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석바위시장 역 바로 옆에 위치한 '여행인문학 도서관, 길 위의 꿈'의 인문학 프로젝트인 '다생다여(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여행하자)' 강의를 진행했습니다. "13억의 나라, 중국" 주제로 6월21일 중국문화여행-티베트&실크로드를 2시간 동안 진행했습니다. 


6월14일 중국발품취재와 민란발품취재 강의 자료 보기


강의 PPT를 슬라이드쇼로 여니 참고하세요~


사진이 많아서 티베트와 실크로드를 나누어 올립니다.


1. 티베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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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실크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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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석바위시장 역 바로 옆에 위치한 '여행인문학 도서관, 길 위의 꿈'의 인문학 프로젝트인 '다생다여(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여행하자)' 강의를 진행했습니다. "13억의 나라, 중국" 주제로 6월14일 중국발품취재와 민란발품취재를 중심으로 2시간 동안 진행했습니다. (6월21일 중국문화여행-티베트&실크로드도 이어 올립니다.)


6월21일 중국문화여행-티베트&실크로드 보기


강의 PPT를 슬라이드쇼로 여니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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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송도에 위치한 박문여고 학생과 2시간 동안 <숨겨진 중국문화의 비밀>이란 주제로 강의를 했습니다. 1,2,3 학년 학생들 50여명이 모여 뜨거운 중국문화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었습니다. 고등학생에게 중국문화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이번에 두 번째인데 나름대로 보람을 느낍니다. 중국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입장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하길 기원해봅니다. 2017년 4월 28일의 강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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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마용의 주인

 

1978년 프랑스 시라크 대통령의 방문을 시작으로 1981 8월 카터, 1984 4월 레이건, 1985 9월 닉슨, 1998 6월 클린턴 미국 대통령도 달려갔다. 2004 10월 러시아 푸틴 대통령, 2007 11월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 2013년 한국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해 각국 정상이 늘 찾던 곳, 바로 시안의 병마용(马俑)이다.

 

중국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유물이다. 병마용을 방문한 사람이라면 1호 갱에 도열 된 군단의 웅장한 모습에 놀란다. ‘세계 8대 기적이라는 칭송에 손뼉까지 칠 정도다. 문화대혁명 막바지 1974 3, 우연히 세상에 출현한 병마용은 중앙집권적 통일국가를 지향하는 거대한 중국에 딱 어울리는 유산이다. ‘진시황 병마용박물관은 공식 명칭이다.

 

이 박물관 이름에 감히 진시황을 떼어내고 싶은 사람이 있다. 80세인데도 끊임없이 병마용을 연구하고 있는 천징위안(陈景元) 씨다. 베이징에서 중국어를 공부하고 있던 2005 12월 무렵, ‘병마용과 진시황은 무관하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처음 그를 만났다. 그의 주장은 논리적, 학술적이었고 게다가 집요했다. 병마용 모습이 궁금했던 나는 이듬해 5월 직접 시안을 찾았다.

 

그의 주장은 대체로 명쾌하다. 진시황릉과 병마용은 거리가 너무 멀다는 것이다. 대략 2km가 넘는 거리에 위치하는 것부터 고대 건축방식에 어긋난다. 진시황은 3백 장() 이내에 황릉을 조성하라는 명령을 내렸다는 기록이 있다. 아무리 넓어도 700m를 넘지 않는다.

 

전국을 통일한 역량을 지닌 나라답게 진나라는 군복 색깔이 모두 흑색에 가까웠다. 병마용은 공기와 접촉한 후 40년이 지났어도 오색찬란하다. 도량형과 문자, 화폐 등을 표준화하고 전국을 통일한 진나라는 도로도 그 길이가 일치했다. 당연히 도로에 맞게 마차를 운용했다. 병마용에서 출토된 마차들은 크기도 서로 다르다.

 

병마용의 상투는 모두 오른쪽으로 약간 틀어져 있는데 초나라 풍습이다. 더구나 병마용이 서 있는 방향은 모두 초나라를 향하고 있다. 천 씨는 이를 근거로 병마용의 주인이 진시황이 아닌 초나라와 관련된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줄곧 진나라 소양왕의 어머니 선태후(宣太后)의 부장 묘라고 설파한다. 진시황의 고조모다.


▲ 시안의 병마용 1호 갱


 

2015 11 30. 베이징TV와 둥팡TV는 동시에 드라마 <미월전(芈月传)>을 처음 방영했다. 2016 1 9일 종영 때까지 두 TV는 시청률 1, 2위를 독점하고 서로 다툴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전국 50개 도시를 대상으로 조사하는 시청 점유율이 평균 7%를 넘겼는데 채널이 엄청나게 많은 중국에서 폭발적인 대기록이다.

 

초나라 공주 미월이 진나라로 건너가 우여곡절 끝에 태후가 되기까지의 인생역정을 펼치는 내용이다. 얼마 전 우리나라 방송 채널도 수입해 방영했다. 역사드라마를 깔끔하게 잘 만드는 중국답게 구성과 품질이 꽤 기대 이상이다. 천 씨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해 진시황과 병마용이 무관하다는 글을 10년 전부터 써왔고 문화여행 때마다 강의하며 졸저에도 담았기에 덩달아 기분이 좋다.

 

()는 초나라 왕족 특유의 성()이다. 미월이 곧 진선태후다. 사마천 <사기>에도 아들 대신 섭정을 했다는 기록이 있는 실존 인물이다. 진시황에 버금가는 위대한 업적을 남기기도 했다. 출토된 병마용에는 독특한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자 모양과 비슷해 그 동안 모두 한 글자로 생각했지만 천 씨는 병마용의 주인의 이름인 미월, 두 글자로 나누어서 볼 것을 밝히고 있다. 얼핏 보면 비()와 미()가 비슷해 생긴 오해라는 것이다.

 

드라마가 엄청난 인기를 끌자 병마용 주인을 둘러싼 논쟁이 더욱 가열되고 있다. 제작진과 사전교감이 전혀 없던 천 씨는 진상을 밝힐 하늘이 내려준 기회라고 기뻐하고 있다. 병마용의 진상을 대중 앞에 드러내려는 평생의 업적이 평가 받을 날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병마용이 발견된 시점은 문화대혁명 마지막 해였다. 정권을 농락하던 4인방은 중앙집권적 카리스마를 유지하고자 병마용은 곧 진시황이라는 선입견으로 고고학계와 언론계에 명령했다. 천 씨의 주장이 진실이라면 지금껏 진시황 병마용박물관을 찾은 수많은 사람에게 역사 왜곡이라는 선물을 안겨주고 있었다. 박물관 입구에 높이 솟은 진시황 조각상을 미월의 늠름한 모습으로 대체될 날이 올 것인가?

 

역사에 대한 바른 평가를 공유할 것인가, 아니면 왜곡으로 점철된 역사를 후세에게 가르칠 것인가? 병마용의 진실이 밝혀지는 것은 중국의 역사가 세계에서 반듯하게 제자리를 지키는 일이 될 것이다. 그만큼 병마용은 중국을 상징한다.

 

역사교과서 문제로 시끄러운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치권력을 쥐고 있다고 역사를 되돌려 볼 수 있다고 착각한다면 근시안일 뿐이다. 문화대혁명 당시 문화와 이데올로기 부문 총 책임자이던 장칭()이 바로 왜곡 명령의 당사자였다. 그녀는 체포, 구금, 재판 후 자살로 일생을 마쳤다.

 

최종명, 작가/ 13억 인과의 대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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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타고 텐진에서 인천까지, 약 28시간 걸려 한국 왔습니다.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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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인천, 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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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 연휴 기간 인천 송도에 있는 흥륜사를 찾았습니다. 늦은오후 노을이 지고 있고 어스름이 내리는데 사원의 분위기는 매우 특이한 느낌이 듭니다. 사원 앞에 앉은 좌불은 한몸으로 산을 향해, 또 바다를 향해 있습니다. 멀리 송도신도시에 건설 중인 건물 모습도 보입니다.

단아한 대웅전 모습도 보이고 뒷쪽 산능선에 아기자기한 모양의 불상들이 있습니다. 간혹 중국공예품 가게에서 보던 모양이 비슷해서 놀랐는데, 동자승 얼굴을 한 녀석들이 아주 귀엽습니다. 건물 처마와 풍경 모습이 그림처럼 자리잡고 있기도 합니다. 아들과 조카가 함께 따라 왔는데 이제 어느덧 의젓한 모습입니다.

흥륜사를 내려오는 길에 가로등 아래 긴 그림자는 아들과 어깨동무로 찍은 것인데 이제 훌쩍 커버려 누가누구인지도 알 수 없습니다. 자동차 조명에 갑자기 확 켜지자 재미난 그림자고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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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륜사에서 바라본 좌불 너머 송도신도시의 모습이 보입니다. 이렇듯 신도시와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위치이니 아주 명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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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륜사에서 바라본 인천대교 모습입니다. 붉은 노을이 구름을 벗어나 멋지게 출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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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륜사 대웅전입니다. 아담하고 단아한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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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륜사에서 아들입니다. 바다와 대교를 배경으로 하니 멋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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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륜사에서 대웅전 처마 아래에 걸린 풍경 소리가 그리 크지는 않지만 정감이 있습니다. 나뭇가지와 멀린 도시의 배경이 잘 어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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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륜사 대웅전의 지붕인데 아래에 이어진 와당이 부드러운 동선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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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륜사에서 조카가 향 하나를 들고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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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륜사에 있는 동자승 인형. 아주 조그마하지만 귀엽고도 의젓해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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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륜사에 있는 동자승 인형들. 불경을 읽으며 앉은 모습입니다. 사실 아주 작은 인형들이라 사람 눈에 잘 보이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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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륜사 대중전에 있는 용문양입니다. 여의주를 물고 있는 모습이 단청과 잘 어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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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륜사 동자승 인형들입니다. 불경만 읽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누워서 여유를 부리기도 하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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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륜사에서 본 불상인데 하얀 옷을 입고 있는 모습에 안에는 동상인데 드물게 보는 형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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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륜사에서 한 구석에 있는 조각상입니다. 꽤 이해하기 힘든 인물입니다. 불교적인 느낌이 아니라 다소 도교적인 분위기를 풍기는데 사실 잘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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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륜사에 밤이 아주 깊었습니다. 송도신도시 건물들이 불을 켰습니다. 신도시에 건물들이 다 들어서면 아마 장관을 이룰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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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륜사 대웅전에도 밤이 깊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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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륜사에서 바라본 인천대교의 야경입니다. 앞으로 바다와 대교의 야경이 멋진 좋은 관람 장소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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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륜사에서 내려오는 길에 가로등 불빛에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아들과 사진을 찍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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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륜사 주차장에서 갑자기 자동차 조명이 켜지면서 셔터를 동시에 눌렀더니 이 모양의 사진이 나왔습니다. 재미있습니다.

흥륜사는 고려시대에 건축된 사원으로 청량사라 불리다가 대부분 파손됐던 것을 최근에 다시 세우면서 그 이름이 바뀐 것이라 합니다. 600여 년 전 인천 앞바다를 바라보며 세운 사원이었던 것인데 지금은 신도시와 대교가 바다 위에 세워졌으니 세월일지, 자본일지 야속해보이지만 그래도 멋진 야경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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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중국 차이나타운 거리에서 파는 중국 술

차이나타운 하면 자장면이 떠오를 것이다. 물론 한국식 중화요리 집에는 자장면, 짬뽕을 비롯해 양장피, 팔보채, 탕수육, 고추잡채, 유산슬, 오향장육 등이 수두룩 떠올라 군침이 돌 지도 모른다. 중국 현지에 가면 우리나라 중국집에서 파는 이와 같은 요리들이 대부분 요리돼 나온다. 다만, 그 맛이 다르고 이름도 낯설어 서로 다른 것으로 생각될 뿐이다. 인천 중국에 있는 차이나타운에도 각양각색의 중국 요리가 많은 곳이다.



차이나타운에 중국 전통복장을 한 인형이 동상처럼 서 있다. 최근에 차이나타운에 가보니 거리 곳곳에 수많은 중국집도 인상적이지만 왜 그렇게 중국 현지의 술들이 많은 지 이상할 정도다. 어떤 경로로 수입돼 들어오는 지, 소위 주세는 제대로 내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차이나타운 노점에서 파는 술이다. 우선, 왼편에 얼궈터우(二锅头)가 눈에 띤다. 우리가 이과두주라고 부르는 이 홍싱(红星) 브랜드를 달고 있다. 중국 길거리 가게에 가면 이 55도 술 무지하게 싸다. 그래서, 얼궈터우가 싼 브랜드로 생각하기 쉬운데 고급으로 양조되고 도자기 술병에 담긴 비싼 술도 많다.

그 옆으로는 중국에서 유명한 각종 맥주가 줄줄이 서 있다. 칭다오(青岛)맥주는 이미 세계적인 브랜드이니 다 알 것이다. 그 옆에 개인적으로 가장 입맛에 잘 맞는 하얼빈(哈尔滨)맥주가 있다. 칭다오맥주가 독일맥주 제조기술을 이어 받았다면 하얼빈맥주, 줄여서 하피(哈啤)라 부르는 이 맥주는 러시아맥주의 맥을 이었다. 각각 그들의 조차지, 점령지의 영향이다.

빙촨(冰川)맥주는 연변지역에서 많이 마시는 맥주이다. 역시 조선족들이 국내에 많이 들어와 있으니 차이나타운에 선을 보이고 있다. 쉬에화(雪花)맥주도 중국에서 아주 유명하고 전국적으로 유통되며 새롭게 부각되는 맥주브랜드이다. 중국 전역을 돌아다녀본 바로는 칭다오맥주는 없어도 쉬에화맥주는 시골 곳곳마다 다 눈에 띠는 맥주이니 유통능력 하나만큼은 최고라 할만하다. 맛도 훌륭하다.
 
라오췐(崂泉)맥주가 제일 오른쪽에 있다. 이 맥주는 칭다오맥주가 생산하는 또 다른 브랜드이다. 칭다오 외곽에 명산인 라오산이라고 있는데 그 지역의 물을 활용해 만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에서 몇몇 거대 맥주회사들이 지방의 작은 회사들을 합병하거나 합작하는 형태로 기술과 자본, 시장을 결합하는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칭다오 캔맥주이다. 나름대로 깔끔하고 산뜻한 디자인이다. 중국에는 일반 맥주도 가짜가 많아서 가게에서 맥주를 사서 마실 때 조금 비싸도 병맥주보다는 캔맥주를 사는 게 좋다. 병맥주가 2위엔 정도 하면 캔맥주는 5위엔 정도 하니 2배가 넘는다. 곳곳마다 가게마다 다 술값이 다르니 대충 잡은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중국어에는 수를 세는 양사가 세분화되고 굉장히 발달했는데, 병을 세는 단위를 핑(瓶)이라 하는데 비해 캔맥주는 팅(听)이라 한다.


이 술은 얼궈터우를 생산하는 회사의 또 다른 브랜드인 뉴란산(牛栏山)얼궈터우 술이다. 위의 홍싱보다 훨씬 부드럽고 품질도 좋다. 그만큼 조금 더 비싼 편이다. 이 얼궈터우는 베이징에서 주로 생산되는 술이니 혹시 베이징에 가서 얼궈터우를 마시게 된다면 이왕이면 이 뉴란산을 드시면 좋다.


왼편에 가오량쥬(高粱酒) 역시 뉴란산브랜드 술 중 하나이다. 이름이 다르지만 실제로 생산지도 베이징 순이취(顺义区)로 같다. 위 뉴란산얼궈터우가 56도인데 비해 다소 낮은 50도이다. 중국에서 바이쥬(白酒)를 마실 때 알코올 도수가 38도이거나 56도가 일반적이고 가장 대중적이다. 그밖의 도수가 되면 잘 마시지 않게 되는 경향이 있다.

중국은 수 천종의 흰술, 바이쥬(白酒)가 있다. 각 지역마다 몇 종류씩 있다고 보면 될 정도니 어쩌면 수 만 종이 있다고 해도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 또 동네마다 직접 제조해 브랜드 없이 파는 것까지 아주 많은 편이라 엄청나게 많다. 그래서 지방도시에 가서 술을 마시게 되면 정말 좋은 맛의 술도 자주 보게 된다.

왼편에 있는 술은 산둥 옌타이(烟台)의 구냥(古酿)이라고 한다. 이 술은 서울에서 한번 마셨는데 그런대로 마실만 했다. 비싼 술은 아니다. 그 옆에는 칭다오의 랑야타이(琅琊台)라는 술인데 한국사람들이 많이 거주해 있는 칭다오 쟈오난(胶南)과 관련된 술이름이니 아마 많은 사람들이 익숙할 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마셔 본 적은 없다. 오른쪽의 멋진 디자인은 대만 술이다. 역시 마셔보지 못했다.

이 하얀 도자기에 중국 옛날 미인들을 새겨넣은 술병에 담긴 술은 톈진(天津)의 진화(金花)라고 한다. 역시 마셔보지 못했다. 톈진에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으니 수입된 듯하다.


이 독특하게 생긴 술은 커우베이(口杯)이다. 일종의 잔술 또는 컵술이라고 하는데 유리컵 안에 술을 넣고 두껑을 막아서 판다. 중국 현지 가게나 선술집 등에는 반드시 이런 형태의 커우베이를 판다. 양이 우선 적으니 부담이 덜하다. 두껑을 따기가 조금 어렵고 잘못하면 두껑이 날카롭기 때문에 손을 벨 수도 있지만 당연히 가격이 싸다. 이날 차이나타운에서는 우리 돈으로 500원에 팔았다.

베이징 가면 조선족 친구들이 꼭 이걸 하나씩 따서 마시고는 하는데, 각자 알아서 한 컵씩 해결하면 되니 편하다. 때로 기분 좋으면 한 컵을 간베이(干杯)하자고 하는데, 그 양이 130mL 정도되니 생각보다 원샷이 쉽지 않다. 요즘 우리나라에도 양고기고치집이 많이 생겨서 그런지 이 커우베이가 많이 보인다.


차이나타운에는 중국 차도 많이 판다. 중국에서는 보통 차를 살 때 직접 마셔보고 주인이랑 담화도 즐긴 후 사는데 이렇게 패키지로 팔기도 한다. 겉봉지가 꽤 산뜻해보인다고 그 속까지 보장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아무리 봐도 이런 봉투는 중국 차집이나 차거리에 가면 엄청나게 많다. 진공포장기만 있으면 속에 무얼 넣었는지 확인해 줄 필요가 없으니 가격과 봉투에 현혹돼 사는 것은 후회하는 지름길이다.


위에빙(月饼)도 판다. 8가지 견과류 등과 고구마를 넣고 만들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줄을 서서 하나씩 사서 먹는데 우리 입맛에 맞게 꽤 개선된 듯해 보였다. 하나에 천원씩.


일명 공갈빵이라고 하는 것이다. 속이 비어 있고 아무 것도 들어있지 않다. 이것도 아마 천원이었던 듯.


인천 차이나타운, 아이들 손을 잡고 엄마 아빠들이 많이 찾았다. 주말이 되면 공예품도 많고 중국집도 많고 사람들로 북적인다. 거리에 중국 술들이 많은 것도 놀랐다. 게다가 의외로 많은 종류의 중국 백주와 맥주가 버젓이 팔린다는 것에도 신기한 느낌이었다.

그나저나 양뤄촬(羊肉串) 구운 안주에 고량주 커우베이 한잔 하면 좋겠다. 이번주에는 어떻게 한번 중국 술에 흔쾌히 오케이하는 술친구라도 불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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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lelocle.tistory.com BlogIcon 악랄가츠 2009.05.06 07: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얼빈에서 대학을 다녀서~~ 하얼빈 로컬맥주! 하피를 즐겨 마셨습니다 ㅎㅎㅎ
    포스팅보니깐 하피가 유독 그립네요 ㅜㅜ~

    • Favicon of http://www.youyue.co.kr BlogIcon 여우위에 2009.05.06 11:10  댓글주소  수정/삭제

      하얼빈에서 공부하셨군요...정말 좋은 동네에서...
      저도 하얼빈 4번 가봤는데, 중앙대가의 그 러샨 분위기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_^ 역시 하피를 아시는군요!

  2. Favicon of http://333hun.tistory.com BlogIcon 세미예 2009.05.06 07: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많이 조사하셨네요. 수고하셨습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3. candycat 2009.05.06 12: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중국집에서 술을 자주 먹는 편인데 이상하게 소주만 마시게 되더라고요 ㅋ~
    한번 중국술도 시켜서 먹어봐야겠네요 ㅎㅎ

  4. Favicon of http://hitme.kr BlogIcon 최면 2009.05.06 13: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중국에 있을 땐.. 천진에서는 주로 雪花나 青岛를 마셨는데.. 상해에 가니 三得利가 많더라고요.. 저희는 그걸 순돌이라고 불렀죠.. 싼더리 ㅎㅎ

    口杯는 주로 여행갈 때 기차 안에서 마셨어요.. 저는 침대칸을 한번도 타보지 못했네요...

    천진에서 투먼까지 24시간 정도 가는 기차도 그냥 硬座로 왕복 48시간 왔다갔다하고..

    북경에서 항주까지 无座로 가봤고요 ㅠ.ㅜ 아흑;; 죽을 뻔 했습니다 ㅠ.ㅜ 그래도 외국인이라고 나중에 여대생이 잠깐 잠깐씩 자리 양보해줘서 제가 아직 살아있네요 ㅎㅎ

    간만에 땡기는 술들이 많네요 ㅎㅎ

  5. 이성원 2009.05.06 14: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갑자기 광화문의 오향장육(족) + 송화단이 그립습니다...
    거기에다가 무명의 빠이주가 정말 그립습니다...

  6. Favicon of http://rubygarden.tistory.com BlogIcon 루비 2009.05.06 15: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중국술들이 많이 팔리고 있군요..
    전 술맛은 못 보았구요.
    위에빙과 공갈빵은 사 먹어 보았어요.
    위에빙은 입맛에 안 맞았던 기억이 있구요.
    공갈빵은 아주 맛나서 더 먹고 싶더군요.

  7. Favicon of http://www.zoominsky.com BlogIcon 짠이아빠 2009.05.07 08: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근데 형님.. 저 술들은 진짜겠죠.. ㅜ.ㅜ

  8. Favicon of http://ragpicker.egloos.com BlogIcon rainlife 2009.05.25 07: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캬~먹어본 중국술이 더러 보여서 반갑네요..^^*

  9. 사진좀 2010.12.08 13: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진좀 퍼갈게요^^ 유용한 정보 감사합니다.

  10. 김이박 2019.10.16 00: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관리자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댓글입니다




인천차이나타운에 새겨진 '중화'가 불편하다  

지난 토요일(4월11일) 오후 국철 인천역. 10년 만에 다시 찾았더니 감개가 무량하다. 길 건너 맞은 편에 커다란 패루(牌楼)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저 평범한 동네 입구이던 이곳이 마치 베이징(北京) 국자감 패방(패루와 패방을 같은 뜻)을 옮겨 놓은 듯 웅장한 자태로 나타날 줄이야.

패방이란 마을어귀에 두어 그 지역의 고유한 지명이나 사당이나 관청의 위엄을 표시하는데 그 크기와 구조에 따라 격이 달라진다. 가운데 '중화제(中華街)'가 딱 새겨 있으니 생경하다. '중화'라는 말은 중국 한족의 골간이며 세계의 중심이라는 의지가 덧붙은 지극히 가치지향적인 뜻이 담겼기 때문이다. '중국 화교'라는 의미로 새겼다고 주장할 수 있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이미 '화교'라는 말에 '중국 한족과 혈통이 이어져 있는 외국 거주민'이라는 뜻이 완벽하게 내포돼 있다.

중국 한족의 본류를 화하족(華夏族)이라 하며 '화하'는 치우천황과의 전투에서 승리했다는 '염황(炎黄)동맹'에서 유래한다. 그런데, 점차 이 '화'의 의미가 세계의 중심, 더 정확하게 말해 원래 한족 핵심부족을 중심으로 주변의 다양한 부족, 족속, 민족(오랑캐와 소수민족), 지방정권(고구려 등), 외부 세계까지 복속시켜 왔으며, 그렇게 하겠다는 잠재적, 정치적 목적이 담긴 것이다.

그래서, '중화'라는 말을 쓰는 것은 그다지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중화민족', '중화권', '중화TV' 등으로 무분별하게 쓰지 않는 것이 좋다. '중화제'라고 쓰는 것도, 중국을 '중화'라 하는 것이 대한민국을 단군조선이라 부르는 것으로 연결해보면 중국 땅 어딘가에 '단군길'이라고 써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니 불편하다. 그렇다고 이 패루를 철거하거나 이름을 바꾸자고 주장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저 산보하는 마음으로 차이나타운 곳곳을 살펴보고자 한다.

인천 상공인들이 차이나타운을 조성했다고 하는데 이 '제1 패루'에 뭐 특별한 고려가 있을 까닭이 있겠는가. 알고 보니 자매도시인 중국 웨이하이(威海) 시가 기증했던 목(木)패루가 기울어져 석(石)패루로 다시 기증 받아 세운 것이라 한다.  

이 '중화제(中華街)' 패루는 돈을 좀 들인 듯하다. 4개의 기둥과 3곳의 문, 7개의 기와누각이 어우러진 모습은 중국에서도 국보급 패방에 적용하는 형태로 나름대로 멋지게 꾸미려고 한 마음이리라.

자세히 두루 훑어보자니 소재만 돌인 것이 다를 뿐 국자감 류리패방(琉璃牌坊)과 닮았다. 위쪽으로 누각이 7개인 형태는 중국에서도 흔하지 않다.

패루 문 아래를 지나니 그야말로 시뻘건 간판에 낯익은 메뉴들이 눈에 들어온다. 중화요리 일색인 가운데 군데군데 쟈오즈(饺子)나 훠궈(火锅)를 파는 식당도 보인다.

언덕길을 따라 오르니 길 옆으로 각종 공예품도 널려 있고 홍등 사이로 한자와 한글이 뒤죽박죽 섞인 거리 모습이 우리가 흔히 보던 그런 모습은 아니다. 몇 발자국마다 가로등이 하나씩 설치돼 있는데 붉은 바탕에 용이 휘감아 오르는 모습이니 바로 롱시주(龙戏珠)를 형상화하려 한 듯하다.

'두 마리 용'이 등장하면 얼롱시주(二龙戏珠)라 해 하늘을 찌를 만한 기세로 황제나 그에 버금가는 성인인 공자에게 주로 사용하는 형상이다. 이곳에 와서 가로등이 됐으니 용은 어디 가고 이무기처럼 보이는 게 아쉽다. 길가에 배치된 화분 문양도 이 두 마리 용을 새겼는데 용도 그 격에 맞을 때 더 적격인데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중국 하면 곧 용이 떠오른다고 다 곳곳에 용만 새겨놓으니 거리가 다소 개성이 없어 보인다.

자장면? 중국에도 있다!   

차이나타운을 따라 언덕을 오르면 인천자유공원이다. 오랜만에 공원을 올라가보자. 공원 계단 옆에 정말 재미난 자장면이 보였다. 꽃 접시에 면발과 자장이 섞였으며 콩과 옥수수, 오이채와 계란이 얹혀 있고 젓가락이 살랑 담겼다. 전형적인 우리나라 토양의 자장면이 아닐 수 없다.

중국에도 자장면이 있는데 그 맛과 모양, 레시피가 사뭇 다른 요리로 알고 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또 크게 다르지도 않다. 면과 자장 그리고 야채로 혼합한다는데 특별히 다를 것이야 없다.

중국의 자장면은 사실 베이징사람들의 고유한 음식으로 데치거나 삶은 면에다 각종 야채를 섞어먹는다고 해서 데친다는 뜻으로 '작(炸, zha)'을 쓰거나 섞는다는 뜻으로 '잡(杂, za)'이란 말을 붙인다. 그런데 이 두 말의 발음이 다 '자'로 비슷하다.

물론 베이징에서만 먹는 것은 아니고 여러 지방에 독특한 맛의 자장면이 있기도 한데 중국인들이 우리나라로 와서 나름대로 한국적 입맛에 맞는 '한국식 자장면'을 개발한 것일 터이다. 자장면 접시 뒤로 우리 기와 벽과 우리 산천에 흐드러지게 피는 개나리가 인상적이라 잠시 앉았다.

인천차이나타운에서 우리말과 중국어를 생각하며  

벤치에 앉으니 간판이름들이 더 선명하게 들어온다. 연경(燕京), 만다복(萬多福), 청관(靑館), 흥화춘(興和春), 자금성(紫金城), 북경장(北京莊), 중국성(中國城) 등 한번씩 읽어본다. 그리고 이어 중국어로도 읽었다. 옌징, 완둬푸, 칭관, 싱허춘, 즈진청, 베이징좡, 중궈청. 엇비슷하지 않은가.

서로 다른 말과 글을 쓰고 있던 춘추전국시대를 통일한 진시황은 글자를 통일한다. 지금의 한자의 고어(古語) 형태였으리라. 전국시대 7개국은 모두 서로 다른 문자를 가지고 있었는데 나라를 통일했으니 당연히 도량형, 마차나 도로 등과 함께 문자도 하나로 통일했으리라. 진(秦)이 쓰던 소전(小篆)을 '수동문(书同文)', 즉 통일문자의 기초로 삼았다. 복잡하기 그지 없는 대전(大篆)을 간략하게 만든 것으로 지금의 전서와 비슷하다. 하지만, 전서가 여전히 복잡해 다시 간단하게 바꾼 것이 지금의 예서인 진예(秦隶)라고 한다.

중앙집권을 시작한 진한(秦汉)시대를 거치며 글자는 점차 통일돼 갔지만 아무리 황제라 해도 지방의 말까지 바꿀 수는 없었을 것이다. 고조선 이래 삼국시대, 고려를 거치면서 우리민족이 고유하게 소통하던 말이 있었으리라. 언제부턴가 기록과 전달을 위한 문자로 한자를 쓰면서 우리 민족은 기존의 말과 중국의 한자음 사이에서 치열한 언어적 다툼을 벌렸으리라.

조선 세종 조에 이르러 한자음과 달리 우리말을 제대로 표현하는 문자를 창제하게 되자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재미있는 상상을 해본다. 지금 '연경'과 '燕京' 사이에는 '연경'과 '옌징' 만큼이나 '다름'과 '같음'이 마구 혼란하다. 잠시 쉬는 틈에 말과 글, 우리말과 중국말을 생각해봤다. 

자유공원으로 오르는 계단 양 사이로 상형이 잘 어우러진 한자 도안도 있고 원래 새해 복을 기원하는 뜻으로 잉어와 연꽃이 등장하는 롄녠여우위(连年有余) 그림을 모방한 것도 있으며 용과 구슬의 룽주(龙珠) 등이 보인다. 빨간 바탕색의 가로등 룽주와 취푸(曲阜)의 공자사당에나 있을 법한 돌기둥 룽주가 함께 있으니 시야에 들어오는 용들이 참으로 중복이라는 느낌이 든다. 

자유공원 입구에도 패루 하나가 서 있다. 선린문(善隣門)이다. 누가 썼는지는 모르나 꽤나 복잡하게 썼다. 그러나 '선린'이라는 뜻이 '주변 사람이나 나라와 사이 좋게 지내자'는 뜻이니 나쁠 게 없다. 그런데, 이 패루 아래는 차이나타운이요 위로는 맥아더장군 동상이 있는 자유공원이니 중국과 미국 모두와 '선린'하자는 것일까. 아니면 둘 중 하나와 '선린'을 택일하자는 것일까. 사실은 이 동네이름이다. 

자유공원 곳곳에 개나리와 벚꽃이 화사하게 폈다. 아빠와 엄마 손잡고 아이들이 주말 오후를 만끽하고 있다. 요란한 꽹과리 소리가 들려 가보니 풍악에 맞춰 아주머니들이 민속춤은 추더니 이어 빠른 춤곡에 따라 외국인 무희들이 춤을 추기 시작한다.

인천 자유공원의 주말 오후 

인천시 중구 자원봉사센터가 주최한 '어울림 한마당'이다. 2009년은 '인천방문의 해'이면서 '80일간의 미래도시 이야기' 인천세계도시축전이 열린다. 인천 도심 전체가 세계축전 홍보물로 범람하고 있는데 이곳 무대에도 예외 없다.

공원 광장 주변에서는 윷놀이, 제기차기, 투호, 고리던지기, 떡메치기, 새끼꼬기 등 다채로운 문화체험을 즐기는 아이들, 정말 신났다. 손글씨쓰기, 종이방향제, 천연염색손수건, 타투문신, 점핑클레이와 같이 가족이 함께 즐기는 체험도 있고 노인들을 위한 교정, 발마사지, 반신욕, 지압, 수지침 등을 무료로 해주는 행사도 함께 진행 중이다. 

인절미 하나 시식하고 투호 던지는 아이들의 해맑은 장난을 보고 있는데 옆에서 비누방울이 둥실둥실 날아든다. 온통 솜사탕 내음과 오색찬란한 풍선들이 두둥실 떠다니기도 한다. 할아버지 한 분이 무대 위에 올라 구성진 노래솜씨를 뽐내고 다른 한 분은 자리에서 일어나 덩실덩실 어깨춤을 펼친다. 어깨자락과 손 사위를 따라 저 멀리 깨알처럼 맥아더 동상도 보인다.

인천차이나타운에 있는 한국식? 중국식? 풍물 

다시 선린문을 따라 차이나타운으로 되돌아왔다. 삼국지 벽화거리가 있다니 찾아갈 생각이다. 거리 곳곳에 지도가 있어 쉽게 이동할 수 있지만 발 가는 대로 쉬엄쉬엄 가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추억의 뽑기' 앞에서 꼬마가 아빠를 졸랐다. 천원을 내고 1부터 80까지 적힌 종이 위에 한 칸에 숫자 하나가 적힌 네 칸 막대가 다섯 개를 놓고 즉 '1/4의 확률'을 뽑으면 된다. 물론 꽝이어도 기본으로 하나 준다. 70~80년대 거리에서 자주 보던 이 뽑기가 '추억'을 되살리고 있다. 선물은 바로 탕화(糖画)라고 하는데, 끓인 설탕으로 거북선, 호랑이, 남대문 등 다양한 모양을 만드는 민속공예의 일종으로 중국 문화거리에서도 자주 보던 것이다. 어디서 어떻게 전래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바로 옆에도 '뽑기'가 있다. 소위 '달고나'라고 하는데 설탕에 소다를 넣어 끓이고 녹여 각종 모양을 새긴 후 굳으면 그것을 그대로 뽑아내는 것이니 이것도 뽑기라 할 수 있다. 지금 생각해보니 둘 다 '뽑기'였었나 하는 착각이 든다. 분명 '뽑기'에 대한 향수가 있긴 한데 정확한 출처와 이름을 생각하려니 헷갈린다.


화교들이 많이 살아서인가 중국어를 쓰는 사람들이 많다. 튀김꽈배기를 빚는 아가씨 둘이 반죽을 빚고 길게 꽈면서 뭐가 그리 즐거운지 연신 중국말을 쓴다. 들어보면 그냥 수다다. 바로 옆에서는 지나가던 아저씨가 주인에게 '셩이쩐머양(生意怎么样?)'하며 지나간다. '장사 잘 되냐'는 인사말이다.

이 집에는 밀가루반죽 속에 야채나 고구마 등을 넣어 깨를 입혀 큰 불통에 넣고 굽는 샤오빙(烧饼)을 판다. 깨(芝麻)가 묻었다고 '즈마샤오빙'이라고 부른다. 중국 황산(黄山) 시의 문화거리 라오제(老街)에서 먹어본 적이 있어서 반가웠다. 요즘 중국도 이런 방식으로 구워 파는 게 많지 않고 그저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문화거리에서 풍물에 얹어 파는 경우가 많은데 인천차이나타운에서 만났다. 

중국 아가씨(아마 유학생인 듯) 한 명이 식당 주인에게 '싼궈제짜이나리아(三国街在哪里啊?)'하고 묻는다. 삼국지 거리가 어디에 있냐는 것이다. 따라가면 되겠구나 하고 봤더니 중국 치파오(旗袍)을 입은 일행이 20여명은 넘어 보였다. 우르르 몰려가는 모양을 자세히 보니 한국 학생들이다. 인천중국어마을 실습을 나왔다고 한다. 아까 말한 아가씨는 인솔자로 원어민 교사였던 듯하다. 

드라마 같은 삼국지명장면 벽화 거리 

언덕길을 따라 벽화가 이어져있다. 밑에서 올라가니 소설삼국지 스토리의 뒷부분부터 시작이다. 삼국이 망하고 사마의의 후손이 세운 진(晋)으로 통일됐다는 삼국귀진(三国歸晋)이 맺음 장면으로 77번이다. 그리고, 촉이 멸망된 후 위나라 장수 등애(鄧艾)와 종회(鍾會)의 쟁투를 했다는 이사쟁공(二士爭功)이 76번이니 아마 1번은 도원결의(桃園結義)가 아닐까 싶다. 삼국지를 거꾸로 읽어도 재미있겠다 싶어 언덕을 거슬러 올라가본다.

조비가 후한의 황제를 폐하고 스스로 황제로 칭하는 조비폐제(曹丕廢帝), 손권의 브레인 노숙이 형주에서 관우와 담판 짓는 단도부회(單刀赴會), 삼국지 3대 대전 중 하나로 조조를 물리치는 오나라 장수 주유의 적벽대전(赤壁大戰), 장비 혼자 10만 대군을 상대했다는 장판교(長坂橋), 유비가 제갈량을 얻는 삼고초려(三顧草廬), 관우가 조조의 환대를 뒤로 하고 유비와 장비를 찾아 홀로 떠난다는 천리주단기(千里走單騎), 조조가 유비의 인물 됨됨이를 알아보려 영웅에 대해 묻는다는 자주논영웅(煮酒論英雄), 유비 관우 장비가 여포와 일진일퇴를 거듭한다는 호뢰관(虎牢關), 그리고 도원결의까지. 아니 그런데 도원결의가 2번이다. 아차 황건적의 난 황건기의(黃巾起義)도 있다. 

2004년에 개방했으니 꽤 시간이 흘렀다. '삼국지 벽화에 부쳐' 라는 벽화 거리에 대한 설명도 한글과 중국어, 영어로 차례로 적혀 있다. 이 프로젝트의 아트디렉터, 일러스트, 서예와 기획 및 시공에 누가 참여했는지도 기록돼 있다.

멋진 한 편의 드라마다. 이렇듯 멋진 삼국지 벽화를 중국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다. 다만, 소설삼국지만큼 정사삼국지가 제대로 알려지면 좋고 '거꾸로 읽는 삼국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는 지라 다시 떼어낼 수 없는 벽화 앞에서 한동안 머물렀다.

인천 중국어마을 문화체험 중인 학생들 

삼국지 벽화 옆에는 중국 칭다오 시에서 기증했다는 공자조각상 옆에 중국어마을에 참여한 학생들이 야외수업을 하고 있다. 초급 수준의 실력으로 열심히 중국어를 배우는 모습이 기특하다. 

공자 조각상을 휘돌아 내려가다가 다시 오른쪽 골목길인 '차이나타운3길'로 접어드니 학생들이 중국문화를 체험하고 있다. 보아하니 차이나타운을 돌며 교사들의 도움을 받아 중국어로 물건을 사기도 하고 삼국지벽화를 보면서 퀴즈도 풀고 그런 후에 소원마당이란 곳에서 아이들이 소원을 적은 헝겊을 묶고 있으며 민속놀이인 공죽(空竹)을 돌려보기도 한다.

줄을 가운데 넣어 양손으로 밀고 당겨 공죽을 회전시켜 가지고 노는 민속완구인데 처음 해보는 것이라 마음대로 잘 되지 않나 보다. 중국어도 잘 하면서 문화와 사회에 대해서도 폭 넓은 이해를 하는 전문가로 성장하길 빌어본다.

인천 한중문화원의 볼거리 

다시 인천역 방향으로 걸어가면 한중문화원이 있다. 3개 층에 전시관이 개방돼 있는데 한국과 중국 문화를 살펴볼 수 있게 꾸며져 있다. 아이들이 중국 옷이나 모자를 쓰고 사진을 찍을 수 있고 탁본을 뜨는 체험도 할 수 있다. 특히 중국 자매결연 도시가 보낸 선물들이 전시돼 있기도 하다. 공예품과 기념품이 골고루 있는데 처음 보는 낯선 내용도 있어 눈이 즐거웠다. 중국문화에 대해 많이 알지 못해도 하나씩 차분히 읽으며 눈요기를 해도 좋아 보였다. 

오랜만에 몇 시간 걸었더니 다리가 꽤 아프다. 사실 삼국지 벽화를 보고 나서 동인천역으로 갈까 다시 인천역으로 갈까 망설였다. 인천역으로 발길을 돌린 것은 10여 년 전 단골집이 문득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 10년만에 다시 찾은 단골 밴댕이 회집, 그냥 그대로네! 

차이나타운 한쪽 골목에는 밴댕이 회집이 나란히 있는 거리가 있다. 바로 이곳이 그리웠던 것이다. 90년대 말 인천에 근무하던 때 일주일에 한번은 꼭 들렀던 단골집이다. 차이나타운이 온통 많이 변했지만 희한하게도 그 옛날 그 단골집 모습 그대로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무려 10년도 더 지났고 한중문화교류 어쩌구 하면서 온통 마을을 뒤집어놨지만 일렬로 앉아서 밴댕이 한 접시에 소주를 마시던 분위기 그대로의 모습이다.

자유공원을 오르내리며 산보를 하던 할아버지들이 주머니 속 용돈만큼 꼭 그 정도의 가격으로 소주와 밴댕이를 먹을 수 있다. 10년 전 기억으로는 밴댕이 한 접시 3천원, 소주 한병 1천원. 친구랑 둘이서 소주 2병 마시면 딱 5천원이던 시절이 그리웠던 것일까. (지금은 한 접시 1만원과 한 병 3천원)

자리에 앉기도 전에 얇게 썰고 가득 담은 밴댕이 한 접시가 나왔다. 술은 알아서 마시면 된다. 소주 한잔을 따르고 있는데 할아버지 손님들이 주르륵 들어온다. 자리를 옮겨 주인 아주머니 칼질 하는 곳으로 바짝 붙어 앉았는데 금방 들어오신 한 할아버지가 대뜸 '젊은 친구, 어이 MBC기자신가? 사진 한 장 찍어주게' 하신다. '네!'

도대체 왜 뜬금없이 MBC기자? 모르겠다. 하여간 사진기자가 됐다. 나중에 '오마이뉴스 아세요?' 여쭈니 '당연 알지!'다. '황해도 해주가 고향인데 여든 살에 하나 모자라' 하시며 피난생활, 유신과 전두환 정권시절 등 이야기를 멈추지 않으신다. '한잔 받게' 하셔서 마셨고 한 잔 따라 드렸더니 '술 잘 배운 게 양반일세' 덕담이셨다. 과음하시더니 친구 분들에 이끌려 먼저 가셨다. '젊은 사람과 이렇게 마주 하니 기분 좋군. 자주 오게!' 하시며.

주인 아주머니 인상이 10년 전 그대로다. '10년 만에 왔습니다!' 했더니 회 한 움큼을 더 썰더니 접시 위에 얹어준다. 그래서 '소주 한병 더 주세요' 했더니 누군가 남기고 간 소주 반 병을 가르키며 '그건 공짜요' 한다. 

오후 내내 차이나타운 둘러보고 자유공원까지 휘젓고 나서는 10년 전 모습에서 하나도 바뀌지 않은 분위기와 회 맛 때문에 노을 없이 흐린 저녁 하늘이 점점 붉어지고 있다.


인천차이나타운의 이모저모! 이미지영상 Q! 





Posted by 최종명작가 중국문화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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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hitme.kr BlogIcon 최면 2009.04.15 10: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매우 흥미로운 내용이네요 ^^*

    잘 봤습니다. 확실히 中华街라는 말이 거슬리네요;; 다른 나라에 가도 차이나타운은 唐人街가 아니었던가요? 제가.. 뭐;; 여러 나라를 다녀본 것은 아니지만.. 中华보다는 唐人가 더 보편적일 듯 합니다;; 아쉽긴 하네요 ㅠ.ㅜ

    한자 발음의 경우도 여러가지 설이 있는데.. 중국어에 없는 받침 글자.. ㄱ,ㅁ,ㄹ의 경우는 원래 존재했다는 것이 유력하지요? 뿔각(角)도 광동어로는 '깍'일 것이고.. ㅁ의 경우는 ㄴ과 ㅇ도 잘 구분 못하는 사람이 있으니.. 뭐;; 넘어간다 치더라도.. ㄹ은 외국에서는 원래 t 발음을 냈었다고 하더라고요..

    쉬운 예는 베트남이겠지요? vietnam 영어로는 뷑넘 으로 읽히는.. 중국어는 越南 위에난 이고.. 한국어는 월남이죠;; 너무 깊이 들어갔나요? -0-;;

    그냥 보던 중 너무 반가워서요 ^^*

    좋은 글 잘봤습니다~ 인천 차이나타운엔 한번도 못가봤는데 다음엔 꼭 들려봐야겠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