시자인 총카파(宗喀巴) 대전과 석가모니 대전이 위치한다. 석가모니 불상에게 봉공하면 반드시 응답한다고 알려져 있다. 1936년 여름 장정 중이던 홍군의 허룽(贺龙) 장군도 이곳을 찾았다. 수많은 병사를 거느린 장수가 전쟁 중에 참배했다면 덕장이라 할만하다.

 

Mp-01-08 송찬림 자창대전


Mp-01-09 법륜과 사슴 한 쌍

 

5층 높이 대전 지붕은 화려한 장식으로 눈부시다. 비첨에는 맹수가 노려보고 있고 원통의 마니룬(玛尼轮)은 하늘을 향하고 있다. 법륜 옆 사슴까지 햇살의 울림이 상당하다. 모두 도금으로 장식한 까닭이다. 티베트 사원 지붕에 법륜과 함께 등장하는 사슴 두 마리는 석가모니의 최초 설법지인 녹야원을 상징한다. 수레바퀴처럼 부처님 말씀이 널리 온 사방에 퍼져나갈 듯 송찬림 지붕은 유난히 금빛 찬란하다.

 

총카파에 의해 발전한 겔룩파 법왕이 달라이라마(达赖喇嘛). 노란 모자를 쓰는 황모파라고 부른다. 티베트 불교에는 다양한 교파가 존재하지만, 겔룩파가 가장 많다. 1959년 인도로 망명한 달라이라마 14세 텐진가쵸(丹增嘉措)는 현재 대부분의 티베트 승려와 서민의 존경을 받는다. 눈 부시게 파란 하늘 아래에서 지켜온 역사와 문화를 남기고 고향을 떠날 수 밖에 없었다. 송찬림은 달라이라마 5세 말기인 1681년 준공된 사원이다. 우여곡절 속에도 달라이라마의 지위를 간직하고 온 고난의 역사는 차분하게 되돌려 볼 필요가 있다.

 

서서히 서산으로 넘어가는 해를 따라 고성으로 향한다. 고성은 거북처럼 야트막한 구이산(龟山)과 접해 있다. 산자락에 대불사라는 자그마한 사원이 있다. 사원 크기에 어울리지 않게도 세계에서 가장 크다고 하는 마니룬(또는 마니차)이 나타난다. 여섯 글자의 주문인 옴마니밧메훔을 새긴 원통이다. 대부분 손에 쥐고 다니거나 사원이나 광장에 아담하게 설치돼 있다.

 

Mp-01-10 두커쭝고성의 거대한 마니룬

 

높이가 21m, 지름이 6m에 이르고 무게가 60톤이나 되니 열 명 정도가 돌려도 끄덕하지 않는다. 여덟 가지 길상인 소라, 깃발, 매듭, 연꽃, 항아리, 물고기, 양산, 법륜이 차례로 새겨져 있다. 사람들이 모여 영차 하며 힘을 쓰면 서서히 돌아가는데 모두 신바람이 난다. 불자가 아니어도 한바탕 신나게 돌리고 나면 온갖 시름을 씻은 듯하다.

 

고성으로 들어서면 왁자지껄하다. 옹기종기 모여 살던 서민적인 마을과는 사뭇 다르다. 세계적 관광지로 이름을 떨치고 있으니 객잔, 까페, 공예품가게, 식당이 즐비하다. 처음 고성에 갔을 때가 2013년인데 이듬해 1 11일 새벽 커다란 화재가 발생했다. 한 객잔 주인이 만취 상태에서 자던 중 침실 난로에서 발화했다. 목조건물인 고성은 순식간에 큰 피해를 봤다. 2016 1월과 8월에도 다시 갈 기회가 있었다. 이제 다시 복원돼 옛날의 화려했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는 모습이다. 고성에 밤이 오면 카페에서 라이브 음악이 흘러나오고 밤 늦도록 이상향이라는 착각이어도 좋은 시간이 흐르고 흐른다.

 

Mp-01-11 고성의 밤

 

러시아인 피터 굴라트는 1955년 출간한 <읽어버린 왕국>에서 수많은 말발굽과 마방 무리로 넘쳐났다고 고성 분위기를 기록하고 있다. 차마고도가 여전히 생명력을 지니고 있을 때이다. 지금은 흔적이 많이 사라졌지만, 차를 싣고 티베트로 향하는 마방의 안식처이던 고성이다. 관광의 성지라고 해도 과거의 흔적을 다 태워버릴 수는 없다. 여전히 티베트의 향기가 고성 곳곳에 풍긴다. 마음속에는 어떤 해와 달이 뜨는지, 향내 나는 추억을 담으며 늘 떠오르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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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발품취재46] 칭하이성 씨닝에서 깐수성 짱예까지

6월 28일, 아침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버스터미널에 가니 25인승 규모 버스들이 떠날 채비를 하고 있는데, 버스 지붕 위에 짐을 싣고, 묶는 작업이 한창이다. 중국에는 갖가지 크고 작은 버스들이 있는데, 이렇게 좀 작은 버스는 짐을 지붕 위까지 싣는다.

칭하이성(青海省) 씨닝(西宁)에서 깐수성(甘肃省) 짱예(张掖)까지 가는 버스 노선이 있는 것이 아주 다행이었다. 일정을 짜면서 공교롭게도 씨닝 다음 코스가 불투명했기 때문이다. 우루무치로 방향을 잡았는데, 만약 이 길이 없다면 다시 란저우까지 동쪽으로 갔다가 가야 할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도 상에도 높은 산이 2개나 가로막고 있기 때문에 과연 제대로 교통편을 찾을 수 있을지 걱정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비록 하루에 단 한 대이지만 분명 버스가 있다는 것을 알고 속으로 기뻤다. 비용도 줄이게 되며 색다른 여행 길이라는 기대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여간 전날 지도를 펴놓고 과연 이 길을 무사히 갈 수 있을까 거듭 고민 끝에 227번 국도인 닝짱꿍루(宁张公路)를 타기로 하고 오전 7시30분에 출발하는 버스를 예매했다. 씨닝에서 짱예까지 347km 밖에 안 되는, 중국에서는 아주 짧은 국도이긴 해도 8~9시간 가량 걸릴 정도로 가파른 산을 넘는다 하고 중형 버스라 다소 걱정을 하긴 했지만 말이다.

비가 약간 내리는 207번 국도를 달리자마자 바로 가파르게 산을 넘기 시작했다. 드디어는 거의 해발 3000m에 이른다는 라오예산(老爷山) 부근 능선을 넘는다. 거의 수직으로 오른다 싶을 정도다.

해발 3000m를 넘어 다시 내려가는 길 역시 그야말로 곡예다. 꾸불꾸불한 길이 끝없이 이어져 내려가고 반대편에서 화물트럭은 수도 없이 올라온다. 산세가 ‘투우(突兀)하다’고 하는데, 우뚝 솟았다는 말이겠다. 봉우리들이 정말 하나 같이 아름답게 솟아 있다. 파란 하늘과 흰구름과 어울리고, 마침 비까지 멈추니 환상적인 모습이다.

그 옛날 실크로드(丝绸之路) 남단 길의 한 갈래라 하는데 어떻게 그 당시 이 험한 산길을 넘었을까 모르겠다. 버스도 지쳤는지 점검하느라 한 작은 마을에서 잠시 멈췄다. 계속 버스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면서 브레이크 누르는 소리가 꽤 심하게 들렸는데 다행히 점검하고 나니 조금 나아진 듯하다. 정말 그러고 보니 멋진 산세에 취해 사고가 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조차 잊었던가 보다.

주변에는 유채꽃(油菜花)도 푸르스름하며 노랗게 피어 올랐으니 더욱 금상첨화다. 칭하이성 곳곳은 그야말로 유채꽃으로 뒤덮인 곳이라 해도 될 정도인데, 그 중에서도 지금 버스가 지나는 지역인 먼위엔(门源) 시는 유채꽃 축제가 열리는 곳으로 중국 유채꽃 식용유 생산의 40%에 이를 정도로 유채꽃밭 천지다.

  
▲ 유채꽃 노란 유채꽃이 도로변에 엄청 많이 피어있다
ⓒ 최종명
유채꽃

버스가 다시 출발. 그런데 예기치 않은 돌발상황이 발생했다. 이제 9시간 중 채 2시간도 안 지났는데 국도에서 사고가 난 것이다. 예전에 한두 번 국도에서 교통사고를 목격했던지라 좀 시간이 걸리겠구나 했는데 무려 4시간이나 양쪽 차선을 가로막아 버렸다. 대형트럭이 사고가 났으니 좁은 도로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정말 그 옛날 실크로드를 걸었던 사람들은 이런 막막한 기다림의 고통은 없었을 것이리라.

거리로는 그다지 멀지 않지만 대부분 산길이고 고원지대라 빠르게 질주하기 어려워 9시간이나 걸렸던 것. 게다가 버스 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으니 한두 시간은 더 참아야 하리라. 그런데 교통사고로 4시간을 하릴없이 기다렸으니 죽을 노릇이다.

겨우 도로가 풀리고 1시간을 더 달려 도착한 곳은 조그만 시골마을 칭스쭈이(青石嘴)이다. 늦은 점심을 먹으려고 식당을 찾았다. 마침 치린(麒麟)이라는 이름의 식당이 터미널 옆에 있어서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렸다. 치린은 중국 전설 속에 나오는데, 속칭 사불상(四不像)이라 하기도 하는 동물인데 이 시골 구석의 식당 이름이 거창해 약간 웃었다.

  
▲ 국수 치렌산맥을 넘어가는 길, 칭스쭈이 마을 한 식당에서 먹은 점심
ⓒ 최종명
치렌산맥

어디선가 ‘헬로우’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꼬마 녀석 하나가 신기한 듯 유리창 밖에서 계속 웃고 서 있다. 식당에서 국수 한 그릇 먹고 꼬마와 그의 형과 셋이서 함께 놀았다. 이마에 빨간 인주가 찍혀 있는 6살 ‘아이뿌’는 어디서 배웠는지 영어를 몇 마디 한다.

  
▲ 아이들 치렌산맥 넘어가는 길, 칭스쭈이 마을에서 만난 아이들
ⓒ 최종명
치렌산맥

꼬마 녀석이 귀여워서 돈을 주니 받지 않는다. 거듭 받으라고 하자, 형이 귓속말을 한다. 그랬더니 냉큼 받는다. 그리고 뛰어가더니 풍선 껌을 사서 다시 오더니 받으라 한다.

버스에 타고 헤어질 때 다시 뭔가를 주려는데 사양했다. 아마도 먼 길을 가니 주머니 속에 남아 있던 껌을 주려고 하지 않았을까. 하여간 참 인정머리가 있는 녀석이다.

다시 버스는 치롄(祁连) 산맥 남쪽 고원을 달렸다. 오른쪽으로는 해발 4~5000m의 설산이 드러나고 왼쪽으로는 푸른 초원 위에 양떼들이 온 산을 뒤덮고 있다.

약간 낮은 평야지대에는 말들도 있다. 전봇대 사이로 멀리 눈 덮인 설산이 보이고 평야에는 말들이 거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차에서 내려 마음껏 보고 쉬었다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은데 버스는 아랑곳 하지 않고 달린다. 정말 언젠가는 다시 이곳을 찾아오리라. 그때는 지프차를 몰고 가는 여행이면 좋을 듯싶다.

멋진 광경을 사진에 담기도 하고, 양치기들과 대화도 하고 싶다. 가능하다면 평지에서부터 초원 능선을 넘어 하얗게 끝도 없이 이어진 설산을 향해 올라가고도 싶다. 두고두고 보고 또 보리라 다짐했다.

  
▲ 설산과 초원 치렌산맥 설산과 넓은 고원지대인 초원의 말
ⓒ 최종명
치렌산맥

버스가 또 멈췄다. 치롄(祁连)현 어뿌(峨堡)라고 하는 작은 마을이다.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그 아래 파란 하늘을 막고 하얀 구름이 층을 이루고 있다. 그 아래 설산이 하얀 눈을 간직한 채 산맥으로 이어져 있고 다시 아래는 푸른 초원 지대이다. 황량해 보이는 도로 위에 서 있는 아주머니와 마을 사람들까지 한 장의 사진 속에는 갖가지 형태로 층층이 연결돼 있다.

  
▲ 어뿌 치렌현 어뿌마을의 전경
ⓒ 최종명
치렌현

주위 산 능선은 온통 양떼들의 천국이다. 산 형태와 무관하게 온통 흰 양털이 반짝이는 모습이 장관이다. 풀이 있는 곳이라면 산을 타넘기도 한다. 파란 하늘과 새털구름 아래에서 햇살에도 아랑곳 않고 조용히 풀을 뜯고 있는 모습에 눈길이 간다.

  
▲ 치렌산맥의 양떼들 해발 4000m 이상의 치렌산맥을 넘어가는 중국 227번 국도에서 본 산 능선의 양떼들
ⓒ 최종명
치렌산맥

버스는 어뿌를 지나 치롄산맥을 넘어가기 시작했다. 치렌산맥은 칭하이성과 깐수성을 가르는 산맥으로 허씨저우랑(河西走廊, 실크로드 주요도로로 깐수성의 좁고 긴 고원 평야 길)의 남단에 위치한다. 최고봉은 퇀제펑(团结峰)으로 해발 5808m고 산봉우리는 대개 4000m 이상의 설산으로 이뤄져 있다.

버스가 달리는 산 능선은 해발 3000m 이상이라고 한다. 그러니 이제부터 해발고도를 1000m 이상 올라가서 산맥을 넘어가야 하는 것이다. 다시 버스는 지그재그로 긴 포물선을 그리며 달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한 무리의 양떼가 도로를 가로질러 가고 있다. 당연히 버스는 또 멈췄다. 양떼 주인도 버스 기사도 마냥 기다린다. 한참을 기다리는데도 끊임 없이 양들이 도로를 점거하고 있으니, 빵빵거린 후에도 또 얼마 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도로 끝으로 서서히 비켜선다.

  
▲ 양떼들 도로를 막고 선 양떼들
ⓒ 최종명
치렌산맥

브레이크 상태가 별로 좋지 않은 버스도 너무 늦었는지 과속이다. 원래 도착지인 짱예에서 다시 씨닝으로 되돌아가는 버스다. 버스터미널에서 손님들이 여전히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어느새 산맥을 넘어간다. 산맥을 넘으면 민러(民乐)라는 현(县)이 나타나고 1시간 정도 직선도로를 달려가니 드디어 짱예(张掖)에 도착이다. 거의 8시가 다 되어, 14시간만에 도착.

  
▲ 설산 치렌산맥을 넘어 깐쑤성에서 바라본 설산
ⓒ 최종명
설산

중국의 국도는 생명 줄처럼 곳곳에 뿌리를 박고 있다. 중국 국도는 3자리 숫자로 1,2,3으로 시작되는 3가지 분류가 있다. 1자로 시작하는 국도(1字头国道)는 101번부터 112번까지 주로 베이징을 기점으로 동서남북 끝까지 이어진다. 그 중 109번 국도는 라싸(拉萨)까지 3901km나 된다.

2자 국도는 주로 남북으로 수직 형으로 된 도로로 201번부터 227번까지 있다. 닝짱 국도처럼 짧은 거리도 있지만 네이멍구(内蒙古) 동북의 씨린하오터(锡林浩特)에서 장쑤(江苏) 동쪽 해변도시인 하이안(海安)에 이르는 3738km나 되는 긴 도로도 있다.

동서를 수평으로 가르는 3자 국도는 301번부터 330번까지 있다. 상하이(上海)에서 네팔 접경지역인 씨장(西藏) 여우이챠오(友谊桥)까지 5476km에 이르는 중국에서 가장 긴 국도도 있다.

227번 국도를 무려 14시간 버스 타고 겨우 짱예(张掖)에 도착해 곧바로 기차 역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다음날 티켓이 없다. 원래 짱예에서 하루 묵을 예정이었는데. 다시 새벽 1시 19분 자위관(嘉峪关) 행 밤 기차표를 끊었다. 바로 출발하는 게 현명한 방법이라 판단했다.

그래서, 시간이 서너 시간 남았다. 서민들이 즐기는 민속악기 소리에 이끌려 시내 공원에 가니 노래하고 춤 추는 사람들의 저녁 풍경이 정겹다. 만도린(琵琶)과 두 줄 현악기인 얼후(二胡)를 비롯해 피리인 띠즈(笛子), 태평소라 하는 쒀나(唢呐), 생황이라 하는 따셩(大笙) 등 온갖 서민 악기 연주에 맞춰 민가를 합창하고 있다. 또 그 옆에는 부채 춤을 추면서 여가를 즐기는 사람들도 있다. 이처럼 중국은 도시마다 작은 공원에는 저녁 시간을 맞춰 노래연습실을 열어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 거리 노래연습실 짱예 시내 한 작은 공원에서 서민악기에 맞춰 합창하고 있는 사람들
ⓒ 최종명
짱예

한참 동안 그들의 서민적 정서에 기대 피로를 풀었다. 근처 야시장에서 맥주와 민물가재인롱샤(龙虾)를 곁들여 간단한 요기를 하고 새벽 기차를 탔다.

  
▲ 맥주와 민물가재 중국의 야시장 별미인 민물가재 롱샤와 맥주
ⓒ 최종명
민물가재

청두(成都)를 지나 우루무치(乌鲁木齐)로 가는 기차(K453편)인데 자리가 꽉 찼다. 좌석 없이 우줘(无座) 표로 3시간을 더 가야 자위관(嘉峪关)이다.

버스에 이어 또 기차에서 시달릴 것을 생각하니 끔직하다. 배낭을 내려놓을 곳도 마땅하지 않을 정도로 만원이다. 통로에 내려두고 잠시 서 있는데 한 여학생이 화장실을 간다.

너무 피곤했던가. 체면 불구하고 그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깜박 졸았나 보다. 눈을 뜨니 그 여학생이 옆에 서 있다. 일어나려니 ‘메이설, 따슈(没事儿 大叔)’ 괜찮아요 아저씨라니? 모양새가 영 피곤해 보였는지 그냥 앉아 있으라 한다.

중국에서 자리 양보도 받아보고 참 의외이고 기특한 일이다. 스촨(四川)성 청두에서 우루무치로 가는 길이고 ‘벌써 32시간을 앉아왔어요’하며 양보해준 것이다.

48시간을 꼬박 가야 하는 기차 여행을 중국 사람들은 눈 하나 깜짝 하지 않고 쉽게 말한다. 뭐 이제는 그럭저럭 적응이 되긴 했지만.

자위관에 도착하니 새벽 5시다. 어렵사리 택시를 잡아 타고 새벽에 문을 연 호텔을 찾아다녔다. 30분 헤맨 끝에 간신히 숙소를 찾았다. 그리고, 그냥 쓰러졌다.

Posted by 최종명작가 최종명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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