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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베이징北京 다렌大连 

2002 
하얼빈哈尔滨 다칭大庆

2003 
베이징北京 타이베이台北 홍콩香港 마카오澳门 룽청 옌지延吉

2004
광저우广州 후이저우惠州 선沈阳 지난济南 상하이上海 베이징北京 텐진天津 친황다오秦皇岛 산하이관山海关 베이다이허北戴河 창리昌黎

2005 

베이징北京


2006 5월

다퉁大同 핑야오平遥 시안西安 화산华山 타이위엔太原 

2006년 8~10월

허페이合肥 류안六安 우후芜湖 난링南陵 난징南京 퉁링铜陵 징더전景德镇 잉탄鹰潭 구이시贵溪 취저우衢州 카이화开化 황산黄山


2007 1
룽청荣成 웨이하이威海

2007 4
웨이하이威海 룽청荣成 스다오石岛 칭다오青岛 라오산崂山 지난济南 타이안泰安 태산泰山 취푸曲阜 텅저우滕州 쉬저우徐州 상추商丘 위청虞城 

2007 5 
카이펑开封 정저우郑州 덩펑登封 뤄양洛阳 타이구太谷 핑야오平遥 타이위엔太原 스자좡石家庄 정딩正定 바오딩保定 텐진天津 탕산唐山 창리昌黎 친황다오秦皇岛 난다이허南戴河 진저우锦州 다렌大连 단둥丹东 지안集安 환런桓仁 퉁화通化 선沈阳 창춘长春 지린吉林

2007 6 
옌지延吉 창바이산长白山 닝안宁安 화촨桦川 푸진富锦 허강鹤岗 하얼빈哈尔 다퉁大同 훈위엔浑源 후허하오터呼和浩特 시라무런希拉穆仁 바오터우包头 다라터达拉特 인촨银川 전베이바오镇北堡 란저우兰州 시닝西宁 칭하이후青海湖 칭스쭈이青石 어부峨堡 장예张掖 자위관嘉峪关 

2007 7
둔황敦煌 우루무치乌鲁木齐 시안西安 충칭重庆 청두成都 광한广汉 라싸拉萨 자낭扎囊 쌈예桑耶 체탕泽当 구이양贵阳 안순安顺 쿤밍昆明 스린石林 주샹 

2007 8
다리大理 리장 구이린桂林 양숴 난닝南宁 베이하이北海 광저우广州 선전 하이커우海口 원창文昌 츙하이 싼야 창사 닝샹 샤오산韶山 위에양 이창宜昌 쯔구이秭归 시안西安 

2007 9
우한 주장九江 루산 난창南昌 간저우 차오저우潮州 장저우漳州 푸저우福州 원저우 상하이上海 닝보宁波 샤오싱绍兴 항저우杭州 툰시屯溪 훙춘宏村 이현黟县 탕커우 허페이合肥 난징南京 양저우 창저우常州

2007 10
쑤저우 진팅金庭 상하이上海 베이징北京


2008 8~9

베이징北京

2008 11
칭허


2009~2013년 베이징 거주
화이러우怀 미윈密云 먼터우거우门头沟 옌칭 팡산房山 창핑昌平 순이顺义 펑타이丰台 다싱


2010 7~9
시안西安 양센 옌안延安 위린榆林 위양榆阳 타이위엔太原 위츠榆次 바오딩保定 만청满城 먀오펑산妙峰山

2010 10~11
가오양 지현蓟县 자이탕斋堂


2011 1
상하이上海 샤오싱绍兴 항저우杭州 황산黄山 서현歙县

2011 10~11
창사长沙 카이리凯里 시장西江 싼두三都 룽장榕江 구이딩贵定 구이양贵阳


2012 2
츠청赤城 눤취안暖泉 위현 줘루涿鹿 지밍이鸡鸣译 

2012 8
화이라이怀来 첸자덴千家店

2012 9
장산잉张山营 먀오펑산妙峰山 펑닝丰宁 장베이张北 우루무치乌鲁木齐 카슈가르喀什 잉지사英吉沙 예청叶城 호탄和田 쿠차库车 투루판鲁番 푸캉阜康

2012 10
핑야오 제슈介休 링스灵石 지난济南 취푸 짜오좡枣庄 텅저우滕州

2012 11
산하이관山海 베이다이허北戴河 롼저우滦州

2012 12
자이탕斋堂


2013 1
한단 징싱 루취안鹿泉 스자좡石家庄 정딩正定 

2013 2
쿤밍昆明 다리大理 리장丽江 디칭迪庆 샹그릴라香格里拉 호도협虎跳

2013 3
다퉁大同 훈위엔浑源 잉센应县 우타이五台 스자좡石家庄 정딩 징싱 루취안鹿泉 샹양 이청宜城 스옌十堰 징저우 
2013 4
난징南京 양저우 타이저우泰州 싱화 

2013 5
청더承德 웨이창围场

2013년 7월

츠펑赤峰 우단乌丹 웡뉴터翁牛特 커스커텅克什克腾 징펑经棚 다라이눠르达来诺儿 시린하오터锡林浩特 

2013년 8월

이현易县 위현蔚县 상하이上海 쑤저우苏州 우시无锡

2013년 9월

신창新场 자산嘉善 시탕西塘 후저우 광더广德 쉬엔청宣城 징센泾县 자지춘查济村 안칭安庆 첸산潜山 화이닝怀宁 허페이合肥 쯔보淄博 저우춘周村 지난济南 더저우德州 우챠오吴桥 판진盘锦 다와大洼 싱청兴城 진저우锦州 링허凌河 청더承德 난다이허南戴河 친황다오秦皇岛 산하이관海关 라오룽터우老龙头

2013년 10월

라싸拉萨 취수이曲水 랑카쯔浪卡子 시가체日喀则 담슝当雄 시닝西宁 얼랑젠二郎剑

2013년 11월

구이양贵阳 즈진织金 칭옌青岩 카이리凯里 시장西江 단자이丹寨 룽장榕江 처장车江 충장从江 바사먀오자이岜沙苗寨 자오싱肇兴 리핑黎平 싼장 룽셩龙胜 룽지龙脊 구이린桂林

2013년 12월

핑야오平遥 타이위엔太原 진위엔晋源 


2014년 1월

첸자덴千家店 칭다오青岛 웨이팡潍坊 칭저우青州 취푸曲阜

2014년 4월

후허하오터呼和浩特

2014년 5월

자이탕斋堂

2014년 8월

스다오石岛 웨이하이威海 룽청 청산成山 원덩 장자찬张家产

2014년 11월

상하이上海 항저우杭州 우한武汉 우전 펑화奉化 시커우溪口 센쥐仙居 츠청慈城 베이징北京 줘저우涿州


2015년 3월

베이징北京 구이린桂林 양숴阳朔 룽지龙脊 충장从江 자오싱肇兴 리핑黎平 바사먀오자이岜沙苗寨 룽리隆里 진핑锦屏 센시县溪 퉁다오通道 룽성龙胜

2015년 6월

상하이上海 닝보宁波 펑화 시커우溪口 센쥐仙居

2015년 7월

난징南京 란저우兰州 퉁런同仁 황중湟中 먼위엔门源 칭스쭈이青石 어부峨堡 치렌祁连 장예 니자잉倪家营 자위관峪关 둔황敦煌

2015년 8월

베이징北京 위센蔚县 안양安阳 지난济南 룽청荣城 스다오石岛

2015년 11~12월

구이양贵阳 칭옌青岩 전닝镇宁 황궈수黄果树 황핑黄平 충장从江 레이산雷山 싱이兴义 후스葫市 빙안丙安 츠수이赤水 마오타이茅台 칭전清镇 전펑贞丰 쯔윈紫云 거투허格凸河


2016년 1월

난징南京 쿤밍昆明 다리大理 리장丽江 후타오샤虎跳 샹그릴라香格里拉 束河

2016년 4월

구이양贵阳 황궈수黄果树 카이리凯里 마당채麻塘寨 타이장台江  라오툰향老屯乡 스둥施洞 전위엔镇远 자오싱肇兴 룽지龙脊 구이린桂林 양숴阳朔  궁청恭城 황야오黄姚

2016년 5월

이창宜昌 우산巫山 펑제奉节 무푸沐扶 언스恩施 우룽武隆 충칭重庆 다쭈大足 광안广安 랑중阆中 푸안普安 젠거剑阁 젠먼관剑门关 광위엔广元 멘센勉县 딩쥔산定军山 허둥덴河东店 한중汉中 청두成都

2016년 7월

구이양贵阳  리보荔波 라피엔춘拉片村 반가오춘板告 싼두三都 바카이춘八开村 룽장榕江 두장都江 전레이춘怎雷村 시장西江 마당채麻塘寨 칭옌青岩

2016년 8월

충칭重庆 리장丽江 후타오샤虎跳 샹그릴라香格里拉 번쯔란奔子栏 수쑹춘书松村 바이마설산白马雪山 잉빈타이迎宾台 더친德钦 옌징盐井 취쯔카曲孜卡 샹옌징춘上盐井村 망캉芒康 루메이如美 쭤궁左贡 방다邦达 예라산业拉山 누장72과이怒江72拐 바쑤八宿 란우然乌 미두이米堆 보미波密 구샹故乡 루랑鲁朗 바제춘巴结村 바이八一 린즈林芝 궁부장다工布江达 쑹둬이춘松多一村 미라산米拉山 르둬샹日多乡 모주궁카竹工卡 라싸拉萨 시안西安
2016년 9월 
베이징北京 안양安阳 린저우林州 스반옌石板岩 우지屋脊 션룽완神龙湾 핑순平顺 징디춘阱底村 궈량춘郭亮村
2016년 10월 
상하이上海 서현歙县 슝춘雄村 지시绩溪 룽춘龙川 탕위에棠樾 청칸呈坎 툰시屯溪 이현黟县 시디西递 루춘卢村 훙춘宏村 슈닝休宁 반챠오샹板桥乡 장첸춘漳前村 훙관춘虹关村 저위엔샹浙源乡 펑산춘凤山村 리컹理坑 칭화전清华镇 쓰시옌춘思溪延村 왕커우汪口 장완江湾 샤오치晓起 리컹李坑 우위엔婺源 
2016년 11월 
상하이上海 닝보宁波 센쥐仙居 옌당산雁荡山 츠청慈城

2017 1월 
쿤밍昆明 단산촌团山村 젠수이建水 위엔양元阳 멍쯔蒙自 루시泸西 루량陆良 뤄핑罗平 싱이兴义 황궈수黄果树 구이양贵阳 다리大理 시저우喜州 얼위엔洱源 펑위진凤羽镇 리장丽江 束河 샹그릴라香格里拉 후타오샤虎跳 진덴金殿

2017년 4월

상하이上海 닝보宁波 펑화 시커우溪口 센쥐仙居 구이양贵阳 시장西江 카이리凯里 마당채麻塘寨 타이장台江  라오툰향老屯乡 스둥施洞 전위엔镇远 자오싱肇兴 룽지龙脊 구이린桂林 양숴阳朔 칭옌青岩

2017년 6월

시안西安 뤄양洛阳 룽먼龙门户县 쭈안祖庵 차오탕草堂 

2017년 7월

상하이上海 란저우兰州 융징永靖 퉁런同仁 황중湟中 먼위엔门源 칭스쭈이青石 어부峨堡 치렌祁连 장예 린쯔临泽 니자잉倪家营 자위관峪关 주취엔酒泉 둔황敦煌 난후샹南湖乡

2017년 7월

리장丽江 후타오샤虎跳 샹그릴라香格里拉 번쯔란奔子栏 수쑹춘书松村 바이마설산白马雪山 잉빈타이迎宾台 더친德钦 옌징盐井 취쯔카曲孜卡 샹옌징춘上盐井村 망캉芒康 루메이如美 쭤궁左贡 방다邦达 예라산业拉山 누장72과이怒江72拐 바쑤八宿 란우然乌 미두이米堆 보미波密 구샹故乡 루랑鲁朗 바제춘巴结村 바이八一 린즈林芝 궁부장다工布江达 쑹둬이춘松多一村 미라산米拉山 르둬샹日多乡 모주궁카竹工卡 라싸拉萨 시안西安 

2017년 8월

베이징北京

2017년 9월

쑤저우宿州 다쩌샹전大泽乡 보저우亳州 타이칭궁전太清宫 루이鹿邑 저우커우周口 린잉临颖 쉬창许昌 위저우禹州 션허우전 궁이巩义 싼먼샤三门峡 링바오灵宝 한구관函谷关 제저우전解州 윈청运城 한청韩城 즈촨전芝川镇 당자춘党家村 허진河津 수춘修村 후커우壶口 이촨宜川 미즈米脂 쑤이더绥德 뤼량吕梁 리스离石 리자산춘李家山村 시완춘西弯村 치커우전碛口镇 치센祈县 타이구太谷 타이위엔太原 칭룽전青龙镇

2017년 12월

샤먼厦门 난징南靖 융딩永定 상하이上海 닝보宁波 펑화 시커우溪口 센쥐仙居

2018년 1월

상하이上海 쿤밍昆明 웨이산巍山 다리大理 시저우喜州 샤시沙溪 리장丽江 束河 후타오샤虎跳 샹그릴라香格里拉 

2018년 3월

스다오石岛 웨이하이威海 룽청 청산成山 원덩 구이양贵阳 칭옌青岩 시장西江 마당채麻塘寨 전위엔镇远 펑황凤凰 자오싱肇兴 룽지龙脊 구이린桂林 양숴阳朔 

2018년 4월

구이양贵阳 칭옌青岩 시장西江 카이리凯里 마당채麻塘寨 전위엔镇远 펑황凤凰 자오싱肇兴 룽지龙脊 구이린桂林 양숴阳朔 쿤밍昆明 다리大理 시저우喜州 샤시沙溪 리장丽江 束河 후타오샤虎跳 샹그릴라香格里拉

2018년 6월

충칭重庆 청성산青城山 쓰구냥산四姑娘山 샤오진小金 단바丹巴 중로장채中路藏寨 갑거장채甲家藏寨 야라설산雅拉雪山 세더향协德乡 거르마촌各日马村 바메이八美 타궁향塔公乡 캉딩康定 루딩泸定 하이뤄거우海螺沟 야안雅安 아미산峨眉山 상리고진上里古镇

2018년 7월

상하이上海 란저우兰州 융징永靖 퉁런同仁 황중湟中 먼위엔门源 칭스쭈이青石 어부峨堡 치렌祁连 장예 린쯔临泽 니자잉倪家营 자위관峪关 주취엔酒泉 둔황敦煌 난후샹南湖乡 충칭重庆 우룽武隆 

2018년 8월

장자제张家界 차둥茶峒 다렌大连 뤼순旅顺 잉커우营口 판진盘锦 훙하이탄红海滩 진저우锦州 차오양朝阳 링위엔凌源 산하이관海关 라오룽터우老龙头 창리昌黎 탕산唐山 베이징北京 위센蔚县 라이위엔涞源 우타이五台 핑야오平遥 제슈介休

2018년 10월

시안西安 뤄양洛阳 룽먼龙门 덩펑登封

2018년 11월

샤먼厦门 안시安溪 창타이长泰 난징南靖 융딩永定 상하이上海 닝보宁波 펑화 시커우溪口 센쥐仙居

2019년 1월

상하이上海 츠시慈溪 닝보宁波 샹산象山 스푸石浦 타오주桃渚 닝하이宁海 첸퉁전前童镇 신창新场 시탕西塘 우전 퉁리同理 후이산전惠山镇 후추虎丘 첸덩전千灯 항저우杭州 샤오싱绍兴 베이징北京

2019년 2월

쿤밍昆明 단산촌团山村 젠수이建水 위엔양元阳 비써자이촌碧色寨村 멍쯔蒙自 청즈촌城子村 루시泸西 뤄핑罗平 싱이兴义 황궈수黄果树 텐룽툰바오天龙屯堡 안순安顺
2019년 3월
상하이上海 난쉰南浔 황산黄山 훙춘宏村 시탕西塘 신창新场
2019년 4월
상하이上海 우위엔婺源 징더전景德镇 야오리고진瑶里古镇 잉탄鹰潭 상칭진上清镇 징강산井冈山 지안吉安 메이베이고촌渼陂古村 루이진瑞金 창팅长订 관자이산冠豸山 페이텐고촌培田古村 샤센沙县 여우시尤溪 구이펑고촌桂峰古村 타이닝泰宁 싼밍三明 무이武夷山 샤메이고촌下梅古村 자싱嘉兴 주자쟈오朱家角
2019년 5월
상하이上海 룽먼龙门 주거바과촌诸葛八卦村 헝덴横店 주지诸暨 저우좡周庄 루즈甪直
2019년 6월
구이양贵阳 칭옌青岩 시장西江 카이리凯里 두윈都匀 뤄쓰커螺蛳壳 리보荔波 자오싱肇兴 룽지龙脊 핑안촌平安村
2019년 7월
허바오산촌荷包山村 양숴阳朔 황야오黄姚 구이린桂林 상하이上海 란저우兰州 융징永靖 퉁런同仁 황중湟中 먼위엔门源 칭스쭈이青石 어부峨堡 치렌祁连 장예 린쯔临泽 니자잉倪家营 자위관峪关 주취엔酒泉 둔황敦煌  옌타이烟台 베이징北京 청더承德 우란부퉁乌兰布统 다리눨达里诺尔 징펑经棚 커스커텅克什克腾 웡뉴터翁牛特 우단乌丹 츠펑赤峰 
2019년 8월
다렌大连 단둥丹东 환런桓仁 퉁화通化 창바이산长白山 지안集安 콴덴宽甸 
2019년 9월
상하이上海 샤오싱绍兴 항저우杭州 우전
2019년10월
구이양贵阳 펑강凤冈 쭌이遵义 하이룽툰海龙屯 마오타이茅台 츠수이赤水 투청土城 빙안丙安 량허커우两河口镇 허장合江 센스先市 야오바尧坝 룽창隆昌 네이장内江 충칭重庆 항저우杭州 장산江山 칭양清漾 넨바두廿八都 푸청浦城 룽췐龙泉 룽양龙洋 차위엔촌茶园村 윈허云和 다쥔大均 리수이丽水 구옌화샹古堰画乡 진윈缙云 허양河阳 샤오싱绍兴 하이닝海宁  더칭德清 신스新市 상하이上海

2019년11월

샤먼厦门 안시安溪 창타이长泰 난징南靖 융딩永定 선전 광저우广州 카이핑开平 바이써百色 바마巴马 자좐향甲篆乡 텐양田阳 푸저헤이普者黑 쿤밍昆明 위엔머우元谋 

2019년12월

판즈화攀枝花 위먼진渔门镇 옌위엔盐源 루구후泸沽湖 샤오뤄수이촌小落水村 리거촌里格村 바주촌八珠村 라보촌拉伯村 석두성石头城 바오산향宝山乡 밍인진鸣音镇 다쥐향大具 리장丽江 솽랑双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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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원의 옛 도시 뤄양(洛阳)과 허난성 수도 정저우(郑州) 사이에 있는 궁이(巩义). 북쪽으로 황하(黄河)가 흐르고 남쪽에는 소림사가 있다. 당나라 시인, 시성(诗圣) 두보(杜甫)의 고향이다. 시내에서 택시를 타고 20분이면 난야오완촌(瑶湾)에 도착한다. 712년생인 두보가 태어나고 어린 시절을 보낸 마을이다. 입장료는 65위엔(11,000), 명성만큼 비싼 편이다. 입구로 들어서면 두보와 배시성문(诗圣)이 적힌 석서()와 만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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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산의 빛나는 광경을 위해 둔황은 어제까지 엄청난 비를 뿌렸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도 많다. 그러나 사막은 넓다. 우리는 모두 감탄과 흥분에 휩싸였다. 늦은 오후인데도 낙타를 타거나 걷거나 하며 사막을 즐기는 사람이 많다. 


실크로드의 오랜 도시 둔황, 사막 가운데 자리잡은 오아시스 월아천도 물이 철철 넘친다. 이 부근에서 드라마 <선덕여왕>을 촬영하기도 했다. 한여름인데도 푹푹 찌는 날씨가 아니라 상쾌한 기분을 만들어준 행운이 그저 고맙다. 여행은 운이 따라주어야 더더더~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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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 만리장성의 서쪽 끝 가욕관(자위관)에 있는 현벽장성을 오른다. 거의 비가 내리지 않는 지방인데 비가 내린다. 20도가 채 안 되는 온도라 가파른 장성을 오르는데 하나도 덥지 않다. 보통 때 35도가 넘는 걸 생각하면 축복이다. 오를수록 전망이 넓어지니 시야는 훨씬 시원하다. 멀리서 바라보면 검은 빛이 감도는 민둥산 헤이산에 파란 하늘, 흰 구름이 잘 어울린다. 생긴 모습이 베이징 부근 바다링八达岭 장성과 사뭇 비슷하다고 해서 서쪽 지방의 바다링이라 부르기도 한다. 


서역으로의 통로를 개척한 한나라 시대의 여행가인 장건张骞, 흉노족 토벌 무장인 한나라 무장들인 곽거병霍去病과 후한 시대의 반초班超, 불법을 구하러 간 현장玄奘, 동방 여행가 마르코폴로马可波罗, 그리고 청나라 말기 정치가인 임칙서林则徐와 서역의 반군을 평정한 좌종당左宗棠 등 7명의 인물들, 그리고 5명의 수행원, 말 2필, 낙타 2마리와 마차 1대가 함께 조각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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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A 풍경구인 칠채단하七彩丹霞은 홍红, 황黄, 등橙, 녹绿, 백白, 청회青灰, 회흑灰黑, 회백灰白 등 화려하고 다양한 색감이 펼쳐진다. 6~9월 사이가 절정의 빛을 머금는다. 특히 전날 비가 내리면 더욱 진한 느낌을 보여준다. 위치마다 보이는 감상이 달라 관망대도 몇 개나 된다. 차량을 이용해 옮겨 가며 마음껏 풍광을 느낀다. 


해발 2000m에서 3800m에 이르는 칠채산은 오전이나 오후, 계절마다 다 달라 색감이 조금씩 다르다. 해질녘에 가도 좋아보일 거 같은데 다음에는 한번 도전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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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안 화청지에서 매일 밤 열리는 실경무대극 <장한가>는 백거이白居易(772~846)의 시를 기반으로 4장 11막의 멋진 공연이다. 700여명의 출연진이 펼치는 감동적인 드라마가 인상적이다. 806년 주지현위周至县尉이던 백거이는 마외역马嵬驿에서 술잔을 기울이다가 당현종과 양귀비의 사랑과 운명을 듣고 840자 7언 120행의 "장한가'를 짓는다. 황제와 양귀비의 만남과 애정, 안녹산 반란과 양귀비 죽음에 애통해 하는 황제, 환도 후 양귀비를 잊지 못하는 황제, 도사의 환술로 다시 만난 사랑의 맹세와 한탄스런 단절을 노래하고 있다. 백거이의 시와 다소 다른 부분도 있지만 대체로 비슷하다. 온천, 피파, 무사의 춤, 술취한 모습, 여지 과일, 죽음 그리고 꿈 속의 무지개까지 화려하고 감동적이다. 호수 위에서 펼쳐지기도 하지만 이날 마침 내리는 빗물이 더욱 애잔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중원문화여행 일정 http://youyue.co.kr/1269


장한가 01 - 입궁하는 양귀비 만나 애뜻한 사랑을 시작하는 황제


 


장한가 02 - 에로틱한 춤으로 절절한 사랑을 표현하는 양귀비


 


장한가 03 - 화청지 온천에서 미인의 몸매를 마음껏 드러내는 양귀비


 


장한가 04 - 양귀비의 운명에 드리운 안녹산의 어두운 그림자


 


장한가 05 - 연회 후 술에 취한 양귀비의 모습조차 아름답다


 


장한가 06 - 화려한 가면 영상이 휘날리며 사랑은 깊어만 가고


 


장한가 07 - 안녹산의 반란으로 인한 당 현종과 양귀비는 불행의 시작


 


장한가 08 - 폭우 속에 도주하는 당 현종과 양귀비, 사랑의 이별


 


장한가 09 - 꿈 속에서도 다시 만나 사랑을 나누게 되는 당 현종


 


장한가 10 - 오작교에서 다시 만난 당 현종과 양귀비의 허망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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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원고진镇远古镇을 돋보이게 하는 고민거古民居와 고항도古巷道가 있다. 석병산 능선에 오밀조밀하게 전통가옥이 들어섰고 오르내릴 수 있는 골목이 여러 갈래로 조성돼 있다. 느릿느릿 걷다보면 찻집도 있고 객잔도 있으며 술집도 몇군데 있다. 담벼락은 담백하고 사람들 왕래도 적어 한산하고 차분하다. 강남의 정원과 산간 마을의 가옥을 합친 포석으로 이뤄져 있다. 마을에는 공동우물도 있고 열린 집집마다 누구라도 쉽게 들어가서 바라보거나 앉아서 쉴 수 있다. 사람들도 모두 열린 마음으로 여행자를 받아주는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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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주문화의 아름다운 마을 쓰시촌思溪村과 옌촌延村은 입장권을 함께 판매한다. 쓰커우진思口镇에 있는 두 마을은 비슷하면서도 서로 다른 느낌을 가지고 있다. 우선 쓰시촌으로 들어서면 작은 하천 위 다리를 따라 마을로 들어선다. 다리 위에서 주민들이 광장처럼 모여있다. 좁은 골목과 회색 벽이 어울린 마을이다. 마침 장례식이 열리는 집에서 꼬마가 열심히 무언가를 도장 찍고 있다. 할아버지와 장난을 하는 아이도 있다. 꼬마는 소지전烧纸錢을 찍어내고 있다. 이승으로 가는 길에 노자돈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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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마을 리컹理坑을 흐르는 작은 하천을 따라 곳곳에 작은 다리가 놓여있다. 폭이 열 걸음 정도로 좁은데 운치가 남다르다. 이 좁은 곳을 나무 쪽배를 타고 노는 사람도 많다. 그림을 그리는 학생들도 자주 찾는 마을이기도 하다. 회색 담장이 연륜이 묻어나 검은 색으로 변하듯 밤이 오면 점점 하천도 어두워진다. 어둠과 함께 집집마다 홍등을 비추면 잔잔한 하천은 다시 활기를 띤다. 초저녁부터 밤까지 하천에 앉아 있으면 정말 낭만이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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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안휘고촌락 훙촌宏村이다. 휘주문화를 대표하는 관광지이다. 마을로 들어서면 난후(南湖)가 나온다. 맑고 잔잔한 호수를 따라 나뭇가지들이 흔들거리는 모습이 정겹다. 호수에 비친 건물들이 환상적인 모습을 연출하니 학생들이 캔버스를 놓고 연필로 열심히 데생을 하고 있다.

호수 위에 멋진 아치형 다리가 나타났다. 리안李安 감독의 <와호장룡臥虎藏龍> 첫 장면에 스틸 컷처럼 나오는 촬영지다. 다리를 보는 순간 도저히 쉽게 연출할 수 없는 멋진 모습에 탄성이 저절로 나온다. 봉긋한 돌다리와 수련이 어우러지고 있으며 천 년의 역사를 담은 집들과 먼산 구름과 하늘까지 차례로 드러나는 환상적인 장면. 잠시 숨을 멈추고 그저 바라볼 뿐이다.

왕(汪)씨 집성촌이다. 서원을 둘러보고 마을 안으로 들어간다. 마을 전체가 소 우(牛)자형으로 된 골목길을 따라 인공 하천이 흐르는 수리 시설을 갖춘 독특한 곳이다. 골목길을 따라 졸졸 흐르는 하천이 있는데 아주 작아서 물 도랑이라는 뜻으로 수천(水圳)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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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이저우에 있는 보물처럼 멋진 풍광, 바로 만봉림万峰林입니다. 카르스트가 선물한 최고의 혜택입니다. 봉우리가 서로 잘난 체 하며 우뚝 솟았고 유채는 땅을 자양분으로 하늘을 향해 자라고 있습니다. 명나라 지리학자이자 여행가인 서하객은 "천하의 산봉우리가 어찌 그렇게 많은가 해도, 오직 여기만이 봉우리가 숲을 이루고 있구나.(天下山峰何其多,惟有此处峰成林)라고 극찬한 눈썰미를 알게 됩니다. EBS세계테마기행에서는 제작진의 뜻밖의 실수로 영상에 담지 못한 팔괘전을 비롯 유채꽃밭의 화려한 감흥을 담았습니다. 관광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잠깐씩 보는데 다음에는 그냥 하염없이 걸어서 가보고 싶은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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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용 죽겠지?”

 

신화나 전설에 등장하는 신비한 동물 용()은 중국을 상징한다. 중화민족, 즉 한족을 대표하는 으뜸 동물이다. 갑골문(甲骨文)에 등장하는 용은 하늘의 결합 형태다. 하늘을 날아다닐 정도로 패기에 넘치는 뱀을 토템으로 하는 부족이 아마도 한족의 옛 조상이었을지도 모른다. 뱀 토템 부족은 주위의 여러 부족을 굴복시킨 후 연맹으로 발전하지 않았을까?

 

용생구자(龙生九子), 용에게는 아들이 아홉이 있다. 명나라 학자 서응추()가 지은 <옥지당담회(玉芝堂谈荟)에 출몰한다. 지금도 재미난 상징물로 용과 더불어 활개를 치고 있다. 외국인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건물이나 거리 곳곳에 숨어 있다. 아버지의 아들 토템은 그 옛날 연맹에 복속된 부족이었을 것이다.

 

뿔 달린 용으로 음악을 좋아해 현악기 머리에 달린 수우(囚牛)가 장남이다. 애제(睚眦)는 표범 몸과 용 머리의 흉악한 모양으로 살인과 싸움을 좋아하고 칼자루나 병기에 출현한다. 조풍()은 모험을 좋아하고 요괴를 물리치거나 화재를 제거하는 맹수로 전각 앞을 지킨다.

 

포뢰(蒲牢)는 바다사자로 고래에 맞서 거대한 고함을 지르는데 대형 종의 손잡이에 새겨져 있다. 산예(狻猊)는 꿇어앉은 사자 모양으로 연기를 삼켜 내뿜기를 좋아해 향로 다리에 출현한다. 다른 동물보다 쉽게 관찰이 되는 거북이 비희(赑屃)는 장수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비석을 등에 짊어지고 있는 천하장사다.

 

폐한(狴犴)은 호랑이 형상으로 시시비비 가리기를 좋아해 감옥이나 관청 문에 달려있다. 부희(负屃)는 용처럼 생겼는데 고상하게도 문화를 좋아해 석비 꼭대기를 휘감고 있다. 리문(螭吻)은 용 머리와 물고기 꼬리 모양으로 화재방지에 일가견이 있어 목조 건물의 지붕 끝에 자리하고 있다.

 

아들을 거느린 용은 황제로 등극한다. 진시황을 조룡()이라 부르는 이유는 중앙집권적 통일국가를 이룬 황제에 대한 극찬이다. 하급관리이던 유방(刘邦)이 한나라를 개국한 후 태몽으로 용을 등장시킨 까닭도 하늘의 뜻을 받들었다는 구차한 변명이었다. 두 마리 용이 구슬을 가지고 논다는 이룡희주(龙戏珠)는 황제가 거주하거나 행차한 곳의 건축물에 자주 등장한다. 황제가 거주하는 고궁에는 구룡벽(龙壁)을 세워 위엄을 보이기도 한다.


 

1988년 한단()의 한 마을에서 돌로 조각된 용 열 마리가 한꺼번에 발견됐다. 길이가 368m에 이르는 거대한 용과 작은 용 아홉 개였는데 마치 용과 아홉 명의 아들과 짝을 이룬 듯하다. 천하제일용(天下第一)이라 부른다. 차라리 용 한 가족이라 불러도 좋을 듯하다.

 

상상의 동물로 알려진 용의 고향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중원지방 허난(河南) 성 북부 푸양()이다. 1987년 약 7천 년 전 신석기 고분을 발굴과정에서 방각룡(蚌壳龙)이 출토됐다. 민물조개 껍데기를 이용해 마치 용처럼 빚었다. 그래서 용향(龙乡)이 됐다. 중화민족의 자랑, ‘중화제일용(华第一龙)’이라고도 명명했다.

 

중원지방에서 용이 빈번하게 돌출하면 이상할 것도 없다. 1971년에 홍산문화(红山文化)로 유명한 네이멍구(内蒙古) 츠펑(赤峰)에서 기원전 4,500여 년 전 유물인 옥결(玉玦, 귀걸이)이 출토된다. 학자들은 흥분의 도가니였다. 중원의 고도에서 직선거리로 1,300km나 떨어진 동북 변방에서 나온 보물이 돼지의 머리, 말의 갈기, 뱀의 몸을 닮았기 때문이다. 갑골문의 용과 아주 비슷하다는 추리력을 발휘해 벽옥용(碧玉)’이라 이름을 붙인다. 츠펑에 가면 C자 형의 옥결을 이정표로 한 중화제일용이 곳곳에 즐비하다.

 

중화제일용은 또 있다. 산시(山西) 지현()의 물고기 꼬리가 달린 용 문양의 암화, 랴오닝(辽宁) 차하이(查海) 유적지에서 발견된 거대한 용 모습의 돌무더기도 모두 하나의 이름으로 부른다. 1996년에는 중원에서 서남쪽 800km 떨어진 소수민족 동네 구이저우(贵州) 안순()에서도 용의 뿔 화석이 발견됐다. ‘제일용이 너무 많으면 곤란했던지 신중국용(新中国龙)’이라는 이상한 이름을 붙였다.

 

용으로 추정되는 화석이나 유물은 전국 방방곡곡에 수도 없이 많고 점점 더 많아질 것이다. 국경선 바깥에 고고학적 유물이 발견돼 용 문양과 조금이라도 비슷하면 중국의 용이라고 주장하기에 십상이다. 중국문화에 상당한 영향을 주고 있는 용이 승천하듯 중국이 G2에서 세계 최고의 지위를 향하고 있다. 두 마리 용을 가지고 구슬치기 하듯 노는데 누가 뭐라 할 것인가?

 

그런데 중화민족의 발원이 중화제일용이 출토된 지역 모두라고 우기는 것은 굉장히 거북하다. 요하문명의 핵심지역으로 알려진 츠펑에 용을 토템으로 섬기는 부족이 살았다는 식으로 확정하면 곤란하다. 중원을 넘어 동북부터 서남, 아니 지금의 중국영토 전부를 다 아우르고 싶어하는 욕구는 고고학이나 역사학의 범주를 넘어서고 있어서 분통이 터진다. ‘왜곡이기 때문이다. ‘용용 죽겠지?’하고 놀리는데 대책이 없는 것도 현실이다. ‘역사를 왜곡하는 자진실이라는 수레바퀴에 매몰될 것이라는 심정으로 보도미로(宝刀未老)만 남긴다.

 

최종명, 작가/ 13억 인과의 대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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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란의 현장에서 다시 꺼낸 <,> (02)

 

11 12, 100만 명에 이르는 주권자 인파가 직접 청와대를 향해 시선을 직시했다. 대통령은 성난 민란의 함성을 듣고도 나 몰라로 일관하면 여파는 해일이 돼 다시금 전국을 민주의 깃발로 뒤덮을 것이다. 서울광장과 광화문 일대에 모인 국민의 날카로운 주인의식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더 거세질 것이 분명하다. 현장에서 어깨를 스치며 지나치고 무언의 눈빛으로 공감한 국민의 마음은 모두 하나였다.

 

청계광장을 중심으로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의 깃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우리나라 정당도 민중총궐기의 대의명분을 그냥 마냥 눈 돌리기 어려웠나 보다. 지역구까지 적은 깃발에는 왠지 기회주의자의 냄새가 나고 곧 엄중한 결단의 시기에 이르면 그 펄럭임은 파도의 포말로 부서져 버리고 말 듯 처량해 보였다. 과연 이명박근혜정부의 대역죄를 칼날처럼 잘라낼 시기에 이르면 어떤 처세로 타협할 지 의심이 들었다. 민란의 역사에도 지도자의 기회주의 때문에 죽 쒀 개 준경우가 많다. <시경(詩經)>타산지석(他山之石)’해야 옥을 고른다(공옥攻玉)고 조언했다.

 

 

()은 황소(黄巢)로 인해 망()하고 그 화()는 계림(桂林)에 있다.” <신당서(新唐)>는 기록하고 있다. 당나라 말기 최대 농민전쟁인 황소 민란이 일어나기 전 계림에서 봉기한 방훈(庞勋) 민란이 있었다. 당나라를 침몰시킨 진정한 화근이자 최초의 항거였다. 당나라 말기 혼란, 피 끓는 전쟁의 서막이다.

 

805년에 서주(徐州)를 포함해 4개 주를 지배했던 번진 무녕군(武宁)이 설치됐다. 819년 고구려 유민 집단이자 산동지방 절도사로 재직하던 이사도(李師道)가 일으킨 반란을 진압해 유명해졌다. 신라인 장보고(寳高)가 무녕군 소장으로 재직하면서 종군하기도 했다. 중원과 강남을 잇는 교통의 요지에 위치하는 번진으로 절도사의 횡포에 맞서 장병들의 반란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곳이기도 했다.

 

862 7월 서주에 근무하는 장병들이 신임 절도사의 횡포를 견디지 못해 돌연 절도사를 축출해 버리는 사건을 일으켰다. 아무리 당나라 군대라 해도 하극상치고는 돌발적이었다. 왕식() 신임절도사로 근무지에 도착하자마자 하극상을 벌린 장병 수천 명을 학살하고 무녕군을 해체해버리는 강수를 뒀다. 목숨을 건진 장병들은 모두 도망쳐 산으로 들어갔으며 비적으로 평생 살 운명이었다.

 

당시 운남 지방에는 백족 등이 중심이 된 남조(南詔) 정권이 세력을 키워 북상할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서주의 하극상 사건 2년 후 864, 조정에서는 서주와 사주 일대의 비적화한장병을 끌어들여 남조 방위를 담당하도록 하는 일석이조의 조처를 취했다. 그래서 약 800여명이 계주(桂州, 광서 계림桂林)로 내려가 주둔하게 됐다. 이국 땅에서 용병의 시간을 견디면 면죄부를 얻을 수 있다는 비적과 조정의 거래였다. 거래는 약속에 기반하는 것인데, 애초에 약속한 주둔기간 3년이 지났건만 조정은 귀향 명령 대신에 복무 기간을 6년으로 연장해버렸다. 불신이 팽배해지자 불만의 고름이 터져 나왔으며 게다가 관찰사의 가혹한 훈련과 만행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비등점을 넘고 있었다. 또다시 기약 없는 수병(戍兵) 복무를 감당하라는 것은 잔혹한 고통이었다.

 

868 7월 전직 무녕군 장교 허길(许佶)은 마침 관찰사가 전근간 틈을 노려 계주도장(桂州都將)을 살해하고 반란을 일으켰다. 식량창고를 약탈한 후 군량과 사료를 관리하는 양료관(粮料官) 방훈을 지도자로 추대해 서주로의 귀향을 도모했다. 방훈 군대는 병기 창고를 열어 무장한 후 계림을 출발해 호남, 호북, 안휘, 절강을 거쳐 서주로 귀향하는 과정에서 당시 지방 번진의 횡포에 고통 받던 농민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았다. 병력도 점점 늘어나 8천여 명에 이르렀다. 조정에서는 애초에 약속을 어긴 것 때문에 적극적으로 토벌하지 못하고 상황을 관찰하고 있었다. 일부 장병의 단순 반란이 서서히 농민이 참여하는 광범위한 민란의 형태로 발전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방훈은 조정이 우리를 모두 주살하려 하니 어차피 싸우다 죽는 것이 백 번 낫다.’고 외치며 서주의 본거지 팽성(彭城)을 공격했다. 계림으로 보냈고 복무 연장을 주도한 서주관찰사 최언증(崔彦曾)을 체포해 원한을 갚았으며 부하장수들은 물론이고 일족까지 몰살시켰다. 서주를 장악하고 장강 일대를 차단하자 수도 장안까지 위협했다. 이때 농민들의 참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20만 명의 대규모 군대가 됐다. 조정이나 민란 지도자 모두 서로 감당하기가 어려운 규모로 급증했다.

 

조정에서는 방훈에게 서신을 보내 협상을 하는 한편 20만 명의 토벌군을 모집해 절도사 강승훈(康承)에게 지휘하게 했다. 선봉장 대가사(戴可) 3만 명을 이끌고 진격해오자 방훈은 공성(空城) 작전을 펼쳐 방심하도록 유도한 후 기습공격을 감행해 토벌군과의 서전을 승리로 장식했다. 그러나 방훈은 토벌군을 과소평가하고 스스로 천하무적이라고 자만하고 향후 공격방향이나 전략을 수립하지 않고 방심했다. 게다가 음주와 오락에 점점 빠졌는데 마음 속으로는 반란군 두목으로 최후를 맞기 보다는 조정이 자신을 절도사로 인정해줄 것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예로부터 교만에 빠져 사치로 나태하면, 얻었으나 다시 잃게 되며 이겼으나 다시 패하는 것인데, 하물며 얻은 것도 이긴 것도 아니니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군사 주중(周重)은 직언하며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충고했지만 방훈은 듣지 않았다. 지도자가 기회주의적 속성을 들어내니 덩달아 계림에서 생사를 함께 했던 수병들도 거만하고 난폭해졌다. 무고하게 재물을 약탈하거나 부녀자를 겁탈하는 일이 벌어졌다. 민란 주동자로서의 책임을 방기한 방훈도 엄격한 규율로 처벌하지 않자 서서히 군율이 떨어지고 무법천지로 변해갔다. 농민들의 지지와 성원으로 명분과 규모를 키웠으나 군인의 최고 로망인 절도사에 편재되려는 유혹을 벗어나기 어려웠다.

 

심지어 절도사를 얻을 지 말 지고민하는 방훈을 비판하는 동요까지 아이들이 부르고 유행할 정도였다. 절도사를 간청하는 서신을 보내고 기다리고 다시 전투를 하다가도 또 기다리는 애처로운 내용이 <자치통감>에 기록돼 있다. 방훈의 지략과 풍모는 한 나라를 세울만한 됨됨이는 아니었던 듯하다. 웃음거리가 된 지도자를 비웃는 노래는 곧 고난을 살아가는 민중의 애환이자 바람이었건만 자신에 대한 비난은 한쪽 귀로 흘려버리려는 속성은 왜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것일까?

 

 

조정은 서신을 지속적으로 보내 절도사의 녹봉을 줄 것처럼 심리전을 펼쳐 안심시키면서 대대적인 토벌을 준비한 후 공격해왔다. 민란 지도자로서의 신임이 우스꽝스럽게 변해가는 민란 군대를 이탈해 투항하는 장수가 늘어나기 시작했으니 전투가 제대로 수행될 리가 없다. 숙주와 서주에서 연이어 패배했으며 팽성이 함락 당한 후에 계림 출신 핵심 장병의 일가친척 수천 명이 공개 처형되자 급속도로 사기가 꺾였다. 방훈은 869 9월에 이르러 2만 명의 병력을 이끌고 도주했지만 서북에서 출전한 돌궐계 용병 사타족(沙陀族) 기병에게 철저하게 유린 당했다. 게다가 패잔병을 이끌고 강을 건너려 할 때 이미 투항한 옛 동지가 토벌군 선봉대로 나타나 앞길을 막자 더 이상 퇴로가 없었다.

 

한때 장안까지 위협할 정도로 거침 없었지만 목표의식이 불투명하고 한계에 다다르면 허망하게 쉽사리 무너지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군인이 주도하고 농민을 비롯 사회 각계의 백성들이 호응해 1년 이상 전국을 휩쓸던 기세는 이후 황소의 난을 촉발했으며 당나라 멸망의 도화선(线)이 됐다.

 

11 12일 민중총궐기에 동참해 거리를 누비며 문재인은? 안철수는? 박원순은? 안희정은? 이재명은? 생각하며 물음표를 계속 던졌다. 그들의 이 민란처럼 솟는 민중의 투쟁과 희망을 담는 그릇인가에 대한 끝없는 회의였다. 더불어 당나라의 방훈을 비롯해 민란의 리더가 실패의 촉매제가 된 수많은 역사를 되새겼다. 이상하게도 민란의 진실 여부와 무관하게 실패의 상징이 된 민란지도자와 현 야권 대선후보가 오버랩되는 것은 왜 일까? 민란 반역의 지도자와 캐릭터가 겹치지 않는 자는 있는가?

 

참다운 민란의 승리,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가는데 앞장서는 진정한 지도자는 지금 TV 앞에 어슬렁거리는 대선후보가 아니라 바로 우리 국민 속에서 나올 일이다. 11.12 민중총궐기는 그 시작이다



  • 민란에 관한 대 부분의 내용은 졸고인 <,>(2015, 썰물과 밀물)에서 인용하고 일부 내용을 고쳐서 기재한 것임을 밝힌다. ‘중국민중의 항쟁기록이라는 부제가 붙은 <,>은 중국 방방곡곡을 취재하면서 느낀 소회와 얻은 자료를 기초로 집필된 이야기 책이다민란의 역사를 통해 과거와 현재미래를 눈 여겨 볼 수 있는 잣대로서 읽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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