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의 데이트, 쓰구냥산의 겨울과 봄을 만나다

[최종명의 차이나는 발품 기행] <15> 동티베트 ① 청성산과 쓰구냥산


쓰촨성의 청두에서 1시간 반이면 두장옌에 위치한 청성산(城山)에 도착한다.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4대 도교 명산이다. 예로부터 촉나라 영역이다. 서촉제일산(西蜀第一山) 패방을 지나 청성산 산문(山门)에 이른다. 지붕 위에 오어와 용이 불을 뿜는 모습이나 도인을 연상하는 조형물이 신비로운 분위기다. 도교의 성지답게 강렬한 인상을 내뿜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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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초 사천(四川)에 있는 티베트 문화를 답사했다. 티베트 중심지인 라싸(拉萨)와 달리 동티베트라고 부른다. 티베트의 영토가 굉장히 넓었기에 지금의 티베트(西藏)자치구를 벗어나도 티베트 역사의 흔적은 꽤 많다. 한때 당나라 수도 장안(长安)을 점령하기도 한 민족이다. 그만큼 문화적 영토는 산재한다. 간쯔주(甘孜州) 단바(丹巴)로 들어서면 해발 2천미터 산 능선에 하얀색이 유난히 선연한 집을 짓고 사는 중로장채(中路藏寨)와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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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고도! 꿈에서라도 가고픈 마음이 든다. 방송 다큐멘터리가 우리에게 남겨준 고마운 설렘이다. 험준한 산과 협곡을 넘어가는 말(), 말과 하나의 운명으로 묶인 마방(马帮)의 고단한 행로. 말과 차의 교환을 위해 생겨난 머나먼 길, 차마고도는 생명의 근원이 살아 숨을 쉬고 있다. 해발 4m가 넘는 고원에 사는 티베트 사람은 야크의 젖으로 만든 버터만이 영양분이다. 여기에 풍부한 비타민을 공급하는 푸얼차(洱茶)와 소금이 합류한다. 차마고도가 기나긴 세월을 견뎌온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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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명의 중국대장정(06) – 고향, 루랑진, 거백림 지나 바이까지

 

며칠 내내 화창하더니 보미(波密)의 아침은 운무를 몰고 온다. 구름과 안개가 경쟁하며 땅으로 내려앉는다. 백조처럼 팔룽짱보(帕隆藏布) 강변으로 내려온 하얀 색감은 우아한 비상과 착지로 은근하게 날아다닌다. 도술을 부리듯 설산을 휘감고 돌기도 한다. 땅과 산을 직선으로 가르며 계속 따라오고 있다. 번뇌조차 조용히 침잠하는 아침, 새조차 소리를 잊은 듯 고요하다. 온통 새하얀 세상이 된 덕분에 마음은 더없이 상쾌하다.

 

1시간 채 지나지 않아 고향() 마을에 도착한다. 보미 현의 직할 향이다. 우체국과 위생병원이 있는 건물 앞에 을 새긴 바위 하나가 눈길을 끈다.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관이 있는 대도(国最美景观大道)’는 국도318번 도로다. 며칠 동안 지난 온 길이라 익숙하다. 보미를 티베트 말로는 보워()’라고 읽으라고 친절하게 적었다. 아름다운 길 위의 고향의 별명도 두루 적혀 있다. ‘빙하의 마을, 티베트 왕의 고향, 티베트의 스위스, 설원의 강남’.

 

Mp-06-01 운무 낀 보미의 아침


Mp-06-02 운무와 설산

 

수많은 빙하가 설산마다 머리를 내밀고 있는 곳이다. 스위스처럼 아름다운 빙하 마을이며 티베트 젖줄 얄룽짱보(鲁藏)의 남쪽이기도 하다. ‘고향의 강렬한 인상은 최초의 티베트 왕 네치찬보(聂赤赞普)의 출생지가 풍기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천신(天神)의 아들로 하늘에서 밧줄을 타고 내려온 네치찬보를 12명의 무사(巫師)는 수령으로 영접했다. 기원전 360년 전후에 발생한 역사는 곧 건국신화다. 씨족 중심의 부락을 연맹체를 발전시킨 고대국가 토번(吐蕃) 왕의 출현이다.

 

찬보는 용감무쌍한 사내라는 말로 정교합일의 법왕(法王)을 뜻한다. 원나라 말기에 편찬된 <왕통세계명감(统世系明鉴)>에 따르면 토번 왕조는 네치찬보 이후 26대를 이어왔다. 왕은 언제나 본교()를 통해 국정을 유지했다고도 전한다. 티베트의 원시 불교인 본교는 하늘과 땅, 지하 세계로 나누고 해와 달, 별이나 호수, 바람, 설산 등 자연을 숭배의 대상으로 삼았다. 법왕이 하늘에서 내려와 인간의 우두머리가 된 것은 자연스러운 신화다. 하늘에서 내려왔으니 다시 하늘로 돌아가는 천장(天葬) 의식이야말로 지극히 티베트다운 일이 아닐는지.

 

Mp-06-03 최초의 티베트 왕 네치찬보의 고향

 

티베트 역사에서 토번은 흔히 서기 618년부터 약 220여 년을 통치한 왕국으로 알려졌다. 당나라 시대 티베트를 통일한 강력한 통치자 송첸캄보(赞干布)는 토번의 33대 왕이다. 당나라와 인도의 공주와의 결혼 후 선진 문물과 문화를 받아들여 정교 합일의 토번을 제국으로 발전시켰다. 티베트 불교는 혼돈의 시대를 겪지만 종교개혁가 쭝카파(宗喀巴)가 등장해 겔룩파(鲁派)를 창립하면서 새로운 전환을 맞는다.

 

우리가 알고 있는 달라이라마(达赖喇嘛)는 겔룩파의 최고지도자로 16세기에 이르러 더욱 세련된 종교 체계를 세우고 통치 기반을 수립하게 된다. 티베트 역사를 생각할 때 고향이 배출한 법왕의 근원을 따져 보는 것도 재미있다. 여기는 네치찬보의 고향이다. 이제 곧 수도 라싸에 들어가 달라이라마를 만나게 된다.

 

Mp-06-04 비포장도로 공사 중


Mp-06-05 차마고도를 운전 중인 티베트 운전사

 

고향표지판 위에 올라가 사진을 찍다가 주민에게 혼났다. 신성한 법왕을 멸시한 것은 아니었는데 결례는 맞다. 서둘러 운무 가득한 길을 떠난다. 질퍽한 비포장도로를 달리다가 굴착기 공사로 외길에서 잠시 멈춘다. 대형 트럭이 좁은 길을 비집고 지나가려니 한참 걸린다. 도로가 반듯해지면 덜컹거릴 일이 없겠지만, 오지로의 여행이 주는 질펀한 체험은 사라지지 않을까?

 

통맥대교(麦大桥) 앞에 잠시 멈춘다. 며칠을 달려온 운전사도, 흙탕물을 지나온 4륜 구동 지프도 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다. 찌푸린 날씨 때문인가? 운무에 휩싸인 여행자에게는 신선하고 우아해 보이는 뿌연 하늘이 운전대를 잡은 그에게는 유쾌할 리가 없을 터. 여전히 비포장과 공사 중 도로를 어렵사리 질주한다. 2시간을 달려 루랑(鲁朗)에 접어들어서야 순조롭게 쌩쌩 달린다.

 

Mp-06-06 두 강이 만나는 통맥대교


Mp-06-07 석과계 요리의 고향 루랑

 

루랑은 용왕이 사는 골짜기(龙王谷)’라는데 집으로 돌아갈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는 뜻도 있다. 3km 거리에 있다는 화해목장(花海牧)에서 말을 타고 놀아도 좋을 듯하다. 강을 끼고 있는 촌락, 계곡이 흐르는 목장이자 바다와도 같이 수많은 꽃이 만발한 스위스 같은 풍광이다. 덥수룩한 마부 사이에 소박하면서도 예쁘장한 아가씨 마부의 미소를 따라 준마에 올라타고 싶다. 예정에는 없지만 마방이 수없이 지나던 길을 따라 달리고 싶었다. 순간 허기를 느낀다.

 

Mp-06-08 루랑 목장의 마부 아가씨


Mp-06-09 석과계 요리

 

루랑에 오면 먹어보지 않으면 안 되는 요리가 있다. 석과계(锅鸡). 농민들이 영계에 삼과 천마 등 약재를 넣고 푹 고아 먹던 음식이다. 1999년 루랑에서 27년을 생활한 충칭 사람, 허다이윈(何代云)이 상품화했다. 충징에서 개업했는데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루랑 사람들이 즐겨 먹던 그대로의 맛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정통입맛을 무기로 루랑 마을도 덩달아 유명해졌다. 닭고기를 먼저 먹고 국물에 야채와 버섯 등을 넣어 샤부샤부처럼 먹는데 꿀맛이다. 역시 닭은 담백한 국물 맛을 내기 좋은 재료다.

 

Mp-06-10 루랑 목장의 말


Mp-06-11 도로 변의 야크

 

운무도 사라지고 조금씩 하늘이 보이기 시작한다. 길도 훨씬 좋아져서 평탄하게 질주로 이어진다. 차창 밖으로 사라지는 바람에도 여유를 가지고 손짓을 할 수 있게 된다. 빠르게 달리다가 반대편에서 대형차량이 오면 잠시 서행을 한다. 갑자기 창 밖으로 검은 물체가 나타나 잠시 놀랐다. 도로 옆 언덕 위를 어슬렁거리는 야크였다. 역광이라 실루엣으로 드러나지만, 뿔과 머리도 선명한 야크다. 다리도 튼튼해 보인다.

 

다시 2시간을 달려 바지촌(巴吉村)에 도착한다. 차에서 내리자 마을 사람들이 잔뜩 몰려든다. 어른, 아이 모두 20여 명이 넘는다. 환영 인사는 아니지만 미소를 머금고 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여행자에게 공예품이나 약재 등을 팔기 위해서였다. 세계에서 가장 오랜 수령의 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거백림(巨柏林)이라고 부르지만 정식 명칭은 세계백수왕원림(世界柏树王园林)이다. 20m2 너비의 산에 평균 높이 30m가 넘는 나무가 거대한 숲을 이루고 있다.

 

Mp-06-12 거백림의 세계백수왕

 

숲으로 들어가면 가장 먼저 세계백수왕(世界柏树王)’이 우뚝 나타난다. 50m 높이의 꼭대기가 보일락말락 하고 둘레는 14.8m, 어른 10여 명이 껴안기에도 벅차다. 무엇보다 수령이 무려 3,234년이다. 모세의 출애굽, 중국 주()나라 건국보다 더 연세가 드신나무다. 화석이 되고도 남을 나이에 울창한 가지와 탱탱한 뿌리를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니 장수로세라는 말이 저절로 터진다. 이건 기적이기도 하다. 신화인가?

 

신수()라 부른다. 당연히 성지(圣地). 기원전 1,200여 년으로 거슬러 오른다면 아마도 티베트 전통신앙이자 원시 불교인 본교와의 긴밀한 교감이 보일 듯하다. 석가모니 전생에서 사부로 등장하는 본교 창시자 센랍미우체(饶米保, Senrab Miwoche)의 생명과 영혼이 깃든 나무로 불린다. 오색찬란한 다르초를 휘감아 걸었으며 누구도 쉽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얀 스카프인 카딱()으로 치장을 했다. 숲 전체가 티베트 불향이 나부끼고 있다. 나무 사이로 흔들리는 다르초는 언제까지 제자리를 지킬 것인가? 본교의 생명이 티베트 불교에 고스란히 전달되듯 나무는 굳건하게 버틸 것이다. 보면 볼수록 신비로운 광채를 발산하는 듯하다. 나무의 왕 앞에서 점점 고개를 숙이게 된다.

 

Mp-06-13 50m 높이의 세계백수왕


Mp-06-14 세계백수왕 앞에서 노는 티베트 아이들

 

바닥에 앉아 나무를 올려다본다. 햇살도 따뜻한 포근한 자리에 여전히 사람들이 맴돌고 있다. 아이들이랑 말을 건네고 장난을 친다. 티베트 말을 배워본다. 우선 숫자부터 물어본다. ‘, , , , , , , , , ’, 1부터 10까지 대충 배웠는데 맞는지 모르겠다. 수줍게, 빠르게 말하니 여러 번 물었건만 아리송하다.

 

두 아이가 다소곳하게 일어나 환영 인사를 알려주기도 했다. ‘자시델레(扎西德勒, tashi delek)’, 외치며 환하게 웃는 아이들 모습이 할아버지 앞 재롱과 닮았다. ‘안녕하세요어서 오세요에 더해 축복의 말까지 두루 담긴 인정미 넘치는 인사말이다.

 

Mp-06-15 환영 인사말을 가르쳐주는 티베트 아이들

 

아이들이 서서히 본색을 드러낸다. 그런데도 아이들도 순박하고 물건 값도 적당하다. 공예품과 특산품 가게를 운영하는 엄마 대신에 장사를 하러 따라다닌 것인지, 함께 논 것인지 모르지만. 고산지대에서 생산되는 설국(雪菊) 차 한 통을 샀다. 100g 50위안이다. 일행들도 너도나도 한두 개씩 샀으니 미소전략이 꽤 먹힌 것이다. 거백림을 떠날 때까지 줄기차게 따라오는 귀여운 상술, 늘 웃음을 잃지 않는 아이들이 고맙다. 해맑은 미소는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듯하다.

 

거백림에서 5km 정도 떨어진 린즈지구(林芝地区) 중심지 바이(八一)로 들어간다. 해발 2,900m에 위치하며 인구 3 5천명이 사는 번화한 마을이다. 군대가 주둔하는 도시로 라싸까지 불과 400km. 티베트 남부의 물류와 유통 중심지다. 온갖 특산품이 모이니 좋은 상품을 저렴하게 살 수 있다. 고원지대에서 생산되는 신기한 약재나 차도 많다.

 

Mp-06-16 티베트 남부 린즈지구의 중심지 바이


Mp-06-17 티베트 샤프란 장홍화

 

천지조화이자 생명의 근원이라는 동충하초(冬虫夏草), 장어마(藏御麻)로 격상된 천마(天麻), 장수의 원천 정화진용연수원(华尽溶延寿元)이라는 영지(灵芝) 등 건강식품이 수두룩하다. ‘체내 쓰레기 청소에 탁월한 티베트 샤프란 장홍화(红花)도 새빨간 꽃술을 드러내고 있다. 장홍화는 품질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인데 1g 단위로 판다. 손으로 조심스레 딴 꽃술이니 비싸도 할말이 없다. 얼핏 보면 말린 고추를 가늘게 썰어놓은 듯한 모습이다. 꽃술 몇 개를 우려내면 투명한 핏빛처럼 맑다.

 

운무를 헤치고 티베트의 근원을 생각해본 하루였다. 장홍화 한 잔 마시며 차마고도 질주로 쌓인 피로를 풀어본다. 티베트 인사말이 자꾸 입안에 맴돈다. 맑은 눈망울을 지닌 티베트 아이들의 애틋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자시델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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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고도 티베트 1번지 샹그릴라 최종명의 중국대장정(01)

 

샹그릴라(香格里拉)는 티베트 말로 마음에 담은 해와 달이란 뜻이다. 중국어권 특급 가수로 손색없는 왕리훙(王力宏) 2004 <신중더르위에(心中的日月)>를 발표했다. 티베트 일대를 여행하며 수많은 민가를 채취해 영감을 얻어 만든 노래다. 달콤한 음색은 이상향샹그릴라로 가는 길을 소풍 떠나는 아이처럼 설레게 하는 읊조림 같다. 여름에 가면 푸르고 겨울에 가면 하얗다. 물론 하늘은 늘 파란데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마다 색감이 다른 오묘한 곳이다.

 

리장고성(丽江古城)에서 샹그릴라까지는 180km, 3시간 30분 걸린다. 강줄기를 따라 달리다가 산 하나를 넘어야 한다. 지그재그로 산을 오르는 오르막이다. 고개를 넘자 숨 가쁘게 달려온 차를 쉼터가 반갑게 맞아준다. 넓게 펼쳐진 시야를 따라 맞은 편을 바라보면 해발 5,396m의 하바설산(哈巴雪山)이다. 겨울이면 설산의 위용을 곧잘 드러낸다. 시선을 아래로 내리면 연두색과 초록색이 엇갈리는 바둑판 밭이다. 누가 더 싱그러운지 다투는 듯한 모습이다. 잠시 쉬어가지만, 가슴이 시원하게 뚫린다.

 

Mp-01-01 샹그릴라 가는 길 (여름)


Mp-01-02 샹그릴라 가는 길 (겨울)

 

점점 티베트 분위기가 풍긴다. 시내로 들어서면 마을 어귀마다 하얀 불탑인 초르텐(mchod-rten)이 자리를 잡고 있다. 성스러운 물품을 보관하는 성지로 여겨졌다. 지금은 사원 앞이나 광장 등에 만들어 두는데 예불의 의식이 벌어지는 장소이다. 티베트는 양, 돼지와 야크의 세상이다. 당당하게 거리를 활보하고 다닌다. 임신한 돼지는 제 몸 가누기도 힘든데 왜 어슬렁거리는지 모르겠다.

 

Mp-01-03 거리를 활보하는 임신한 돼지

 

차를 세우고 식당을 찾았는데 시끌시끌하다. 운이 좋으면 진풍경을 자주 만난다. 마침 결혼식 피로연이 벌어지고 있다. 수백 병이나 되는 맥주를 상 위에 올려놓고 연거푸 축하주를 건넨다. 말끔한 양복과 붉은 치파오(旗袍)를 입은 신랑 신부는 얼굴 가득 미소가 넘친다. 샹그릴라는 디칭짱족자치주(庆藏族自治州)에 속한 현이다. 짱족은 티베트 민족을 중국인이 부르는 호칭이다. 티베트 자치의 땅이지만 여느 소수민족 자치가 그렇듯 실질적인지는 다른 문제다. 이미 한족이 자리를 잡고 희로애락을 즐기는 세상으로 변한 지 오래다.

 

마오뉴(牦牛)라 불리는 야크는 신성한 동물로 여겨 잘 먹지 않는 편인데 동행한 일행도 있어서 주문했다. 부드럽지만 한우보다는 다소 텁텁하다. 쫄깃한 맛의 조림과 담백한 국물이 먹음직스런 탕, 싱싱한 채소를 반찬으로 점심을 해결한다. 후식으로 나온 노란 메밀 빵도 색깔만큼이나 구수하다. 우리가 먹는 메밀과는 조금 다르고 쿠챠오()라고 부른다. 보통 타타르 메밀이라고 부르는데 예부터 타타르 민족이 지나는 초원에 쿠챠오가 자란 것인지도 모른다.

 

Mp-01-04 결혼식 피로연


Mp-01-05 야크 고기


Mp-01-06 메밀 빵

 

베이징과 가까운 위현()에서 쿠챠오허러(荞饸饹)라는 메밀틀국수를 먹은 적이 있다. 메밀 반죽을 틀에 넣고 누르면 면발이 주르륵 흘러내려 통 속에서 익는다. 곧바로 그릇에 담아주는 생생한 맛이었다. 지금은 잊힌 우리의 시골과도 같은 감동이었던 것이다. 지금 타타르 민족은 볼가강 부근에 있는 러시아 연방 타타르스탄 자치공화국을 이루고 있다.

 

샹그릴라는 원래 중덴(中甸)이란 지명이다. 2001년 중국 정부는 샹그릴라로 이름을 바꾼다. 영국 소설가 제임스 힐턴이 1933년 발표한 <잃어버린 지평선>에 등장하는 가상의 마을이 현실로 등장한 것이다. 이름을 바꾼 후 관광 수입으로 지역이 크게 발전했다. 드넓은 중국에서 왜 꼭 이곳이어야 했을까? 그럴만한 명분이 있긴 했다. 이곳에는 고성이 하나 있는데 두커쭝(独克宗)이라 부른다. ‘바위에 세운 성이자 월광성(月光城)이다. 푸얼차(洱茶)를 차마고도(马古道) 따라 운반하는 마방에게는 티베트로 진입하는 첫 마을이다. 당나라 이후 차와 말이 교환되었으니 천 년 전에는 티베트의 영향 아래 있었다. 지금은 행정 지역으로 윈난에 속한다.

 

명나라 시대에 이르러 리장의 나시족(纳西族) 토사(土司)가 힘을 길렀다. 샹그릴라에 진출해 또 다른 요새를 지었는데 니왕쭝(尼旺宗)이라 부른다. 일광성(日光城)이란 뜻이다. 두 성곽이 짝을 이루게 된다. 바로 해와 달이 모두한자리에 모인 셈이다. 아쉽게도 지금은 월광성만 남았지만 마음속의 해와 달이라는 샹그릴라 위치를 특정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역사 속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었다.

 

Mp-01-07 티베트 사원 송찬림 전경

 

샹그릴라에는 윈난 최대의 티베트 사원 송찬림(赞林)이 있다. 보통 송찬림사라고 알려지는데 송찬은 천상에 있는 신이 거처하는 지방이고 은 사원을 뜻한다. ‘를 굳이 쓰는 이유가 있겠지만 역전 앞과 비슷하다. ‘작은 포탈라 궁이라는 호사를 누리는 사원이다. 고개를 끄덕일 만큼 독특하고 웅장한 자태를 품고 있다. 산 중턱에 자리를 잡고 있어 정문에서 바라보면 하늘색과 어울려 화사하기조차 하다. 구름이 두둥실 스치면 풍성하기까지 하다.

 

송찬림에는 계율을 받은 승려가 거주하는 캉찬()이라는 건물이 8채 있다. 연꽃의 여덟 잎을 상징한다. 승려 20여 명씩 공동생활을 하는 미찬()도 많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고 광장으로 들어서면 본전인 자창() 앞에 이른다. 자창대전은 승려의 학원으로 1,600명을 수용할 만큼 큰 공간이다. 왼쪽 오른쪽에는 각각 티베트 불교의 종교개혁가이자 최대 교파인 겔룩파의 창시자인 총카파(宗喀巴) 대전과 석가모니 대전이 위치한다. 석가모니 불상에게 봉공하면 반드시 응답한다고 알려져 있다. 1936년 여름 장정 중이던 홍군의 허룽(贺龙) 장군도 이곳을 찾았다. 수많은 병사를 거느린 장수가 전쟁 중에 참배했다면 덕장이라 할만하다.

 

Mp-01-08 송찬림 자창대전


Mp-01-09 법륜과 사슴 한 쌍

 

5층 높이 대전 지붕은 화려한 장식으로 눈부시다. 비첨에는 맹수가 노려보고 있고 원통의 마니룬(玛尼轮)은 하늘을 향하고 있다. 법륜 옆 사슴까지 햇살의 울림이 상당하다. 모두 도금으로 장식한 까닭이다. 티베트 사원 지붕에 법륜과 함께 등장하는 사슴 두 마리는 석가모니의 최초 설법지인 녹야원을 상징한다. 수레바퀴처럼 부처님 말씀이 널리 온 사방에 퍼져나갈 듯 송찬림 지붕은 유난히 금빛 찬란하다.

 

총카파에 의해 발전한 겔룩파 법왕이 달라이라마(达赖喇嘛). 노란 모자를 쓰는 황모파라고 부른다. 티베트 불교에는 다양한 교파가 존재하지만, 겔룩파가 가장 많다. 1959년 인도로 망명한 달라이라마 14세 텐진가쵸(丹增嘉措)는 현재 대부분의 티베트 승려와 서민의 존경을 받는다. 눈 부시게 파란 하늘 아래에서 지켜온 역사와 문화를 남기고 고향을 떠날 수 밖에 없었다. 송찬림은 달라이라마 5세 말기인 1681년 준공된 사원이다. 우여곡절 속에도 달라이라마의 지위를 간직하고 온 고난의 역사는 차분하게 되돌려 볼 필요가 있다.

 

서서히 서산으로 넘어가는 해를 따라 고성으로 향한다. 고성은 거북처럼 야트막한 구이산(龟山)과 접해 있다. 산자락에 대불사라는 자그마한 사원이 있다. 사원 크기에 어울리지 않게도 세계에서 가장 크다고 하는 마니룬(또는 마니차)이 나타난다. 여섯 글자의 주문인 옴마니밧메훔을 새긴 원통이다. 대부분 손에 쥐고 다니거나 사원이나 광장에 아담하게 설치돼 있다.

 

Mp-01-10 두커쭝고성의 거대한 마니룬

 

높이가 21m, 지름이 6m에 이르고 무게가 60톤이나 되니 열 명 정도가 돌려도 끄덕하지 않는다. 여덟 가지 길상인 소라, 깃발, 매듭, 연꽃, 항아리, 물고기, 양산, 법륜이 차례로 새겨져 있다. 사람들이 모여 영차 하며 힘을 쓰면 서서히 돌아가는데 모두 신바람이 난다. 불자가 아니어도 한바탕 신나게 돌리고 나면 온갖 시름을 씻은 듯하다.

 

고성으로 들어서면 왁자지껄하다. 옹기종기 모여 살던 서민적인 마을과는 사뭇 다르다. 세계적 관광지로 이름을 떨치고 있으니 객잔, 까페, 공예품가게, 식당이 즐비하다. 처음 고성에 갔을 때가 2013년인데 이듬해 1 11일 새벽 커다란 화재가 발생했다. 한 객잔 주인이 만취 상태에서 자던 중 침실 난로에서 발화했다. 목조건물인 고성은 순식간에 큰 피해를 봤다. 2016 1월과 8월에도 다시 갈 기회가 있었다. 이제 다시 복원돼 옛날의 화려했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는 모습이다. 고성에 밤이 오면 카페에서 라이브 음악이 흘러나오고 밤 늦도록 이상향이라는 착각이어도 좋은 시간이 흐르고 흐른다.

 

Mp-01-11 고성의 밤

 

러시아인 피터 굴라트는 1955년 출간한 <읽어버린 왕국>에서 수많은 말발굽과 마방 무리로 넘쳐났다고 고성 분위기를 기록하고 있다. 차마고도가 여전히 생명력을 지니고 있을 때이다. 지금은 흔적이 많이 사라졌지만, 차를 싣고 티베트로 향하는 마방의 안식처이던 고성이다. 관광의 성지라고 해도 과거의 흔적을 다 태워버릴 수는 없다. 여전히 티베트의 향기가 고성 곳곳에 풍긴다. 마음속에는 어떤 해와 달이 뜨는지, 향내 나는 추억을 담으며 늘 떠오르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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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고도-보미 출발


티베트를 달린다. 마냥 코발트 하늘만 나타나는 건 아니다. 차마고도에 펼쳐진 운무, 그 옛날 마방들도 이런 은은한 구름을 보며 달렸을 것이다. 흐린 하늘, 비포장도로, 빗길도 달린다. 티베트의 정신적 고향으로 최초의 왕이 탄생한 곳에서 잠시 머문다. 온동네가 국가지질공원이라 쾌청하다. 퉁마이대교通麦大桥를 지나 루랑鲁朗을 향한다.



차마고도-루랑 야크


루랑에서 점심을 먹었다. 돌솥에 푹 고운 닭고기 요리인 스궈지(石锅鸡)로 유명한 식당이다. 말 타고 놀 수 있는 관광지이기도 하다. 다시 랜드크루저를 달려 티베트 남부 군사도시 바이八一로 이동하는 중 몸집이 큰 야크를 만났다. 참 영물이다.



차마고도-거백림


린즈林芝 거백림巨柏林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 숲이다. 해발 3000미터 지점에 높이 50미터 크기의 수령 3234세의 나무가 있다니 놀랍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물건 팔러 온 아이들과 함께 노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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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닝(西宁)에서 약 서쪽으로 2시간 떨어진 거리에는 1300여 년 전 당나라 태종의 딸인 문성공주의 사당이 있다.

 

중국의 3대 고원인 칭장가오위엔(藏高原)의 동남부에 위치한 이곳에는 일월산이 있고 그 산자락 아래에 사당이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이곳은 지금도 위슈() 장족자치주이기도 하다. 그 옛날부터 장족이 자신의 민족문화를 꽃피워오던 곳인 셈이다. 아마 적어도 당나라 시대까지만 해도 이곳은 장족과 한족의 영토 경계선이었을 것이다.

 

당 태종이 아꼈던 문성공주는 장한퇀지에(汉团结)의 선물(?)로 장족의 토번왕인 쑹첸깐부(干布)에게 시집갔다. 당나라 수도인 창안()에서 라싸()가는 길에 공주가 가장 오래 이곳에 머물렀던 곳이기도 하다. 당 태종이 이곳까지 배웅을 했으며 공주를 보내는 심정이 참으로 착잡했다고 전해진다. 공주가 떠난 후 이곳 장족들이 사당을 지었다 한다.

 

공주의 동상이 서 있고 일월산에는 해와 달을 상징하는 정자 2개가 산봉우리 하나씩을 차지하고 있다. 장족의 동물인 야크 동상도 보인다. 야크에 올라타서 사진을 찍는 중국사람들을 보면서 마음이 착잡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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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발품취재 55] 알롱창포 강을 건너 티베트 발원지 쌈예사원

2007년 7월 20일 새벽 6시, 우리 일행은 쌈예(桑耶) 사원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원래 7명이었는데, 한 친구가 버스시간을 1시간 잘못 알고 있었다. 나중에 혼자서 찾아와서 극적으로 상봉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자주 연락하는 '쌈예의 7인'이 됐다.

시끄러운 음악소리에도 다들 잠을 잘도 잔다. 어둠 속에 언뜻 비치는 바깥 풍경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오캐롤'이 나와서, 안 그래도 애써 잠을 기다리던 분위기를 가셔버린다. 어둠이 걷히자마자 내린 곳은 알롱창포(雅鲁藏布) 강을 건너는 선착장에 도착했다. 한참을 기다린 후, 여행객과 현지인을 가득 실은 배는 아침 공기를 가르며 아름답고 성스러운 알롱창포 강 위에서 1시간가량 항해를 했다.

  
▲ 알롱창포 강의 배 1시간 가량 배를 타고 알롱창포 강을 건너 쌈예로 가는 길
ⓒ 최종명
쌈예

알롱창포 강은 하늘에서 보면 마치 거대한 은빛 용이 날아가는 모습이라 한다. 히말라야(喜玛拉雅) 산 해발 5300미터 중턱 설산에서 흘러 내려온 강물이 서쪽에서 동쪽을 향해 흐른다. '세계의 용마루(屋脊)'라는 칭장고원(青藏高原) 남부를 가로지르는 이 강은 티베트 장족(藏族) 사람들의 요람으로 비옥한 토지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하늘의 강이라는 '톈허(天河)'라 부르며 장족들의 원천이라 한다.

강에서 내려 다시 이동해야 한다. 트럭 운전사는 아무리 값을 깎으려 해도 소용이 없다. 잠시 기다리던 버스도 떠나버렸으니 도저히 방법이 없다. 버스 요금과 같은 가격으로 앉아 갈 수 있으니 당연히 배짱일 터. 트럭 앞자리에는 운전사의 3살 난 아들이 함께 타고 있었다.

가는 동안 바나나를 주니 참 맛있게 먹는다. 입 주위에 바나나 먹은 티를 내며 뒤를 돌아보며 우리와 이야길 주고받는다. 동그랗고 선하게 생긴 눈망울로 바라보는 모습이 너무 귀엽다. 40분가량 달려 티베트 불교의 발원지라 일컫는 쌈예 마을에 도착했다.

  
쌈예로 가는 트럭 운전사의 아들
ⓒ 최종명
쌈예

라싸처럼 번잡하지 않고 한적한 쌈예 진(桑耶镇)에 도착한 것이다. 사원 앞에 있는 자그마한 숙소를 잡았다. 1인당 15위엔. 한 방에 침대가 딱 여섯 개였는데 그야말로 우리를 위해 준비됐구나 싶을 정도로 안성맞춤이다. 누군가 이곳에는 숙소가 거의 없다는 정보를 알고 있다고 해서 서둘러 사원 입구 숙소를 잡았는데, 나중에 보니 마을 곳곳에 숙소는 꽤 많았다.

새벽부터 움직였더니 피곤해서 자유시간에 잠을 잤다. 1시간 정도 자고 난 후 사원 구경을 갔다. 쌈예 사원 입장료는 40위엔. 카메라로 사진 찍으려면 150위엔, 캠코더 촬영은 무려 1500위엔이나 했다. 무려 20만원이니 아예 촬영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인가.

기원전 인도 왕자가 티베트로 와서 부족국가를 통일한 후 33대 쏭첸깐뽀(松赞干布)의 부흥기가 있었고 37대에 이르러 티쏭데우첸(赤松德赞, 742~797)은 서기 762년부터 건립을 시작해 779년에 씨장 제일의 사원(西藏第一座寺庙)이라는 쌈예 사원을 완공했다. 그는 문수(文殊)의 현신이라 할 정도로 백성들에게 어진 왕이기도 했고 인도와 당나라 등과도 교류하는 등 불교를 부흥시키고 통합하는 데 노력했다고 전한다.

  
▲ 쌈예 사원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과 어울리는 사원의 모습
ⓒ 최종명
쌈예

수많은 학자와 승려를 양성하기도 했는데 7명의 귀족 출신을 출가시켜 유명한 승려로 키웠는데 이를 이름하여 '쌈예 7인의 선각자(桑耶七觉士)'라 부른다. '쌈예의 7인'인 우리는 이곳에서 티베트 불교의 선구자 7인의 흔적과 만난 것이니 재미난 인연이라 할 수 있다.

사원을 들어가지 않고 주변 풍경을 둘러봤다. 사원을 사방으로 둘러싼 4개의 탑들을 둘러보는 것으로도 꽤 즐겁다. 붉은색, 흰색, 녹색, 검은색으로 이뤄진 탑들은 대체로 구성이 비슷한데 각각 법륜(法轮), 길상(吉祥), 여래(如来), 열반(涅磐)을 상징한다. 탑 중간 부분에 매서운 두 눈동자가 노려보고 있어 흥미롭다. 마치 세상만사를 다 꿰뚫고 있다는 듯 사방을 바라보는 모습이 마치 '죄짓고 살지마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 같다.

뾰쭉하게 솟은 모양도 독특하지만 탑 속에는 '달라이 라마(达赖 喇嘛)'의 초상화를 두고 예를 올리기도 한다. 티베트 어디를 가도 공개적으로 '달라이 라마'의 초상화가 걸려 있지는 않고 대신에 사원 안이나 이렇게 탑 안에 모셔져 있는 정도이니 적절한 타협이라 느껴진다. 연꽃 문양의 조명 등이 유리 속에 갇혀 있는 듯한 불상들을 은근하게 비추고 있다.

  
▲ 쌈예 사원의 탑 내부 달라이라마 사진과 인민폐 1각, 그리고 연꽃 모양의 향불
ⓒ 최종명
쌈예

'달라이 라마' 초상화 주변에는 중국 인민폐가 많다. 중국 돈은 1위엔 아래 10분의 1의 가치인 쟈오(角)라는 단위가 있는데 1980년대에 발행된 1쟈오(壹角) 종이돈이 유리와 바닥에 군데군데 많이 보인다. 종이돈마다 소수민족의 얼굴 상이 있는 것을 알고 있었고, 2쟈오에는 조선족 얼굴이 새겨져 있기도 하다. 그래서 1쟈오에 장족 얼굴이 있겠구나 하고 자세히 보니 아니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5위엔에 장족 얼굴이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5위엔이란 돈이 꽤 큰돈이니 순례자들은 겨우 1쟈오 정도로 성의 표시를 하는 것이다.

탑 내에는 연료로 사용하는 야크 똥이 한 무더기 쌓여 있기도 하고 독특한 문양의 기와도 놓여 있다. 장족 라마불교 신도들이 마냥 돌리는 마니통(转经桶)이 사방을 둘러 걸려 있다.

사원 주변은 한적하지만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임없다. 티베트 불교의 발원지라 부를 만큼 성지이기 때문이다. 쌈예 사원을 거쳐 4개의 탑을 차례로 순례하는 사람들의 발길을 따라갔다. 느릿느릿 마니통을 돌리면서 순례의 발길은 참 조용하다. 라싸 시내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오체투지를 하는데, 이곳에는 그런 사람의 모습이 거의 없다. 탑 주위에 있는 양, 소, 야크 등도 겨우 돋은 푸른 풀을 뜯어 먹으려고 움직이지만 여느 다른 곳에 비하면 아주 느릿하다. 사람이 다가가도 거의 본체만체한다.

  
▲ 홍탑과 소 쌈예 사원 주변에 4개의 4색 탑이 솟아 있고 그 주변을 소나 양, 야크들이 거닐고 있다
ⓒ 최종명
쌈예

사원 곳곳을 둘러보고 오니 함께 오지 못했던 수신이가 찾아왔다. 정말 기적처럼 그 먼 길을 혼자서 꿋꿋이 찾아온 것이다. 1시간을 착각한 후 다음 버스를 타고 왔는데 우리처럼 알롱창포 강을 건너지 않고 왔다.

사실은 이곳은 라싸에서 허가서를 받아야 오는 곳이다. 즉, 버스에서 검문이 있는데 그걸 피하려고 강을 건너온 것이었다. 수신이는 현지인인 양 연기를 한 후에 무사히 이곳까지 온 것이다. 나무젓가락을 비녀로 머리를 묶고 나타난 모습을 보니 너무 반갑다.

저녁 무렵 티베트 석청을 따러 온 여장부 리아씨가 중국 남자와 숙소 앞에 서서 나를 급히 부른다. 리아씨는 중국어가 서투니 대신 대화를 해보라는 것이다. 알고 보니 우리 일행 모두를 저녁 식사에 초대한다는 것이다. 이곳 정부의 건설공사를 총괄하는 따(达) 선생은 갑자기 정부 건물로 들어선 리아씨가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주변 지역의 관광을 시켜준 것이다. 당찬 리아씨가 한동안 사라졌다가 소위 물주를 데리고 온 셈이었다.

  
쌈예 사원 입구 바로 앞 숙소
ⓒ 최종명
쌈예

그래서 우리 모두 따 선생이 초대한 저녁을 먹었다. 술도 마시고 푸짐한 음식을 배불리 먹었다. 따 선생은 다시 노래방에서 놀자고 했다. 노총각 따 선생은 아주 점잖으면서도 농담을 아주 잘하는 사람인데다가 스스로 류더화(刘德华)를 닮았다고 할 정도로 잘 생겼다.

게다가, 나랑 친해지려고 많이 노력하더니 나를 자신의 친구인 씨장대학(西藏大学)의 교수와 내가 닮았다고 한 열 번을 이야기했다. 문제는 그가 리아씨가 마음에 쏙 들었다는 느낌을 강하게 풍기는 것이다. 우리 일행은 모두 농담으로 잘 해보라고 했건만 리아씨는 "아냐 이건 아녀"라며 우리의 정겨운 혼담(?)을 한사코 거부했다. 장족 현지인들이 부르는 노랫가락을 들으며 숙소로 돌아왔다.

다음날 따 선생이 다시 왔다. 점심을 대접하겠다고 한다. 우리는 라싸로 돌아가는 버스를 예약하고 파리들이 잔뜩 붙는 식당으로 갔다. 그렇지만 음식 맛만큼은 정말 훌륭했다. 장족들이 주식처럼 먹는 음식을 준비해 준 것은 정말 여행자들을 위한 배려가 아닐 수 없다.

장족들이 즐겨 마시는 나이차(奶茶)도 마셨고 감자 맛이 정말 좋은 '샹짜이(香寨)'라는 이름의 카레 밥도 먹었다. 헤어지기 서운해 서로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다음에 티베트에 오면 꼭 다시 연락하라는 따 선생은 정말 마음이 따뜻했다.

  
▲ 쌈예에서 만난 따 선생 헤어지기 전 장족 음식으로 점심을 함께 먹었다
ⓒ 최종명
쌈예

쌈예에서 짜낭(扎囊)을 거쳐 라싸로 돌아가는 길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버스는 단순한 시내버스가 아니라 순례자의 버스라 할 정도로 여러 유명한 사원들을 거쳐 간다. 우리는 설마 돌아가는 길에도 검문이 있을까 두려웠지만 마음만은 푸른 하늘 덕분에 상큼했다.

알롱창포 강을 건너는 다리가 있는 체탕(泽当)을 지나 일명 자씨츠르(扎西次日)라 불리는 산 중턱, 절벽에 우뚝 솟아있는 윰브라캉(雍布拉康) 사원에 도착했다. 버스는 승객들이 절벽에서 바라보는 갖가지 절경과 사원의 이색적인 모습을 다 차분히 볼 수 있도록 기다려준다.

  
▲ 윰브라캉 기원전 절벽 위에 세운 궁전이었다가 티베트 사원으로 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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윰브라캉

해발 3700미터 지점의 윰브라캉 사원은 기원전 2세기경 티베트 왕조 최초의 왕인 냐티첸뽀(聂赤赞普)의 궁전으로 알려졌다. 그는 천신의 아들(天神之子)이라 불리며 신화를 지닌 역사 인물이기도 하다. 정말 티베트의 역사의 발원지에 온 것이다.

  
기원전 궁전이던 것이 지금은 사원으로 변한, 절벽 위에 세원진 윰브라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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윰브라캉

윰브는 어미 사슴(母鹿)이라는 뜻이고 라는 뒷다리(后腿), 캉은 신전(神殿)을 뜻한다. '어미 사슴 뒷다리처럼 생긴 궁전'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33대 왕인 쏭첸깐뽀는 이곳을 사원으로 개조했고 당나라 문성공주와 함께 이곳에서 여름 철을 보냈다고 전해진다.

가파른 절벽 위에 망루(碉楼)와 전당(殿堂)와 승방(僧房)으로 구성된 이 사원은 정말 파란 하늘과 어울려 환상적인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확 트인 사방을 보노라니 가슴이 다 뚫린다. 절벽 아래에는 논인지 밭인지 모를 농토가 잘 정리돼 있다.

다섯 개의 마니통 옆에 길쭉한 항아리처럼 생긴 화로 속에는 마른 나무장작이 하염없이 타면서 연기를 뿜고 있다. 장족 할아버지 할머니가 두 손을 꼭 잡고 올라왔다가 내려가는 모습이 너무 정겹다.

말과 낙타들은 손님을 기다리는데 날씨가 흐리고 비가 오락가락하니 영 낭패다. 공예품을 파는 마차의 파란색 파라솔이 하늘과 어울려 멋진 장면을 연출하고 있기도 하다. 사람들이 하나 둘 다 내려오니 다시 버스는 출발이다.

  
윰브라캉 사원의 마니통 옆을 지나 내려가고 있는 장족 할아버지와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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윰브라캉

오후 1시에 쌈예를 출발한 버스는 어느덧 저녁 7시가 다 되어 라싸 시내로 들어왔다. 1박 2일 진정 티베트다운 곳으로 순례의 길을 다녀온 느낌이다. 복잡한 라싸로 돌아오니 더 그립다.

이제 내일이면 라싸를 떠난다. 쌈예의 7인들과도 헤어진다. 며칠 만에 정이 흠뻑 들었다. 새벽까지 여행의 즐거움을 나누며 술잔을 기울였다. 공교롭게도 7명 모두 혼자 떠난 여행, 그리고 라싸에서 만난 인연이었다.

다음날에도 비가 왔다. 새벽에 일어나 다시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가고 비행기를 타고 청두로 다시 나왔다. 비행기는 4시간이나 연착해 지루했지만 쌈예의 기억과 티베트에서의 1주일을 곱씹었다.

Posted by 최종명작가 중국문화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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