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안 14

중국 최초의 삼장법사…실크로드를 넘어 온 천재 승려의 위대한 유산

쿠마라지바가 남긴 세 치 혀, 문성공주가 가져간 등신불 [최종명의 차이나는 발품 기행] 산시 ① 시안 초당사와 광인사 실크로드를 거쳐 동서양 문물이 전해졌고 낙타는 상업을 주도했다. 군마는 피를 뿌리는 전쟁을 수행했다. 종교가 오고가는 통로이기도 했다. 실크로드가 동아시아에 기여한 최고 선물은 어쩌면 불경일지 모른다. 현벽장성 아래 실크로드 조각상에 장건을 비롯해 곽거병, 반초, 현장, 마르코폴로, 임칙서, 좌종당이 나란하다. ‘사기성’ 농후한 마르코폴로를 빼면 대부분 ‘살인적’ 전쟁을 수행했다. 수많은 인물이 왕래했지만 쿠마리지바(Kumārajīva, 344~413)야말로 가장 위대한 ‘공간 이동’이라 말할 수 있다. 타클라마칸 사막 오아시스 구자왕국(龟兹王国)에서 실크로드를 따라 중원고도 장안에 이르..

[서안] 옛 장안성 그대로의 느낌으로 황궁 성벽 위를 걸어본다

서안에는 옛 장안성의 모습을 유지한 성장城墙이 개방돼 있다. 장락문长乐门, 영녕문永宁门, 안정문安定门, 안원문安远门이 동서남북 방향에 각각 대문이 있고 모두 18개의 성문이 있다. 성곽 문을 따라 계단을 오르면 성벽을 유람할 수 있다. 평균 12m 높이의 성벽 길은 탄탄대로로 만들어져 있어서 자전거를 타거나 전동차로 이동해도 좋다. 물론 성 안과 밖을 두루 보며 천천히 산보를 해도 좋다. 수나라 문제 때 처음 건축된 장안성은 현재 서안의 품격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성 안 곳곳을 하루 종일 걸어다녀도 좋다. 성벽 동문으로 들어가 남문으로 나오는데 약 1시간 30분 정도 걸렸다.

여행 후기 2017.06.22

[서안] 회족의 문화가 살아있는 거리는 언제나 먹거리가 풍부하다

서안西安 회민가回民街는 고루鼓楼 북쪽에 사는 회족의 거리로 약 500m에 이르는 먹자골목이다. 실크로드를 통해 중원 땅 장안으로 들어온 페르시아 지역의 상인 후예가 살고 있기도 하다. 하얀 모자를 쓴 회족은 이 거리에서 문화관광 상품으로 거듭난 서역의 먹거리를 판다. 양고기 꼬치는 물론이고 국수와 볶음밥, 만두와 서역햄버거도 많다. 수많은 여행객들이 이곳에서 다양한 풍물을 즐긴다. 서안에서 가장 복잡하고 흥미로운 거리다.

여행 후기 2017.06.22

[서안] 버스 타고 비 내리는 서안의 중심 중루의 야경을 보다

낙양 용문석굴과 백마사, 관우 무덤 관림을 둘러보는 1일 투어를 하고 고속철도 타고 서안북역에 내렸다. 숙소까지 가는 길에 비는 내리고 중국매듭인 중국결中国结이 붉게 빛나는 거리를 달린다. 서안의 중심 종루钟楼의 조명은 야릇하고 이국적이다. 비 속에서 보는 모습은 더욱 아름답다. 서안 성곽 문을 나서도 휘황찬란한 거리는 계속된다.

여행 후기 2017.06.22

[서안] 병마용에서 발굴된 신비로운 두 대의 동차마

동으로 제작된 마차인 동차마铜车马 두 대가 병마용兵马俑에서 발굴됐다. 마차의 2분의 1 정도 크기로 제작된 마차는 화려하고 섬세한 제작기술이 정말 대단하다. 병마용 박물관에는 진품과 모조품이 각각 순서대로 돌아가며 전시된다. 진시황이 전국을 통일하던 시기에는 마차바퀴의 거리가 통일돼 있는데 두 대는 서로 다르다는 것이 '진시황은 병마용과 무관하다'고 주장하는 천징위안 할아버지의 생각이다. 무엇보다 4마리의 말이 끌며 달리는 당시 마차의 생생한 모습을 본다는 것은 행운이다. 중원문화여행 일정 http://youyue.co.kr/1269

여행 후기 2017.06.16

[서안] 지휘부 장군 병마용이 화려하게 전시된 2호갱에서

병마용兵马俑 2호갱에는 지휘부에서 발굴된 장군 병마용이 전시돼 있다. 무릎 쏴 자세의 궤사용(跪射俑)과 서서 쏴 자세의 입사용(立射俑)과 말을 끌고 있는 안마기병용(鞍馬騎兵俑), 중무장한 군리용(軍吏俑)을 비롯 군사용(軍士俑), 장군용(將軍俑), 포용(袍俑), 개갑용(鎧甲俑), 어수용(御手俑) 등 다양한 형태의 병사용이 발굴됐다. 정말 멋지다. 일반 병사용도 멋지지만 역시 장군의 위용에 더 환호하는 까닭은 더 세밀한 동작을 표현한 예술적 감각때문이다. 중원문화여행 일정 http://youyue.co.kr/1269

여행 후기 2017.06.16

[서안] 진시황과 무관하다는 주장이 있는 병마용 1호갱의 위용

병마용兵马俑은 진시황릉秦始皇陵 동쪽 약 1.5km 떨어진 곳에 있다. 이날 따라 비가 내려 꽤 불편했는데 더운 것보다는 훨씬 구경하기에 부담이 없다. 1호갱 안으로 들어서면 많은 사람들로 인해 숨 막히고 땀냄새 나는 것보다는 더 편안하게 관람할 수 있었다. 역사모임 회원에게 사전에 '병마용과 진시황은 무관하다'는 천징위안 할아버지 이야기를 해서인지 관심이 남달라 보였다. 병마용이야 말로 서안은 물론 중국을 대표하고 상징하는 유물이 아니겠는가. 모두들 처음 보는 병마용의 위용에 감탄하고 있는 눈빛이다. 천징위안의 주장은 제 블로그나 기사, 그리고 에서도 많이 다룬 주제이다. 특히 최근에는 드라마를 통해 병마용의 주인이 진시황의 고조할머니인 진나라 선태후(진소왕의 어머니)을 인생이 알려지기도 했다. 진선태후..

여행 후기 2017.06.15

[서안] 대당부용원에 실망하고 대안탑이 있는 대자은사에 감동하고

시안西安 남부 취장曲江에 있는 대당부용원大唐芙蓉园을 5년만에 찾았다. 꽤 번성하고 좋은 관광지로 발전했을 것이란 기대를 저버려 아쉽다. 날씨까지 더워 전동차를 타고 움직였는데도 지친다. 마치 껍데기만 남아버린 듯 허망하다. 그나마 말 행진이라도 있어서 잠시 카메라를 연다. 자운루紫云楼에서 옛 장안성의 골격과 내용을 훑어볼 수 있다는 것은 장점이다. 역사모임 20명을 인솔하고 시안에 도착하자마자 약간의 실망, 아마 밤에 가면 야경은 나쁘지 않을 것이다. 대당부용원 서문에서 대안탑大雁塔 광장까지 걸어가고 싶었다. 약 30분 걸리는 거리다. 현지 가이드가 덥다고 극구 반대해서 차를 타고 이동. 대안탑大雁塔은 652년 당나라 시대 현장법사玄奘法师가 천축에서 불상과 사리, 경전을 가지고 돌아온 후 세운 5층 전탑..

여행 후기 2017.06.15

백만 대군을 이끌고 수도 장안을 점령한 황소 민란의 교훈

민란의 현장에서 다시 꺼낸 (03) 경찰이 청와대를 차 벽으로 꽁꽁 에워싸고 있다. 백만 인파가 청와대로 가는 길을 향해 주말마다 진군나팔을 올리고 있지만 난공불락이다. 노동자, 농민, 학생, 시민단체 등 제각각 ‘퇴진’의 깃발을 향해 촛불이 환하게 빛을 내뿜고 있다. 대통령이 사는 곳은 황제가 거주하는 성처럼 철옹성이다. 민란의 역사는 물리력으로 성곽을 열어젖히기도 하고 민중의 힘에 놀라 황제가 수도를 버리고 도망가기도 한다. 민란의 성공은 수도를 점령하고 황제의 권위를 대신해 새로운 국가를 개창하는 일이다. 황제를 스스로 호칭하고 개국했지만 튼튼한 민심과 함께 하지 못하면 나라의 기틀을 세우기도 전에 멸망에 이르기도 한다. 백만 대군을 이끌고 수도를 함락했던 민란 영웅 황소(黄巢)를 기억하자. 중원 ..

[민란 13] 장안을 점령하고 태산에서 죽다

[민란, 인민을 춤추게 하라 13] '계림'과 '황소'로 인해 망한 당나라 ② 소금업자 황소는 왕선지 봉기에 호응해 조주(曹州, 산동 하택菏泽)에서 민란을 일으켰다. 황소의 고향 원구(冤句)는 진나라가 현을 세웠다는 기록이 있지만, 역사 기록마다 위치를 정확하게 비정하지 못해 구체적인 장소에 대해 여전히 논란이 있다. 염상(鹽商) 가정에서 태어난 황소는 승마와 활 솜씨가 뛰어났으며 필묵에도 도통했다. 송나라 역사가인 장단의(张端义)가 집필한 당송 시대 인물에 대한 기록인 에 따르면 겨우 5세에 이미 시 짓는 재주가 뛰어났다. 몇 차례 과거에 응시했으나 거듭 낙방하고 수도 장안을 떠나며 시 한 편을 남겼다. 이니 과거 낙방 후 자신의 마음을 국화에 빗댄 것이다. 이 시는 마치 그의 운명을 '예언'처럼 노래..

[민란 12] 소금으로 망한 당나라, 그 화는 계림에 있다

[민란, 인민을 춤추게 하라 12] '계림'과 '황소'로 인해 망한 당나라 ① ▲ 당나라 말기 절강 섬현에서 사염 밀매로 생계를 유지하던 구보는 상산에서 살신의 정신으로 민란을 일으켰다. 사진은 구보의 고향과 아주 가깝고 20세기 국민당의 장제스의 고향이기도 한 절강성 계구 마을의 시장. ⓒ 최종명 "당(唐)은 황소(黄巢)로 인해 망(亡)하고 그 화(祸)는 계림(桂林)에 있다." - 당나라 말기 최대 농민전쟁인 황소 민란이 일어나기 전 그 화근이 된 사건을 계림에서 봉기한 방훈(庞勋) 민란이라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방훈보다 10년 앞서 절강 일대에 민란의 소용돌이를 일으킨 구보(裘甫)가 있었으니 당나라를 침몰시킨 진정한 화근이자 최초의 항거였다. 당나라 말기 혼란, 피 끓는 전쟁의 서막이다. 당나라 말..

[민란 10] 고구려 침공과 민란으로 인해 멸망하다

[민란, 인민을 춤추게 하라 10] 수나라 민란 장백산과 와강채 ① ▲ 중국은 그냥 산이라고 하는 것도 산맥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에서 장백산은 협의로는 백두산이지만 백두산을 포함한 기나긴 산맥을 광의로 장백산이라 부르는 것일 뿐이다. 산동의 장백산은 수나라의 고구려 침공계획으로 인해 발발한 민란의 근거지이다. ⓒ 최종명 백두산, 중국은 장백산(长白山)이라 부른다. 장백산이라 불린 것은 12세기경 여진족의 금나라가 중원을 장악하고 있을 때부터였다. 북위 때에는 도태산(徒太山)이었고 당나라는 태백산(太白山)이라 불렀다. 서안 남쪽 진령산맥(秦岭山脉)의 주봉을 태백산이라 한다. 우리나라 강원도에 있는 태백산과 이름이 같다. 당나라 시대에는 지금의 백두산이 태백산이기도 했다. 산 이름만 놓고 보면 역사 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