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1/17 - [중국발품취재] - 입장료 1만8천원... 중국에 '서울'과 똑같은 마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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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당 정치국 위원 (1) 왕강, 왕러취안, 왕자오궈, 왕치산, 후이량위, 류치

중국 공산당 정치국은 정치 파벌 색깔이 선명하며 모두 25명으로 구성된다. 보통 물러나는 사람을 제외하고 나머지 정치국 위원들은 2012년 가을 새로운 정치국 상무위원회에 진입하게 된다. 최근 보시라이 전 충징 시 서기의 낙마는 파벌 사이의 정치투쟁의 일환이자 돌발 변수다.

상하이방과 공청단, 태자당이라는 구분보다는 장쩌민계, 후진타오계, 중립계로 나누는 것이 더 현실적이다. 중립계[1]는 태자당 출신이 대부분이지만 태자당이면서 공청단 출신도 많고 시진핑처럼 장쩌민계에 밀착한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태상황의 지위를 잃고 있는 장쩌민을 대신해 당장은 아니겠지만 태자당의 쩡칭훙의 후광을 등에 업고 시진핑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핵심'의 출현이 예측된다는 점이다. 이는 정치국 상무위원회로 진입하는 역학 관계와 함께 향후 25명의 정치국 위원의 구성 또한 면밀하게 살펴볼 문제이다.

중앙 정치국은 중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사전 협의 및 합의된 내용으로 직권 선출한다. 현 17기 당 정치국 위원은 모두 25명이며 그 중 9명으로 정치국 상무위원회를 구성한다. 당과 국무원, 정협의 핵심 요직 및 베이징, 상하이, 텐진 시 서기가 당연직으로 포함된다. 18기 상무위원 진입을 앞두고 충칭 시 서기 및 광둥 성 서기가 포함된 것은 치열한 계파 경쟁의 일환이다.

보통 당 정치국 상무위원은 당내 서열 순이지만 당 정치국 위원은 성의 획순이다. 현 25명의 정치국 위원 중 상무위원 9명을 뺀 16명을 3번으로 나누어 살펴보자!  (정치국 위원 중 성과 특별시 서기 포함)

왕강 王刚

당 정치국 위원이자 현 정협 부주석 왕강은 공산당 중앙직속기관공작위원회 서기를 겸임한다. 1942년 10월 출생, 지린(吉林) 푸위(扶余) 사람으로 지린대학에서 철학을 전공, 1971년 공산당에 입당한다. 6-70년대 건설공업부의 홍보 선전 업무를 담당하다가 신장 위구르자치구 판공청 비서로 근무한 경력을 바탕으로 1981년부터 중앙의 타이완 판공실 비서로 발탁된다.

1985년 당 및 국무원 판공청 민원 처리 부서인 신방국(信访局)에서 능력을 발휘해 당안관(档案馆, 공문서 보관소) 관장을 역임한다. 1999년 당의 행정 업무를 총괄하는 중앙 판공청 주임이 돼 장쩌민 총서기의 집사로 발탁된다. 당 정치국 후보위원을 거쳐 2007년 당 정치국 위원이 된다.

당 정치국 위원이 되면서 동시에 후진타오의 집사인 링지화[2]에게 판공청 주임을 물려준 후 정치협상회의 부주석을 맡는다. 장쩌민 시대의 가신이던 쩡칭홍으로부터 정치적 입지를 지속적으로 넘겨받는다.

왕러취안 王乐泉

당 정치국 위원 왕러취안은 쩡칭홍 계열의 저우융캉이 서기로 있는 중앙 정법위 부서기를 겸임한다. 1944년 12월 출생, 산둥(山东) 서우광(寿光) 사람으로 중앙당교 출신이다. 1966년 입당 후 마오쩌둥이 주창한 사회주의교육 운동에 참가하며 고향에서 공사(公社) 부사장과 서기로 활동한다. 1978년 서우광 현 서기를 거쳐 1982년 공청단 산둥 성 부서기가 되면서 정치적으로 성장한다.

1989년 산둥성 부성장으로 신임을 받은 후 1991년부터 소수민족 독립운동이 활발한 신장 위구르자치구에서 10년 이상 머물며 중앙 정부를 대신해 정치력을 발휘한다. 인민정부 부주석, 부서기를 거쳐 1995년 신장 위구르자치구의 서기가 된다. 2002년 당 정치국 위원이 되며 신장 자치 독립 운동의 과열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나 2010년 중앙 정법위 부서기를 맡는다.

후진타오의 측근으로 공안과 사법을 총괄하는 정법위에서 저우융캉을 견제하고 정치적으로 공청단 계열의 입지를 관리하는 역할을 한다.

(사진설명: 왕강, 왕러취안, 왕자오궈)

왕자오궈 王兆国

당 정치국 위원 왕자오궈는 전국인민대회 상무위원회 부위원장이자 전국노동조합 연합조직인 중화전국총공회(中华全国总工会) 주석을 겸임한다. 1941년 7월 출생, 허베이(河北) 펑룬(丰润) 사람으로 하얼빈공과대학에서 터어빈공학을 전공한다. 1965년 입당 후 1968년부터 후베이의 자동차공장에서 현장 기술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1979년 후베이 스옌(十堰)시의 제2기(第二汽)자동차 부공장장이던 시절 덩샤오핑의 주목을 받으며 후야오방 총서기에 의해 발탁돼 1982년 41세의 나이에 공청단 제1서기가 된다. 1984년 43세의 나이에 당 요직인 중앙 판공청 주임과 서기처 서기로 승진해 일약 차세대 지도자로 급부상해 '로켓서기'라는 별명을 얻는다. 후야오방의 실각을 앞두고 2년 만에 중앙판공청 주임을 원자바오에게 물려주고 1987년 푸젠 성 부서기로 물러난다.

푸젠 성장을 맡으면서 타이완 전문가로 변신해 투자 유치 등에 능력을 발휘, 1990년 국무원 타이완 업무 주임으로 다시 중앙 무대로 복귀한다. 1992년 타이완 문제를 관리하는 당 중앙통전부장을 맡으며 1993년 정협 부주석, 2002년 당 정치국 위원이 된다. 2003년부터 전인대 부위원장을 연임하고 있다.

왕치산 王岐山

당 정치국 위원 왕치산은 국무원의 금융, 대외 무역을 담당하는 부총리이다.  1948년 7월 출생, 산시(山西) 텐전(天镇) 사람으로 시베이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했으면서 금융경제 전문가이다. 문화대혁명 시기 옌안으로 하방돼 산시 성박물관에서 근무한다. 1983년 입당 후 당 서기처 농촌경제연구실과 국무원 농촌발전연구센터에서 일한다.

장인 야오이린(姚依林)[3]이 당 정치국 상무위원이 된 후 1988년 중국농촌신탁투자기업 사장에 이어 1993년 부총리이자 인민은행장인 주룽지에 이어 부행장으로서 근무하며 1996년 중국건설은행 은행장을 맡아 금융경제 전문가로 거듭난다.

1997년 광둥성 서기로 부임하는 리창춘을 따라가 성 상무위원과 부성장을 맡으며 금융 전문가로서 입지를 확실하게 다진다. 2000년 중앙 무대로 복귀해 부장급인 국무원 경제체제개혁판공실 주임을 맡지만 주룽지 총리의 은퇴로 다시 하이난다오 서기로 좌천된다. 2003년 사스(SARS)[4]의 여파가 베이징을 뒤덮자 베이징 대리 시장으로 다시 복귀해 무사히 사태를 진정시킨다.

2007년 베이징올림픽조직위원회 주석이자 베이징 시장 왕치산은 당 정치국 위원으로 들어가면서 후진타오의 직계인 궈진룽(郭金龙)에게 자리를 물려준다. 2008년 우이(吴仪)[5]의  뒤를 이어 국무원 부총리가 돼 금융개혁과 대외 경제교류에 전념한다. 당 원로의 사위로 장인의 정치적 후원을 받아 태자당이라 분류하지만 개혁파 성향의 경제 전문가라는 독특한 정치적 입지를 다지고 있다.

(사진설명 : 왕치산, 후이량위, 류치)

후이량위 回良玉

당 정치국 위원 후이량위는 농업 및 소수민족 문제를 담당하는 부총리이다. 1944년 10월 출생, 지린(吉林) 위수(榆树) 사람으로 소수민족인 후이족(回族)이며 지린성 농업대학을 졸업한다. 1966년 입당 후 고향에서 혁명위원회 정치부 간사로 사회 활동을 시작해 1974년 현 부서기와 1977년 지린 성 농업국 부국장, 1984년 바이청(白城) 지역위원회 부서기, 1985년 성 농공부장을 거쳐 1987년 지린 성 부성장이 된다.

1990년 중앙 무대로 진출해 당의 최고 브레인 팀인 중앙정책연구실 부주임을 맡게 되며 1992년 후베이성 부서기로 행정가로 거듭난다. 1994년 안후이 대리성장과 성장을 거쳐 1998년 안후이 성 서기가 된다. 1999년 장쑤성 서기를 거쳐 2002년 당 정치국 위원이 된 후 2003년부터 국무원 부총리를 현재까지 연임하고 있다. 당내 최고의 농업 전문가로서 장쩌민의 정치적 후광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류치 刘淇 서기

당 정치국 위원이자 베이징 시 서기 류치는 1942년 11월 출생, 장쑤(江苏) 우진(武进) 사람으로 베이징강철대학에서 야금제철을 전공한다. 우한(武汉)강철 공장에서 근무하던 1975년 입당 후 승진을 거듭해 1990년 사장이 된다.

1993년 국무원 야금공업부 부장을 거쳐 1998년 베이징 시 부서기 및 부시장이 된다. 시장 및 올림픽 조직위 주석을 거쳐 2002년부터 서기를 맡는다. 장쩌민의 정적이던 천시퉁(陈希同)이 제거된 후 서기로 올라온 자칭린을 이어 베이징을 맡은 것이다.

사스로 인해 위생부장 장원캉(张文康, 상하이방)[6]과 시장 멍쉬에눙(孟学农, 공청단)[7]이 동반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상황에서도 굳건하게 자리를 지킨다. 대리시장으로 온 왕치산이 사스 문제를 해결하고 부총리로 승진해 차기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거론되는 반면 2012년 세대교체 시기, 70세를 넘겨 물러날 때를 기다리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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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재 권력인 장쩌민과 후진타오 계파에 속하지 않는다는 측면이 있지만 꼭 정치 개혁 등에서 중립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두 계파 사이에서 뛰어난 능력으로 일정한 역할을 수행했으며 독자적인 세력화, 시진핑을 옹립했다는 측면에서 쩡칭훙계와 독자적인 태자당으로 구분해도 좋다.

[2] 중앙판공청의 핵심인물인 링지화(令计划)와 왕후닝(王沪宁)은 각각 후진타오와 장쩌민의 브레인으로 경쟁 관계에 있다. 자세한 프로필은 중앙판공청 편 참고.

[3] 1917년 출생, 1935년 공산당에 입당. 신중국 정부 재무 전문가로서 국무원 부총리, 국가계획위원회 주임을 역임했으며 당 중앙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은퇴 후 1994년 사망. 딸 야오밍산(姚明珊)을 왕치산에게 시집 보냄.

[4] 전염성비전형폐렴(传染性非典型肺炎)이라 부르며 약자로 페이뎬(非典)이라 함.

[5] 1938년 출생, 1962년 공산당에 입당. 2003년 3월 여성 부총리가 되자마자 사스의 발생으로 위생부 부장을 겸임하며 진두지휘함.

[6] 1940년 출생, 1966년 공산당에 입당. 해방군 소장 출신으로 위생부장에서 물러난 후 현 전국정협 교과문위체(教科文卫体)위원회 부주임을 맡고 있음.

[7] 1949년 출생, 1972년 공산당에 입당. 공학도로 공청단 베이징 부서기 출신이며 베이징 시장에서 물러난 후 후진타오의 총애로 산시(山西) 성장으로 복귀했으나 산사태로 인한 사망 사건 발생 책임을 지고 다시 물러남. 현 중앙직속기관공위(中央直属机关工委) 부서기로 다시 일선에 복귀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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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종명작가 중국문화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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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달면 귤 이름이 사탕쥐(沙糖桔), 사탕귤일까요. 낑깡만한 크기인데 맛은 감귤보다 달달한 녀석을 사서 먹고 있지요. 1근500g에 4元이니 700원 정도, 크기 작아서 10개도 넘지요. 정말 깔끔한 단맛!!!

올해 정치인들의 사탕발림이 난무할텐데 속지말고 ... 말발굽으로 차 버립시다. 갑자기 왠?

말발굽처럼 생겨 이름 붙은 마티(马蹄)라는 과일도 있어서요.

원래 비치(荸荠)라는 열매로 우리말로는 올발개라 합니다. 인도가 원산지로 중국 광시 등지에서 나는데 나름 달짝지근해 맛 좋습니다.

말발굽으로 밟아야할 놈들이 많으면 잔뜩 사서 보내드릴게요. 짓눌러 주세요.





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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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이저우 소수민족 취재기 (2)] – 시장 첸후먀오자이에서

 

구이저우 첸후먀오자이(千戶苗寨)는 매일 공연을 연다. 마을 한복판 광장을 에워싸고 이미 천여 명이 넘는 관객이 자리 잡았다. 공연 시작은 언제나 분위기를 돋우는 징쥬거(敬酒歌). 손님을 환영하고 존경의 술잔을 올리는 것이다. 화려한 옷과 장신구를 걸친 아가씨들이 노래를 부르며 관객에게 술잔을 바치니 분위기가 무르익는다. 소의 뿔처럼 생긴 잔을 높이 들어 술을 권한다고 해 뉴자오쥬(牛角酒)라고도 한다.

 

먀오족은 아이들 복장과 남장, 여장이 다르고 여장도 평상복과 정장복이 다르다. 공연장 아가씨들은 거의 정장에 가깝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민족의상이라 칭찬 받게 한 은 장신구(銀飾)를 머리와 목에 둘렀다. 넓고 부드러운 질감으로 은은한 빛을 뿜으니 누가 봐도 먀오족 차림새이다. 파랑 상의와 빨강 치마마다에는 역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자수 솜씨를 담은 문양이 새겨 있다. 13명의 아가씨들이 알록달록 무늬로 허리를 흔들며 오가는 모습에 시선을 뗄 수 없다.

 

공연 모두 인상적이지만 나뭇잎피리(樹葉吹笛)’는 정말 신나고 경쾌하다. 깊은 산골에서 살아오면서 수많은 나뭇잎들이 온통 다 악기이자 리듬인 셈이다. 십 리 밖까지 들릴만한 고음이지만 단아한 새소리 같기도 하다. 입도 잎도 모두 하나면 충분히 사람의 심금을 울릴 수 있다. 어린 시절 산골 마을에서 자란 사람은 별다른 곡조 없이 읊조리듯 잎사귀를 씹던 기억이 나리다.

 

ⓒ 중국 소수민족 취재팀

 

ⓒ 중국 소수민족 취재팀

 

ⓒ 중국 소수민족 취재팀

 

먀오족은 능거산우(能歌善舞), 노래 잘 하고 춤 잘 추는 민족이라고 누구라도 인정한다. 화려한 옷으로 살랑거리며 추는 춤은 노랫가락 반주조차 잊게 한다. 대표적 민속악기인 루셩(蘆笙) 소리는 귀를 쫑긋해야 들릴 정도이다. 갈대로 만든 구멍 6개의 형관(簧管)악기인 루셩은 어른 아이 모두 두루 잘 다룬다. 생황과 비슷하지만 공예품으로도 팔린다. 공명관과 3가지 이상의 원통 나무가 서로 엉켜 있는 독특한 모양이다. 나무 결을 따라서 흘러나오는 청아한 소리가 단조 같은 미묘한 울림이 있다.

 

아가씨들이 모두 나와 춤 추면서 노래 부른다. <다디페이거(大地飛歌)>라는 제목, 먀오족의 대표적인 곡이다. 노래 제목보다 흥미로운 것은 페이거(飛歌)라는 말이 먀오족 노래의 대명사라는 것이다. 산과 산, 산 위와 아래로 서로 메시지를 주고받기 위해 노래를 사용한 것이다. 소리만 냅다 질러서야 힘만 들고 많은 내용을 전달하기 어렵다. 그래서 잘 만들어진 곡조에 가사를 담은 것. ‘아빠 왔으니 산에서 내려와 밥 먹자거나 아이가 갑자기 아프다’, ‘낯선 사람들이 나타났다고 했던 것이다. 그러니 아주 깨끗하면서도 고음이며 멀리 날아가는 소리이자 노래이다.

 

관객이 워낙 많아 뒷자리는 계속 발 딛고 서야 한다. 무대 앞쪽에서 보니 어처구니 없게도 무대 정면에 소위 VIP좌석이 있다. 의자 10여 개가 놓여있고 차까지 마시며 관람한다. 공연 중이라도 광장을 가로질러 가는 사람은 VIP 값을 치렀기 때문이다. 왼쪽 끄트머리에 쪼그려 앉은 할아버지는 빨간 봉지에 곰방대 옆구리 걸치고 최고로 편한 자세로 공연을 즐기고 있다. 어디서 어떻게 보고 듣느냐가 무얼 그리 중요할까. 공연보다 더 자연스러운 감동을 주는 할아버지의 흐뭇한 주름이야말로 그 이상의 인간적 교감은 없어 보인다.

 

나이 일흔이 넘은 먀오족 할아버지들의 민가 합창이 이어진다. 모자부터 윗옷, 바지, 신발까지 감청색으로 단일한 할아버지 예닐곱 분이 천천히 무대에 선다. 거칠고 어눌한 말투 같은 노래지만 연륜이 묻어나는 합창은 숙연하다. 흰 수염의 관우 같은 할아버지 한 분이 유독 눈길을 끈다. 가까이 가서 질문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길목을 막아선 관리인이 야속하다.

 

ⓒ 중국 소수민족 취재팀

 

ⓒ 중국 소수민족 취재팀

 

ⓒ 중국 소수민족 취재팀

 

ⓒ 중국 소수민족 취재팀

 

ⓒ 중국 소수민족 취재팀

 

다시 큰길로 나섰다. 수십 명의 할머니들이 정장 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아가씨들 못지 않은 화려한 장식이다. 머리에는 은 장신구 대신 꽃을 단 것과 검정치마를 입은 것이 아가씨들과 다르다. 평상시 검정 옷을 자주 입는다 해서 먀오족 중에서도 헤이먀오(黑苗)라 부른다는데 정말 화려한 검정의 진면목을 보는 듯하다. 자수로 만든 꽃신도 모두 다 다르지만 오히려 개성만점이다. 먀오족 여성은 평상시 머리에 비단으로 만든 꽃인 줸화()를 단다. ‘왜 이렇게 꽃을 머리에 다는가물었더니 그저 민족전통이라고 한다.

 

거리는 시장이자 아이들 놀이터이다. 대나무 광주리에 강아지를 담아놓고 팔기도 한다. 정말 작은 강아지는 비닐봉지나 편지봉투에도 들어있다. 대나무 멜대인 벤단(扁担)에 돼지고기를 메고 한 손에 닭 날개를 들고 어디론가 지나간다. 갑자기 돼지 한 마리가 거리에 나타나 사람들 시선을 사로잡는다. 뒷다리에 끈을 매달고 몽둥이로 이리저리 돼지를 몬다. 무슨 잔치가 있는 것인지 살이 통통 찐 돼지는 뒤뚱거리며 꽥꽥거린다.

 

산에서 나는 야채나 벌꿀도 있고 과일도 많다. 흔히 보기 힘든 도토리가 있어서 맛을 봤다. 조금 까먹기 힘들지만 맛이 신선하고 고소하다. 1근에 10위엔 주고 사서 봉지에 담았더니 취재에 영 방해가 된다. 가방에 넣었다가 생각나면 먹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언제 어디로 버려졌는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먀오족 찹쌀 술인 눠미쥬(糯米酒) 파는 항아리도 군데군데 보인다. 한 가게 앞에 먀오족샹옌(苗族香烟)이 있어 눈길을 끈다. 중국의 구이저우와 윈난을 잇는 윈구이고원(高原)은 아주 좋은 품질을 지닌 담배 농사 최적지이다. 1개비에 1위엔, 1개비 사서 피웠다. 풀로 엮은 필터가 있다고 했지만 풀 향기가 진하게 연기가 돼 뿜어 나온다. 마치 시가처럼 깊이 빨았다가 천천히 맛을 음미하면 좋겠다 싶다.


ⓒ 중국 소수민족 취재팀

 

ⓒ 중국 소수민족 취재팀

 

담배 맛을 본 이감독이 한 갑을 샀다. 한 갑은 10위엔이고 2개가 더 많은 12개비이다. 바람 없는 잔잔한 오후 담배 연기는 동그랗고 하얀 빛으로 얼굴부터 시작해 온몸을 포근하게 감싼다. 눈동자와 닮아 마치 눈빛이 살아나오는 모양인지 착각이 든다. 먀오족 마을에서 맛본 또 하나의 향연이 아닐 수 없다.

 

거리 끝자락에서 다시 산을 타고 마을 속으로 들어간다. 산 능선을 따라 생긴 좁은 길이 집집을 이어주고 있다. 한적한 골목길을 걷다가 한 집으로 들어가니 할아버지가 나와서 배시시 웃는다. 괜히 멋 적어 다시 나오는데 앞집 지붕 위 세 갈래 중심에 항아리 하나가 자리잡고 있다. 다른 지붕에는 없는 항아리이니 눈에 띌 수 밖에 없다. 용도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지붕 위 항아리라니 인상적이다.

 

산 중턱에 지은 집이라 아래에서 보면 가파른 절벽 같다. 3층 구조인 집집마다 옥수수가 주렁주렁 달린 채 햇빛에 말라 딱딱해지고 있다. 줄에 널린 빨래에도 사람냄새가 난다. 열린 창문을 통해 가족의 향기가 넘어오는 듯하다.

 

조금 넘은 골목길은 장터이다. 잡화 백화점이라 할만한데 옷 가게가 아주 많다. 눈동자가 크고 맑은 3살 아이가 옷 파는 엄마 옆에 앉아 마침 밥을 먹으려 한다. 수줍어하는 애 띤 얼굴이다. 너무 귀엽게 생겼다고 하니 여동생은 더 예쁘다고 자랑한다. 딸은 아빠랑 밖에 나갔다고 하는데 엄마를 닮았다면 정말 예쁠 듯하다.

 

산에서 천천히 내려오는 할아버지 한 분과 사진을 찍었다. 반듯한 자세로 선 모습에서 인자한 마음씨가 묻어난다. 주름 진 얼굴에 선하고 고운 할아버지의 자태가 오래 기억되지 싶다. 외지인에게 말 한마디 없이 흐뭇한 미소까지 건넬 줄 아는 여유, 우리네 할아버지 같다. 할아버지가 내려온 길로 다시 능선 하나를 넘어간다.

 

배가 고픈 시간이라 2층에서 내려다 보고 있는 할머니에게 말을 건다. 집에서 먹는 반찬과 밥이면 좋으니 좀 줄 수 있는지, 돈은 주겠다고 간청했다. 가난해 먹거리가 마땅하지 않고 손자 손녀를 돌보는 중이라 난처하다며 머쓱해한다. 난간을 양손으로 잡고 아래를 보고 있는 아이의 까만 눈동자와 마주치니 더 간절히 애원하기 어려워졌다.

 

ⓒ 중국 소수민족 취재팀

 

ⓒ 중국 소수민족 취재팀


2층 베란다는 미인 기대 선 곳이라는 뜻으로 메이런카오(美人靠)라 부른다. 베란다에서 주로 아가씨들이 생활하며 얼굴도 다듬으며 직조도 하고 오가는 총각과 눈도 마주친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참으로 애교 섞인 말이지만 아래에서 밥 달라고 애절하게 부탁하고 있으니 좀 창피하다.

 

무턱대고 올라가 아이도 안아보고 떼 한번 더 써볼까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말 한 마리가 좁은 길모퉁이를 돌아서 후다닥 가까이 왔다. 산 아래에서부터 시멘트를 싣고 올라온 것이다. 이 동네에서는 차보다 훨씬 유용한 짐꾼이 말이다. 주인이 짐을 내려놓는 사이 킁킁 몇 번 호흡하더니 성큼성큼 다시 사라졌다.

 

골목을 내려가다 보니 벽에 커다란 거울이 걸린 집이 나온다. 식당과 숙식을 겸하는 농가이다. 안으로 들어서 2층 바깥으로 작은 정자처럼 꾸며진 식탁에 앉는다. 강에서 직접 잡은 물고기와 야채 요리, 그리고 밥을 주문했다. 마침 이슬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날씨에 운치까지 선물하니 멀리서 온 손님으로서 고맙기 그지 없다. 밀주를 반주로 하기에 더 없이 좋다.

 

ⓒ 중국 소수민족 취재팀

 

ⓒ 중국 소수민족 취재팀

 

늦은 점심을 먹고 다시 마을로 내려온다. 엄마 대신 잡화를 파는 여자아이와 말도 걸어본다. 수줍게 고개를 뒤로 돌린다. 뒤쪽 벽화에는 밭 가는 아주머니가 아이를 바라보고 있다. 아버지가 아들 머리를 바리캉으로 깎아주고 있다. 아이는 고개를 푹 숙였지만 애써 귀찮은 표정조차 감추긴 어려워 보인다. 그들은 어떨지 모르나, 아무 말 없이 까만 머리카락을 털어내고 있는 부자 모습을 보니 둘 다 포근히 안아주고 싶다.

 

하루 종일 색다른 풍물 구경에 약간 피로했다. 숙소로 돌아와 창문 열고 해 지려는 마을의 전경을 시야에 그린다. 이 잔잔한 색깔, 싱그러운 소음을 언제 또 볼 수 있으리. 아래 층에서는 저녁 손님을 맞으려는 듯 루셩(蘆笙) 부는 소리가 시작됐다. 해 질 때까지 이불 덮고 옅은 잠을 청했다.

 

한참 잤는데도 루셩 소리는 여전하다. 창문을 여니 어느새 마을은 새 세상으로 변모했다. 거실로 나가니 마을 야경이 언제는 멋지지 않았냐는 듯 천연덕스럽다. 우리가 거닐던 골목길과 집마다 등이 켜졌고 강을 사이에 둔 랑챠오(廊橋), 회랑 다리 역시 조명이 밝다.

 

ⓒ 중국 소수민족 취재팀

 

ⓒ 중국 소수민족 취재팀

 

ⓒ 중국 소수민족 취재팀

 

식당에는 이곳 특별요리인 쏸탕위(酸湯魚)를 먹고 있는 중국사람들이 있다. 맛을 물어보니 약간 새콤한 것만 빼면 매운탕과 거의 같다. 식당 아가씨 3명이 노래를 부르며 술을 권하고 존경스런 대접을 하는 모습도 재미있다. 손님 맞는 풍속을 그대로 응용한 것이다.

 

우리는 밤 거리로 나섰다.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고 조용해 이리저리 걷기 좋다. 갑자기 한국이란 글자가 보여 깜짝 놀랐다. 빙글빙글 돌아가며 굽는 기계인 군둥샤오카오(滾動燒)로 닭과 오리를 구워 판다. 진짜 한국산이냐고 물어보니 그렇다고 한다. 오리 한 마리를 주문하고 안쪽 다파이당(大排檔)으로 들어간다. 바로 노상 야시장이다.

 

고기, 야채, 해산물, 버섯 등 꽂을 수 있는 것은 다 있는 가게이다. 이것저것 먹을 만큼 시키니 익는 순서대로 나오고 상으로 올라올 때마다 술잔도 늘어간다. 맥주와 중국 술 곁들여 중국과 소수민족 그리고 취재 이야기를 섞는 이 밤은 폭탄이 터져도 나 몰라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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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이저우 소수민족 취재기 ①] 베이징에서 시장까지
 

베이징 출발 Z17 열차, 후난(湖南) 창사(長沙)까지 13시간 5분. 10월 28일 저녁 출발 아침 도착의 직행특급기차인 즈다터콰이(直達特快)는 오차 없이 순간 이동했다. 중국소수민족 로망을 지닌 취재팀은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 없다. 다시 구이저우(貴州) 행 버스를 탄다. 창사 버스터미널에서 뉴러우몐(牛肉麵) 한 그릇씩 배를 미리 채웠다. 장이머우 감독의 <귀주이야기>가 '귀주'가 아니듯 영화 속 중국 서북지역 배경이 아닌 중국 서남부 소수민족 마을을 향해 간다.


구이저우 동남부 및 남부 지역은 먀오족(苗族), 둥족(侗族), 부이족(布依族), 수이족(水族) 등 소수민족이 거주한다. 송(宋)대 이전에는 쥐저우(矩州)라 했으나 기역자 모양의 자를 뜻하는 이 쥐(矩)와 구이(貴)의 현지 발음이 같아서 원(元)대 이후 줄곧 구이저우라 했다. 구이저우를 약칭하는 첸(黔)은 춘추전국시대 이래 행정지명으로 썼던 말이기도 하다. 첸링산(黔靈山)이나 첸링허(黔靈河)가 있다. '검을 검'의 첸을 산과 강 이름으로 쓴 유래가 있겠지만 칼라감성이 원초적인 중국에서 느낌 다른 은은한 낭만이 역사만큼 깊다고 할 수 있다. 수천 년 이어온 현지 소수민족의 애환 때문일지도 모른다.
 


간이침대 두고 손님 태우는 것은 불법... 그래서 재미난 일 벌어졌다


▲ 서울에서 온 일행과 베이징을 출발, 창사를 거쳐 카이리에서 1박 한 후 다시 중국 최대 먀오족 마을 시장 첸후먀오자이까지의 노선도. 이 마을 행정소재지는 구이저우 동남부 먀오족둥족자치주 카이리 시, 레이산 현, 시장 진이다. ⓒ baidu.com 지도


다음 행선지는 첸둥난(黔東南)먀오족둥족자치주의 주도인 카이리(凱裡). 창사에서 카이리까지는 다시 10시간 이상 가야 한다. 4명의 대원은 낯선 환경의 2층 침대버스에 올랐다. 고속도로를 타기 전까지 시내를 두루 돌더니 점점 각 침대 칸을 다 채운다. 우리는 아예 맨 뒤쪽으로 나란히 자리를 잡았다. 한 줄에 3칸 침대이지만 맨 뒤는 사이에 간이침대를 넣어 5칸이다. 간이침대를 두고 손님을 태우는 것은 불법이다. 그래서 재미난 일이 벌어졌다.


성 경계에는 검문이 있다. 후난 성 끝자락에서 갑자기 정차하더니 차장이 중국승객 2명과 나를 빨리 내리라고 한다. 바삐 서두르기에 무슨 일인가 싶어 내렸더니 7인승 버스에 옮겨 타라고 한다. 그제서야 이 상황을 전반적으로 이해하지 못할 대원들에게 운전석 문을 열고 큰소리로 '걱정할 일 아니니 10분이면 된다'고 말했다. 침대 7칸이 줄지어 있을 정도로 긴 버스 뒤쪽에서 이 급박한 명령(?) 소리가 들리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3명은 갑자기 질겁을 했고 중국어 한마디 못하는 대원들은 '대장 친구가 없다'고 난리를 친 것이다. 
 


중국에 관한 위험한 선입견이 클수록 소동은 더 심각한 법. 운전석까지 달려가 소통의 절망을 느끼고 대장을 잃어버린 상실감, 두려움이 폭발했으니 차를 세우지 않은 게 이상할 정도이다. 누군가 영어로 'No Problem'이라 안정시켰다 했지만 10분은 참 긴 시간이다. 경계를 벗어난 후 재회한 기쁨은 한동안 버스를 시끄럽게 하기에 충분했다. 지금 생각하면 우리의 수다를 침묵하며 이해해준 사람들이 고맙기조차 하다. 이렇게 우리는 구이저우에 도착했다.


고속도로 한 귀퉁이에 우리를 내려주더니 버스는 다시 최종 목적지를 향해 떠나갔다. 시내까지 연계하는 차량을 옮겨 타고 호텔을 잡았다. 베이징에서 차량 이동시간만 24시간, 1박2일만에 카이리에 도착한
것이다. 

▲ 먀오족은 쌀과 찹쌀 농사를 주로 한다. 찹쌀술 항아리
1근(500g)에 6위엔(약1,000원), 봉지에 담아서 판다. 
ⓒ 중국 소수민족 취재팀


둥족 부부가 운영하는 작은 식당에서 가지와 감자로 만든 요리와 밥을 사고 1근에 6위엔인 먀오족 밀주, 눠미쥬(糯米酒)까지 나눠 마시며 허기를 달랬다. 다시 한번 의기투합. 취재여행의 별미는 역시 이야기이다. 만 하루의 여정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책 한 권을 탈고한 듯한 기분이다.


소수민족 취재 첫 번째는 중국 최대 먀오족 마을 첸후먀오자이(千戶苗寨)이다. '자이'의 '채'는 울타리, 산채 등을 뜻하니 민족 이름을 붙여 쓰면 바로 민족마을이 된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서둘렀다. 카이리에서 버스로 1시간 좀 더 걸린다. 시내를 벗어나 산골로 접어드니 계곡을 따라 흐르는 강을 끼고 크고 작은 소수민족 마을이 펼쳐진다. 검은색 지붕에 하얀 무늬가 보이면 먀오족 마을이고 마을에 높은 탑이 솟아있으면 둥족이다. 달리는 버스 차창 밖으로 드러난 가옥형태로 민족을 나누어 보는 것도 신기하고 재미있다. 사진이나 책에서 보던 모습은 지식이지 현장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푸른 나무 사이로 겹겹이 모여 사는 집집마다 역사가 있고 살아온 숨결이 보인다.


꼬불꼬불 산길이 점점 심산유곡이다. '까마귀가 불 타는 마을'이라는 샤오우사오촌(小烏燒村) 도로에는 시장이 열렸다. 농산물은 물론이고 고기, 야채 등 생필품, 그리고 모자, 옷, 신발도 보인다. 도로를 가득 메운 사람들 덕분에 버스가 장터 사이를 천천히 피해간다. 버스에서 내려 사람들 속으로 풍덩 들어가고 싶어진다. 낯선 여행자들에게는 그냥 장터가 아니다. 옷 매무새에는 별스런 칼라를 담았고 눈망울과 주름에도 신선한 향기가 돋기 때문이다.


▲ 구이저우 시장 첸후먀오자이 가운데로 강이 흐르고 산 능선을 따라 검정 지붕의 집들이 천호에 이르는 중국 최대 먀오족 마을 ⓒ 중국 소수민족 취재팀


다시 버스는 커다란 산 하나를 넘는다. 꾸불꾸불 넓은 포물선을 그리며 하염없이 달리던 버스가 드디어 시장(西江) 진에 도착한다. 산 모퉁이를 돌아서니 천 가구나 모여 사는 마을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집들이 산 하나를 통째로 뒤덮어 마치 요새 같다. 이다지도 깊은 산 속에 수천 명이 지고한 역사를 지닌 채 살아왔다니 신비롭다.


강물의 흐름과 마을의 분포 보니... 서울이잖아!


시장 진 먀오족 마을 입장료가 무려 100위엔(약 1만8천 원)이다. 마을 한가운데로 흐르는 조그맣고 맑은 하천을 두고 위 아래로 얕은 능선에 천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동네. 나무 판자로 만든 농가분포도는 얼핏 보면 마치 서울 지도를 보는 듯하다. 강물의 흐름과 마을의 분포를 평면으로 그려놓으니 정말 똑같다. 다만, 강의 위쪽, 즉 '강북'은 사실 동쪽이다.


▲ 구이저우 시장 첸후먀오자이의 지도. 마치 서울 지도를 보는 듯 하다.
ⓒ 중국 소수민족 취재팀


강물은 남쪽에서 북쪽으로 흘러간다. 마을 한가운데를 흐르는데 따지고 보니 서쪽 강도 아니다. '서강(西江)'이라 부르는 이유가 무얼까. 강의 이름도 바이쉐이허(白水河)이다.


현지 먀오족 발음으로 '지장(雞講)'이 '서강'의 중국발음 시장(xi jiang)과 같다. 그러니까 원래 이곳의 지명은 '닭이 말한다'는 뜻으로 중국어로는 지장이라고 하지만 먀오족은 시장이라 발음한다. 자연스레 '서쪽 강'이라 지명까지 변한 것이다. 즉, 시장은 먀오족 언어 '지장'의 중국표준어 음역인 셈이다.


'닭이 말한다'고 할 정도로 먀오족은 닭과 친숙하고 투계, 더우지(鬥雞)로 유명하다. 목덜미 주위가 피 빛 선연한 싸움닭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원래 순한 지 기력이 떨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는 것으로 봐 공격적이지는 않지만 선뜻 다가가기가 쉽지는 않다. 먀오족들은 닭을 정말 좋아하는지 더우쟈오지(鬥腳雞)라는 전통놀이가 있다. 손으로 한 발을 잡고 상대방을 넘어뜨리는 것인데 우리의 닭싸움과 완전 똑같다.


▲ 시장 첸후먀오자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는 더우지(투계). 피투성이 목덜미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 중국 소수민족 취재팀


모두가 알듯 먀오족은 치우(蚩尤)를 조상으로 받든다. 투구 같지만 물소의 뿔처럼 양쪽으로 펼쳐진 멋진 은빛 장식을 머리에 걸치는데 그 형상이 신화 속 치우와 닮았다. 중원 동쪽, 장강 중류에 거주하던 구려(九黎)부족이 수차례에 걸쳐 남하한 민족이다. 중국 남부지방으로 온 먀오족은 씨족 단위로 광범위하게 정착했다. 이곳 역시 시(西)씨 계열의 먀오족 부락이다.


어른들이 아이들을 업고 다니는 모습도 흔하다. 엇갈리게 끈으로 묶고 등에 아이를 업은 노인이나 아주머니들이 거리에 많다. 은 장식 모자를 쓰고 앉은 아이는 물끄러미 낯선 이방인을 바라본다. 길모퉁이에서 아이들이 딱지싸움도 하고 트럼프놀이도 한다. 할머니를 따라 마실 나온 아이들은 신나게 사람 구경도 한다.


▲ 구이저우 시장 먀오족 마을. 아이를 업고 가는 할아버지 ⓒ 중국 소수민족 취재팀


▲ 할머니를 따라나온 아이들에게 사진을 찍어주고 보여주면 아주 즐거워한다.
ⓒ 중국 소수민족 취재팀


먀오족 마을 큰길은 그 자체로 문화풍물거리이다. 전통 공예 가게가 즐비하며 순은방 간판은 검은색 바탕 위에 붉게 빛난다. 손으로 직접 짜서 모자, 신발을 파는 수제방(手繪坊) 이름은 아나이(阿娜依)이다. 영화로 제작될 만큼 유명한 전설이다. 심청처럼 아나이는 먀오족 아가씨의 이름이다. '아'가 이름이고 '나이'는 먀오족이 가장 좋아하는 꽃인 작약을 말한다. 그러니 우리 식으로 보면 '이진달래' 정도겠다.


어릴 때 부모를 잃고 할머니랑 지내며 자수와 노래 솜씨가 좋았고 예쁘고 마음씨가 착했으며 나중에 둥족 청년과 만나 결혼해 잘 살았다는 이야기이다. 예쁜 아가씨, 그리고 고난과 사랑, 노래의 정서가 담긴 소수민족 이야기는 이렇게 일맥상통하며 다소 천편일률적이다. 쿤밍 이족(彝族)의 '아스마(阿詩瑪)'나 구이린 좡족(壯族)의 '류싼제(劉三姐)'와도 닮았다.


▲ 전설 속에 나오는 사랑의 주인공 '아나이' 이름을 한 수제방 간판. 먀오족은 치우를 숭배하며 물소의 뿔 같은 모양의 장식으로 유명하다. ⓒ 중국 소수민족 취재팀


하지만, 취재여행에서 들을 수 있는 사랑의 전설은 늘 같아 보여도 늘 새록새록 새롭다. 사랑이 주는 감흥은 민족이나 인종 그 어디에도 차별이 없다. 민족마다 서로 다른 차이를 뛰어넘는 역사와 문화, 애절한 각 민족의 자기고백은 이방인에게는 언제나 신선하다.


후루루 입 속으로 넣은 먀오족 비빔면, 그 맛은?


거리마다 커잔(客棧)이 수두룩하다. 너무 소란스러울까 걱정도 된다. 어쩌면 멀리 소수민족 마을을 찾은 것은 도시답지 않은 한가(閑假)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강을 건너 맞은 편 언덕 위로 올라갔다. 농가를 개조한 여관이다.


▲ 구이저우 시장 첸후먀오자이, 먀오족 아이가 은 장식 모자를 쓰고 있다.
ⓒ 중국 소수민족 취재팀


먀오족 가옥은 나무로 지은 2층 누각 형태이다. 이를 댜오쟈오러우(吊腳樓)라 부르는데 조문한다는 뜻의 '조' 자의 형태와 비슷하다. 이런 형태는 산골생활을 하는 소수민족의 일반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넓게는 광시(廣西) 등 남방지방의 대나무와 풀로 엮어 만든 집을 말하는 간난식(杆欄式) 가옥에 포함된다. 중국 4대 고대민가건축 중 하나로 베이징 등 북방지역의 쓰허위엔(四合院), 윈난의 장방형으로 도장처럼 생긴 이커인(一顆印), 남방의 커자(客家)부족의 투러우(土樓)와 함께 전형적인 전통가옥이다.


짐을 풀고 창 밖을 보니 마을이 한눈에 보인다. 하천에서는 고기를 잡고 안개 낀 앞산은 까맣게 뒤덮은 나무집들로 빽빽하다. 서둘러 취재 장비를 챙겨 밖으로 나왔다. 허기부터 채우고 공연을 보기로 했다.


강 다리 위에 넓은 면발에 향긋한 소스로 비빈 미피(米皮)가 보인다. 이 비빔면은 중국 어디서나 있지만 먀오족 입맛은 어떨지 궁금했다. 후루룩 입 속으로 넣으니 한마디로 대성공이다. 적당하게 고소하며 달고 상큼한 맛깔 때문에 입맛이 마구 돌았다. 콩 국물인 더우장(豆漿)에 곁들이니 안성맞춤이다.


▲ 비빔면의 일종인 미피 ⓒ 중국 소수민족 취재팀


인절미 만드는 떡판이 놓여 있다. 츠바(糍粑)라 하는 찹쌀로 만든 떡이다. 좁고 깊은 절구통과 달리 이들은 넓고 평평한 떡판을 사용한다. 주인아주머니는 매일 밤 절구에 넣고 떡메를 쳐서 떡을 만들어오는데 관광객들이 즐기는 먹거리라 한다. 쫄깃한 떡 맛 그대로, 어쩜 이렇게 고향 맛이 나는 것인지.


▲ 찹살떡인 츠바 만드는 모습 ⓒ 중국 소수민족 취재팀


어느덧 배도 부르고 시원한 바람이 산들거리니 피로를 조금 풀어본다. 베이징에서 약 2500킬로미터 떨어진 이 먼 소수민족 마을을 조용히 음미한다. 역사처럼 한없이 오래여도 좋다. 느긋하게 잠시 앉았던가 싶었는데 우리 취재팀은 곧바로 카메라를 들었다.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색다른 리듬의 풍악소리는 그다지 멀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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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베이징 슈수이(秀水)시장에 들렀습니다. <차이나리포트>를 함께 만드는 한겨레신문 하니티비 팀 사람들과 포토에세이다이어리 <꿈꾸는여행,차이나>를 만든 리온의 팀장에게 간단한 선물을 준비하려고 뒤적이던 중 재미있는 물건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고무자석이 달린 중국공예품입니다. 공예품이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지만 중국다운 캐릭터들이 무수히 많아 이것저것 골라 담았습니다. 하나에 15위엔, 약 3천원을 부르길래 이리저리 흥정을 해서 하나에 3위엔, 600원에 20개를 골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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볜롄(变脸)과 황실 옷이 귀엽습니다. 마치 서로 앙상블을 이루고 있었던 것처럼 조화가 아주 그럴 듯합니다. 볜롄과 옷을 각각 한 쌍을 줘야 할 지, 아니면 얼굴과 옷을 한 묶음으로 줘야 할 지 망설여지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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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바탕에 한자에 적혀 있는 것도 의미 있습니다. 아이(爱), 시(囍), 더(德), 런(忍), 룽(龙)은 우리도 쉽게 알 수 있는 글자들입니다. 그런데 윗쪽 가운데 글자는 아리송합니다. 그런데, 제 발품취재를 꼼꼼하게 읽은 분이라면 아마도 기억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몇 개의 글자를 함께 섞어 지어 부르는 말이라는 줘웨이위(作谓语)입니다. 자오차이진바오(招财进宝)를 하나로 합쳐 쓴 글자로 산시(山西) 성 핑야오 편에서 이미 한번 이야기했던 글자입니다. 중국사람들이 '돈 많이 버세요'라고 자주 쓰는 말인 꽁시파차이(恭喜发财)와 비슷하다. 자세히 보면 4개 글자가 잘 어울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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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안(西安)의 명물 캐릭터인 빙마융(兵马俑) 중에서도 무릎 쏴 자세의 궤사용(跪射俑)입니다. 이 내용도 제 발품취재에서 읽은 분이 있을 것입니다. 두 개의 항아리도 아주 예쁩니다.

청두(成都) 편에서 썼던 슝마오(熊猫), 즉 팬더는 중국을 상징하는 캐릭터입니다. 역시 만리장성은 최근에도 눈 덮인 쓰마타이(司马台)를 비롯해 여러 번 제 글에서 썼던 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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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색다른 재질로 만든 캐릭터제품입니다. 뒷면에 고무자석이 붙었지만 앞면은 돌조각입니다. 베이징올림픽 주 경기장과 톈안먼(天安门)광장, 베이징 후퉁(胡同)과 만리장성입니다. 제가 쓴 글 중에서 베이징 이야기가 가장 많으니 제 글을 읽는 독자라면 아주 친숙한 것들입니다.

여러분도 베이징에 가시면 한번 이런 것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가까운 분들에게 선물을 고르는데 머리가 아플 수도 있다면, 가까운 분들이 수십명에 이른다면 한번 고려해봄직한 선물입니다. 값이 비록 싸지만 나름 의미가 있으니 말입니다. 물론, 3위엔에 사시려면 다소 흥정에 신경을 써야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3위엔에 산 사람이 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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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yingai 2009.11.30 04: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와~ 선생님 도대체 얼마나 깍으신거예요~ ㅋㅋ
    5분의 1을 깍으시다니 정말 대단대단~!!
    저는 특히 병마용하고 팬더, 그리고 만리장성이 맘에 드네요^^
    나중에 다시 북경에 가게되면 저도 슈수이 시장이란 곳에 가봐야겠어요. ^^

    • Favicon of https://youyue.co.kr BlogIcon 최종명작가 최종명작가 2009.11.30 13: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깍는거야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가능하지...
      재미난 시장이야...물건 사는 일 뿐아니라 사람들 모습이 정말 활기차고 전쟁이지...단 1위엔 깍으려고 서로 대화하는 모습이 장관이랄 수도 있지....^_^

  2. cosmopolitan 2009.12.04 01: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갖고 싶은데 한국이네요...ㅠ.ㅠ






라싸에서의 6일. 그 중 이틀을 ‘티벳 천사들’과 행복한 만남을 가졌습니다.

라싸로 간 첫날 7월17일, 두통을 동반한 고산병 증세로 하루 종일 꼼짝을 못했습니다. 해발 3천 미터가 넘는 고원, 티벳불교의 중심이고 정치적 종교적 민족적 갈등을 그대로 지닌 씨쟝 자치구 수도 라싸는 그야말로 전 세계인들이 찾는 유명 관광지.

라싸의 관광산업을 주도하는 한족들은 라싸의 물가를 높여 놓았습니다. 세계문화유산인 포탈라궁을 보려면 하루 전에 예매해야 하며 조캉사원 입장은 비싼 요금을 내야 합니다. 그렇게 우울했던 라싸에서 티벳의 천사들을 만난 것은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오체투지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뭔지 모르게 답답하던 7월18일. 우연하게 라싸 시내에 한국인이 운영하는 고아원이 있다는 소식을 알게 됐습니다. 다음날 당장 찾아갔습니다.

사라, 모세, 한나 3명으로 4년 전에 문을 연 ‘사모한’ 고아원. 모두 10명의 아이들이 해맑고 튼튼한 모습으로 예배하고 춤추고 뛰어노는 모습에 벌써 3개월 넘게 취재여행으로 지친 심장에 감동을 물결치게 했습니다. 티벳불교의 나라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치열하게 자리 잡아온 장한종 선생님은 때로는 우리말로, 때로는 중국 보통화로, 때로는 장족말로 천사들을 ‘사랑’하며 아이들의 ‘빠바’가 되었습니다.

저녁을 먹고 예배 후 아이들에게 춤을 추게 해주는 빠바. 참하게 한국 식 절을 하고 ‘곰 세 마리’에 맞춰 신나게 스트레스를 푸는 아이들을 보노라니 덩달아 흥겹습니다. 얼마나 춤들을 잘 추던지.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풀어내는 몸짓은 다 귀여운 가 봅니다. 특히 나오미는 예쁘장한 얼굴과 날씬한 몸매를 뽐내며 한층 세련된 춤솜씨, 푸릇한 날개짓을 보여줬습니다. 티벳 천사들의 합창, 천사들의 날개 짓을 보면서 하나씩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틀 후 다시 찾아갔습니다.

세계적 관광도시 라싸는 화사한 하늘이 있습니다. 종교적 기원을 담아, 온몸으로 오체투지 하는 숭배자들로 넘칩니다. 오체투지 자체가 생활의 수단인 수많은 걸인들이 있습니다. 이를 지켜보는 수많은 배낭여행객들의 천국 라싸에 진정한 천사는 따로 있습니다.

그리고 진정 티벳 천사들을 위해 자신의 온몸을 다 바쳐 살아가는 사람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 누가 뭐라 하더라도, 종교와 민족, 국가와 독립, 사랑과 갈등을 논하기 전에 티벳 ‘사모한’을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아이들의 초롱한 눈망울을 지켜보시기 바랍니다. 그늘을 햇살로 바꿔가는 사랑의 노래, 희망의 몸짓을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티벳 천사 후원하기

자비량으로 티벳에서 5년. 어느 누구의 후원 없이 개인 자금으로 이 사역을 담당하다보니 부대낍니다. 최근 하나님께서 이 사정을 아시고 도움의 손길을 펼쳐 주시고 계심에 감사 드립니다. 앞으로도 계속 여러분의 따뜻한 온정의 손길을, 사랑의 표현을 기다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멘.. 아멘..

한국에서 송금하실 분은 아래 계좌를 이용하세요.

은행명 : 신한은행

예금주 : 장윤석 (장한종의 호적상 본명입니다)

계좌번호 : 460-02-141434

중국내에서 송금 하시는 분은 아래의 구좌를 이용하시면 됩니다.

은행명: 중국은행

예금주 : chang yoon suck

계좌번호(A/C NUMBER ) : 0600 6600 10200 091 076 (번호를 붙여쓰세요)

지역명 :中國銀行西藏區 分行 (중국은행 서장지점 은행 코드명 : 406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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